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코드' 어디에 맞춰야?…관료냐 중앙회 출신이냐
20일 임추위서 후보군 추릴까…정치권·당국 눈치도 여전
농협금융지주가 좀처럼 지배구조의 해법을 찾지 못하는 모습이다. 약 2주 후면 이석준 농협금융지주 회장을 포함해 주요 계열사 CEO들의 임기가 연이어 만료되는데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농협금융 안팎에서는 농협금융이 좀처럼 답을 내지 못하는 데에는 대주주인 농협중앙회의 상황에 더해 어수선한 정국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연말 이석준 농협금융지주 회장, 이석용 농협은행장, 윤해진 NH농협생명 사장, 서옥원 NH농협캐피탈 사장 등 농협금융과 관계사 CEO들의 임기가 연이어 종료된다.
이석준 농협금융지주 회장. /그래픽=비즈워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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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지주 회장에 관료출신? 중앙회 출신?올해는 유독 은행을 필두로 한 금융회사 CEO들의 임기가 연이어 종료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 놓인 금융회사 대다수는 지난달말, 늦어도 이달 초 중 차기 CEO 결정을 마무리하고 내년을 준비하기 위한 조직개편 등에 나선 상황이다.
반면 농협금융지주는 좀처럼 차기 CEO 인선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날(20일) 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연다는 계획이지만, 당장 차기 회장 후보군을 확정할지는 아직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전언이다.
농협금융지주 회장 선임이 늦어지는 이유로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언 이후 탄핵안 가결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이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게 금융권의 중론이다.
그간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총 7명이 재임했는데 이 중 초대 회장인 신충식 회장과 6대 회장인 손병환 회장을 제외 하고는 모두 경제관료 출신이 자리를 차지한 바 있다.
농협이라는 조직이 워낙 정치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정부가 추천한 인사를 내정, 정부와 코드를 맞춰왔다는 게 그간의 분석이다. 이석준 현 회장만 하더라도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캠프에 합류한 바 있으며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초대 경제부총리 등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을 정도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된 상황에서 윤 대통령과 관계가 밀접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석준 회장을 연임시키기에는 농협금융의 부담이 크다. 따라서 교체에 나서야 하는데, '코드'를 맞출만한 인사를 물색하기에는 정국이 어수선한 상황이어서 좀처럼 차기 회장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금융권의 분석이다.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농협이 정치권과 땔래야 때기 어려운 사이인데, 현재 정치권의 상황이 너무 복잡하지 않느냐"라며 "농협금융이 정부의 정책을 뒷받침하는 일종의 준 금융공기업의 역할을 해준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에 발맞출 수 있는 인사를 골라야 하는데 현 상황에서는 이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임시방편으로 내부출신 인사를 회장으로 임명하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과거 농협금융은 김광수 전 회장이 임기 도중 은행연합회장으로 자리를 옮기자 당시 손병환 농협은행장을 회장으로 영전시킨 전례도 있다.
현재 농협금융지주의 최대주주인 농협중앙회 내부에서도 중앙회 출신 인사가 지주 회장 자리에 임명돼야 한다는 의견이 조심스레 나오는 모습이다.
특히 강호동 농협중앙회장 역시 범농협 지배력 강화를 위해 자신과 코드가 맞는 중앙회 출신 인사들을 계열사 CEO로 내려보내려는 의지가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농협 관계사 관계자는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취임 초기에는 크게 목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본격적으로 움직이려고 하는 모습"이라며 "핵심 계열사인 농협금융지주와 그 계열사의 CEO들에 중앙회 출신 인사들을 앉혀 중앙회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지주 회장 선임 절차가 미뤄지면서 자연스럽게 농협은행, 농협생명, 농협캐피탈 등 핵심 계열사 CEO 선임 과정도 늦어지고 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지주 회장과 함께 일할 계열사 CEO 선임에 대해서는 차기 회장의 의견도 중요하다"라며 "회장보다 계열사 CEO 선임을 먼저하기에는 쉽지 않은데, 결국 회장 선임이 늦어지면서 계열사 CEO 선임도 늦어지는 것으로 본다"고 짚었다.
정치권 어수선한데 당국 눈치도 여전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의 의중대로 중앙회 출신 인사를 농협금융지주 회장 및 계열사 CEO로 임명하기에는 금융당국과의 관계가 어긋날 수 있다는 점도 인선이 늦어지고 있는 배경으로 꼽힌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올해 농협금융에 대한 검사를 진행하면서 농협중앙회 측 인사들이 계열사 CEO로 내려오는 인사 구조에 대해 지적했다. 농협중앙회가 농협금융지주의 지분 100%를 쥐고 있다고는 하지만, 금산분리 원칙과 전문성 등을 고려해 개입을 철저하게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였다.
당시 금감원은 최근 농협금융 계열사에서 발생하고 있는 금융사고도 농협중앙회에서 금융업에 대한 경험이 적은 인사가 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내부통제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농협금융도 이같은 점을 인지하고 있다. 다만 최근 정치권이 혼란해 지면서 금감원의 이같은 지적 사항을 일부 흘려 보낼 수 있는 상황이 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면서 시계가 불투명해 진 모습이다.
익명을 요구한 또다른 농협 관계사 관계자는 "올해 초 금감원이 지적한 부분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의견이 대폭 반영된 것이라고 보는 상황"이라며 "이복현 금감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인데 현재 상황에서 그 지침을 따를 필요가 있느냐라는 강경한 이야기까지 나오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같은 인사를 단행할 경우 금융회사가 감독기관인 금감원과 척을 지는 모습이 연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쉽사리 결정짓지 못하게 만드는 부분으로 분석된다.
다른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금융당국과 척을 진 금융회사들은 결국 모두 백기를 들었다"라며 "규제산업인 금융업이 당국과 갈등을 빚는다는 것은 매우 부담되는 일인 만큼 고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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