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맞아 지난 8월14일 독일 베를린 미테구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소녀상 앞에 꽃을 놓아두고 있다. 장예지 베를린 특파원 penj@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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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 미테구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이하 소녀상)이 철거 위기에 몰린 가운데, 다른 베를린 구의 의회가 소녀상을 옮겨서 영구 존치할 수 있다는 결의안을 통과시킨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베를린 남부 슈테글리츠첼렌도르프(이하 슈테글리츠) 구의회는 지난 11일 “국제적 연대의 신호: ‘평화의 소녀상 아리’”라는 이름으로 슈테글리츠 지역에 소녀상을 옮기자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구의회는 결의안에서 “미테구에 설치된 소녀상은 한국 ‘위안부’의 고통을 기리고, 전쟁의 무기로서 여성과 소녀들에 대해 가해지는 성폭력을 반대하는 상징으로 대표된다”며 “미테구에 소녀상을 영구적으로 존치하기 위한 해결책이 없다면, (슈테글리츠) 구의회의 요청에 따라 코리아협의회(소녀상을 설치한 재독 시민단체)와 협력해 이곳에 소녀상을 영구 설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결의안 통과엔 슈테파니 렘링거 미테구청장이 소속된 정당이기도 한 녹색당과 함께 좌파당, 사회민주당, 자유민주당 등의 의원들이 동참했다. 중도보수 성향의 기독교민주연합(CDU) 의원들은 기권했다.
슈테글리츠 구의회는 소녀상 설치 후보지로 공공 부지인 크루메랑케 지하철역 인근도 제시했다. 슈테글리츠는 서울 송파구와 자매결연을 맺은 도시이기도 하다.
슈테글리츠 구의회 결의안에 법적 구속력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슈테글리츠 구의회의 이번 요청에 근거해, 슈테글리츠 구청 차원에서 소녀상 영구 설치 여부에 관한 논의를 진행할 길이 열린다는 데 의미가 있다.
베를린 소녀상은 2020년 9월 베를린 미테구 공공부지에 재독 시민단체인 코리아협의회 등이 설치했다. 일본 정부는 유럽에서 첫 공공부지에 설치된 이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총리까지 나서서 요구하며 노골적으로 독일에 압력을 가해왔다.
결국 미테구청은 소녀상 설치 4년 만인 지난 9월30일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코리아협의회에 통지했다. 렘링거 미테구청장은 코리아협의회에 보낸 철거 요구 통지문에서 “한-일 갈등을 주제로 하는 소녀상은 독일연방공화국과 직접적 관련이 없으며, 독일 수도의 기억과 추모 문화에 직접적으로 부합하지 않는다”며 독일의 외교적 이해관계에 “걸림돌”이 된다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슈테글리츠 구의회는 “우리 구에 소녀상을 건립하려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성폭력을 경험한 ‘위안부’를 향한 역사적 불의에 대한 지속적인 인식을 제고하려는 노력”이라며 “미테구에서 소녀상의 특별 사용 허가가 갱신될 가능성은 낮기 때문에, 우리 지역이 이 기념비를 영구적으로 설치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한다”는 결의안 통과 이유를 밝혔다. “이 결정은 추모의 문화에 힘을 더할 뿐 아니라 피해자들과의 연대, 그리고 인권을 적극적으로 증진하겠다는 우리의 결의도 보여준다”고도 했다.
코리아협의회는 미테구청이 내린 철거 명령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지난 10월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한 뒤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미테구는 새로운 사유지로 소녀상을 이전할 것을 제안한 바 있지만, 코리아협의회는 구체적인 대체 부지 등 사유지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공유하지 않은 채 구청이 논의를 진행하려 한다는 이유로 부정적이다.
한정화 코리아협의회 대표는 “미테구에서 16년째 활동하며 ‘위안부’ 역사를 알리고, ‘위안부’ 박물관에서 소녀상과 연계한 교육사업도 진행했다. 앞으로도 여기에 남고 싶은 마음”이라며 “현재로선 법원 결정을 본 뒤 슈테글리츠 이전 문제도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코리아협의회는 지난 6일 미테구의회로부터 지역사회의 이주민 사회 통합에 기여한 단체에 수여하는 ‘2024 통합상’을 받기도 했다.
코리아협의회는 지난 6일 미테구의회로부터 지역사회의 이주민 사회 통합에 기여한 단체에 수여하는 ‘2024 통합상’을 받기도 했다. 코리아협의회는 민주주의와 여성 인권 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코리아협의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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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장예지 특파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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