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6년 12월9일 오후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위원 간담회에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와 함께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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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가결에 따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시작되며 소환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2016년 12월~2017년 5월 박근혜 전 대통령 직무 정지 당시 권한대행을 맡았던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옛 국민의힘) 대표입니다. 권한대행의 권한 행사를 두고 여야가 공방을 벌이면서 전례를 따지다 보니 오랜만에 그의 이름이 입에 오르내립니다. 급기야 본인이 직접 등판했습니다. 19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연 그는 ‘권한대행 경력직’으로 한 대행에게 이러저런 ‘충고’를 합니다. 그런데 황 전 대표는 한 대행이 모범으로 삼을만한 권한대행이었을까요? 그의 당시 행보를 되짚어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2017년 2월 한 중고판매 카페에 매물로 올라온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시계. 한겨레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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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권한대행은) 대통령 행세하지 말아야 한다.”
우상호 당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이 발언이 나온 건 황 대행이 권한대행을 맡은 지 닷새 만인 2016년12월13일이었습니다. 여러 회의를 주재하고, 이곳저곳 현장을 찾은 그에게 당시 언론은 ‘광폭 행보’라는 수식어를 붙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대권 행보’라는 말로 바꾸었습니다.
머니투데이 2017년 2월 보도를 보면, 황 대행은 2016년 12월9일부터 2017년 2월7일까지 모두 36차례, 즉 이틀 걸러 한 번 꼴로 회의를 주재했다고 합니다. 전통시장, 쪽방촌 등 현장 방문은 31차례, 군부대 등 안보 관련 일정은 3차례였습니다. 그는 권한대행임에도 2016년 12월27일, 29일 두 차례 기자간담회를 열었고, 이듬해 1월23일에는 새해 기자회견을 통해 안보, 경제, 민생 등 국정 전반에 대한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현 시국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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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설에는 “경제 회복과 국민통합 차원에서 가석방을 확대 시행하라”는 특별지시를 내려 수형자 884명 가석방도 단행합니다. 같은 해 4월에는 방한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같은 달 경북 성주군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를 기습 배치하는 등 외교·안보 행보도 거침없었습니다. 특히 ‘대통령 권한대행’이라고 새긴 기념 시계를 만들어 배포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했죠.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서 돌아오지 못할 거라고 예상한 듯, 대통령을 방불케 하는 움직임이었습니다.
대행 기간이 5개월이 되다 보니 적극적 권한 행사가 불가피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황 대행의 처신은 노무현 전 대통령 직무정지 기간에 고건 권한대행이 보인 조용한 행보와 비교하면 유독 도드라졌습니다. 고 대행은 ‘조심스러운’ ‘조용한’ 등의 수식어와 함께 현상 유지와 관리에 충실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황 대행과 달리 회의 주재도 적었고, 현장 방문도 거의 없었습니다. 기자회견 역시 없었죠.
황 대행은 이후 자유한국당 대표, 2021년 대선 도전(국민의힘 경선 탈락) 등 정치인의 길을 걸었고, 언제부터인가 ‘선거부정’을 외치고 있습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19일 서울 종로구 정서울청사에서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서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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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은 한 대행은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명패와 명함, 시계 등 기념품을 제작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총리를 지낸 관료 출신으로서 선을 넘지 않는 조심스러운 행보입니다. 정부 관계자는 “한 총리는 ‘현실 정치’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헌법, 국가의 미래를 강조하는 것도 정말 그에 따라서 앞으로 대행 업무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한 대행을 둘러싼 상황은 녹록지 않습니다. 야당은 내란 동조 의혹을 문제 삼으며 ‘현상 유지’를 강하게 요구하고, 내란을 부정하는 듯한 여당은 한 대행에게 자신들과 윤 대통령의 ‘방패’ 역할을 해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거부권은 행사하면 안 되고, 공석인 헌법재판관은 임명하라”는 야당과 “거부권은 행사하고, 헌법재판관은 임명하면 안 된다”는 여당 사이에 끼어있습니다. 내란 동조 의혹을 받는 그에게 내란 사태 책임을 묻는 따가운 눈초리도 다수입니다.
현재까지는 그는 윤석열 정부와 여당의 편에 서 있는 모습입니다. 19일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6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고 헌법재판관 임명, 상설특검 후보자 추천 의뢰 등에 뚜렷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수사기관의 대통령실·경호처 압수수색 거부에는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고 뒷짐을 지고 있습니다. 한 대표는 고건의 길과 황교안의 길 중 어느 길을 택할까요. 아니면 자신만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요. 내란 특검법, 김건희 특검법 거부권 행사 여부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 같습니다. 시한은 내년 1월1일까지, 이제 12일 남았습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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