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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문민통제’의 역설…이성 없는 대통령은 누가 통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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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10월1일 국군의 날 행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당시 국방장관이 행사에 참여한 장병들과 장비를 둘러보고 있다. 대통령실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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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너무나 중요해 장군들에게 맡길 수 없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총리 조르주 클레망소의 말이다.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된다. 민간이 결정한 안보 정책을 군이 집행하는 방식을 ‘문민통제’라고 한다. 12·3 내란사태는 문민통제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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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통제는 국가의 군사 및 국방 정책에 관한 의사결정권을 직업군인이 아닌 민간(정치)인에게 부여한다는 군사·정치학의 원리다. 구체적으로 국민이 선출한 정치 권력(대통령)과 민간 관료(국방부 장관)가 안보 정책을 주도하고 안보 전문가 집단인 군은 군사작전으로 이를 뒷받침한다.



유럽, 미국 등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문민통제는 상식이다. 제1·2차 세계대전 때 폐쇄적이고 권력화된 군부가 호전적 행동으로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한 이후 서구사회에서는 문민통제가 정착됐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 유럽은 심각한 위기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정치 지도자들이 호전적인 군부를 제어하지 못해 전쟁이 일어났다. 세계적인 전쟁사학자인 영국의 존 키건은 저서 ‘1차 세계대전사’에서 “1차 대전은 비극적이고 불필요한 전쟁이었다”고 주장한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도 저서 ‘낙엽의 지기전에’에서 1차 세계대전이 “누군가 의도하고 준비한 전쟁이 아니라 위기 관리에 실패해서 터져버린 전쟁”이고 “당시의 문제는 민간지도자들이 군부의 전쟁 주장을 적절히 제어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끌려다녔다는 데에 있다”고 주장한다.



1914년 여름 유럽의 정치 지도자들은 ‘전쟁은 군인들이 잘 알 것’이라며 장군들을 믿고 전쟁을 맡겼다. 그 결과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끔찍한 제1차 대전이 일어났다. “전쟁은 너무나 중요해 장군들에게 맡길 수 없다”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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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화가 오토 딕스의 동판화 시리즈 ‘전쟁’ 중 ‘제12도. 독가스를 사용해 전진하는 돌격대’. 가스 마스크는 1차 세계대전에서 독가스가 무기로 쓰이면서 20세기와 함께 시작된 대량 살육전쟁을 상징한다. 서경석 도쿄경제대 명예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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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직전 군국주의가 지배하던 일본은 전쟁으로 치달았다. 일본군이 나라와 국민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고 갔다.



문민통제를 거론할 때 미국이 모범사례로 꼽힌다. 미국은 현역 군인이 국방장관을 맡으려면 전역하고 7년이 지나야 한다고 법률로 정해뒀다. 군복을 벗은 지 최소 7년은 지나야 군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는 국방부를 군대가 아니라 국민을 대신해서 군대를 통제하는 정부기관으로 보기 때문이다. 국방부 장관은 군의 대표자가 아니라 민간을 대표해 군을 지휘·감독한다.



2차 대전 이후 미국 국방장관 중 장군 출신은 1950년대 조지 마셜과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첫 국방장관인 제임스 매티스, 현재 장관인 로이드 오스틴 3명뿐이다. 미국 국방장관은 거의 정치인, 교수, 기업가 출신이다.



문민통제의 전제는 호전적 군부를 합리적 문민 정치권력이 통제할 것이란 믿음이다. 문민권력이 군사적 강경책에 쏠리기 쉬운 군부보다 더 종합적이고 신중하게 판단할 것이 상식에 맞다.



12·3 내란사태로 이 믿음이 사라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가 아닌데도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 10월 평양 무인기 침투와 ‘북한 오물 풍선 원점 타격’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한다. 윤석열 정부가 북한의 도발을 유도해 남북 국지전이 일어나면 비상계엄 선포의 빌미로 삼고자했다는 의혹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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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의결한 지난 4일 새벽 군 병력이 국회에서 철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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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중하순 북한군 러시아 파병설이 불거졌을 때 윤 대통령은 서둘러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검토 방침을 밝혔다. 그는 10월24일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뒤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대원칙으로서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직접 공급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도 더 유연하게 북한군의 활동 여하에 따라 검토해나갈 수 있다”고 밝혔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유지해 온 ‘살상무기 지원 불가’ 방침을 ‘파병 북한군의 활동에 따라 검토 가능’으로 바꾼 것이다. 국가 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사안임에도 공개 토론 같은 공론화 과정도 없었다.



윤 대통령은 안보 현안이 터지면 성급하고 강경한 언행을 일삼았다. 문민통제의 전제인 ‘합리·온건 문민권력 대 맹목·강경 군부’ 구도가 통하지 않았다. 일부에선 12·3 내란사태로 대통령이 엉망진창이면 문민통제가 무용지물이 된다는 반응도 보였다. 하지만, 오히려 문민통제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궁극적으로 문민통제를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대통령과 국방장관이 독점하는 군 인사권이 이번 내란을 일으킨 흉기가 됐다. 김용현 전 장관은 자신의 고등학교 후배인 여인형 방첩사령관 등 ‘충암파’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등 근무연 등으로 엮인 사조직을 중심으로 내란를 꾀했다.



이참에 대통령의 고유권한으로 인식된 군 인사권에 대한 국회의 통제 장치를 확대·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국방장관, 합동참모본부 의장만 국회 인사청문회를 하지만 미국은 장군 진급자 전원에 대한 상원 승인 제도와 4성 장군(대장) 상원 청문회 제도가 있다. 전쟁은 너무나 중요해 대통령에게만 맡길 수 없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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