국내 대형은행 4곳의 외화(달러)대출 잔액 추이/그래픽=이지혜 |
원/달러 환율이 금융위기 이후 최고로 상승한 가운데 기업들이 은행 달러대출로 몰리고 있다. 고환율에 더 많은 비용이 들지만 달러 확보가 먼저라는 '불안심리'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은행들은 환율 충격에 따른 기업차주의 위험을 낮추기 위해 만기연장 등으로 지원하고 있으나 건전성 관리에는 부담이 되고 있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대형은행 4곳(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지난 17일 기준 달러대출 잔액은 67억300만달러로 집계됐다. 4곳 모두 달러대출 잔액이 증가해 지난달 말(64억5500만달러) 대비 2억4800만달러 늘었다. 달러대출은 대부분 기업에 나간다.
통상 환율이 오르면 달러를 빌려 간 기업들은 환손실이 커지면서 상환을 서둘러서 결과적으로 대출 잔액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실제 지난달에는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에 진입하자 5대은행의 달러대출 잔액이 한달 동안 약 4억7300만달러 줄었다.
그런데 이달 들어서는 반대로 달러대출 잔액이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고환율에 따른 비용 부담에도 달러를 충분히 확보하는 게 우선이라는 기업의 불안 심리가 더 강하게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 여파에 '환율 발작'이 발생하는 등 원/달러 환율의 상방압력은 커지고 있다.
이날엔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매파적 전망에 달러가 강세를 띄면서 원/달러 환율이 개장 초반 1453.0원까지 치솟았다. 2009년 3월16일(1488.5원)이후 15년9개월 만에 최고치다. 원/달러 환율은 최근에도 지난 9일부터 8거래일 연속 1430원대를 유지하며 1440원대를 계속 노크했다.
특히 수출입 기업들을 중심으로 외화 수요가 늘어난 점이 달러대출 잔액 증가에 영향을 줬다. 환율 상승에 원자재 가격도 급등하는 등 외화 운용 불확실성에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달러 확보에 나선다는 분석이다. 추가적인 환율 상승에 따른 지출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여윳돈을 쌓는 의도도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10~13일 수출·입 중소기업 513곳을 대상으로 긴급 실태조사를 한 결과 비상계엄 사태 이후 겪은 어려움으로 '고환율'이 22.2%를 차지했다. 경기 성남의 한 제조업체는 "원자재를 수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환율이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지출 비용이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은행권도 환율 변동성에 취약한 기업을 지원하면서 위험을 관리하고 있다.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신용장 만기가 도래하는 수입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만기 연장 기준을 완화했다. 우리은행은 수출입 기업에게 내년 약 5000억원 규모를 금융지원한다. 외화 여신한도 사전부여, 금리 우대와 환율 우대, 전담팀의 컨설팅도 제공할 계획이다.
이날 김병환 금융위원장도 '기업금융 상황점검회의'에서 은행권에 "최근 외환시장의 변동성 우려를 고려해 기업들의 외화결제 및 외화대출 만기의 탄력적 조정을 적극 검토해달라"고 당부했다.
다만 향후 은행들의 건전성 관리엔 부담이 될 수 있다. 환율상승에 따른 원화 표시 외화자산 증가로 RWA(위험가중자산)도 늘어 CET1(보통주자본)비율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아울러 외화 부채 증가에 외화 LCR(유동성커버리지비율)도 악화할 수 있다. 아직 은행권의 LCR은 감독당국의 규제를 크게 상회하고 있다.
이병권 기자 bk22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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