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가해자에게 저항하다 그의 혀를 깨물었다는 이유로 중상해죄 판결을 받은 최말자(78)씨에 대한 재심개시 기각 결정이 지난 18일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됐다. 최씨가 20일 오전 서울 중구 상연재에서 한국여성의전화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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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기환송심 결정 소식을 듣고) 물방울 한방울, 한방울이 바위를 뚫었다는 기분으로, 너무너무 고마웠습니다. 만세를 불렀습니다.”

지난 1964년 성폭력 가해자에게 저항하다 중상해죄 가해자로 몰려 유죄판결을 받은 최말자(78)씨의 재심 청구 기각 결정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것을 기념하는 기자회견에서 최씨는 두팔을 들며 이렇게 말했다. 최씨는 “모든 것은 여러분 덕분이다. 이 영광을 여러분께 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최씨의 재심청구를 도운 한국여성의전화가 20일 오전 서울 중구 상연재에서 연 ‘56년 만의 미투, 60년 만의 정의 대법원 파기환송 환영 기자회견’에는 그동안 최씨와 연대했던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들, 최씨가 ‘56년 만의 미투’ 관련 논문을 쓰는 것을 도와준 학교 동료와 교수 등이 참석했다.

최씨의 변호를 맡은 김수정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간첩단 사건 등 주요 과거사 사건은 수사기록이 국가기록원에 남지만 이런 사건은 남지 않는다. 그런 사건에서 당사자가 억울해하고, 신빙성 있는 진술을 하는데 그걸 가벼이 여길 게 아니라는 게 최근 과거사 판결 경향”이라고 말했다. 이번 대법원 파기환송심 결정 요지는 최씨가 불법구금 등 위법 수사를 당했다는 증거가 최씨의 진술뿐이더라도 그 진술이 신빙성이 있다면 재심개시 사유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늦었지만 내년께 무죄판결 받으면 뒤집힌 정의가 바로잡힐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씨를 도운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대법원의 파기환송심 결정은 끝이 아니라 또다른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열릴 재심은 그 무엇보다 빨리 진행되길 바한다. (최씨의) 정당방위를 온전히 인정하는 정의로운 판결이 있길 바란다. 최말자 선생님이 건강 모습으로 우리 사법기관으로부터 사죄받고 완전히 자유로운 인간으로서의 시간을 길게 누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침 일찍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기자회견장을 찾은 최씨는 “대법원에서 재심을 열 기회를 갖게 돼서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 모든 것은 여러분 덕분이다. 여러분들의 한방울, 한방울 물방울이 바위를 뚫었다는 기분으로 너무너무 고마웠다”며 “(소식을 듣고) 만세를 불렀다”고 밝혔다.

이어 최씨는 “여러분이 안 계셨다면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없다. 변호사, 여성의 전화, 여러분들 덕이다. 제가 이 영광을 참 여러분께 돌리고 싶은 심정”이라며 “앞으로 재심을 열어서 무죄가 나오고, 정당방위가 (인정)되도록 여러분들 좀 도와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후손들이 이런 일을 안 당하게 도와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성폭력 가해자에게 저항하다 그의 혀를 깨물었다는 이유로 중상해죄 판결을 받은 최말자(78)씨에 대한 재심개시 기각 결정이 지난 18일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됐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대표(왼쪽), 최말자씨(가운데), 김수정 변호사(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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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64년 18살이던 최씨는 자신의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을 데려다주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당시 21살이던 노아무개씨에게서 성범죄를 당했다. 노씨가 느닷없이 최씨를 쓰러뜨리고 입을 맞추려고 달려든 것이다. 최씨는 입안에 혀가 들어오자 ‘이대로 숨 막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확 깨물어 저항했고, 노씨의 혀가 1.5㎝ 잘렸다. 최씨는 이 사건으로 이듬해 1월 중상해죄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사건 56년 만인 지난 2020년 최씨는 부산지법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1심과 항고심 모두 최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최씨의 재심을 받아들이지 않은 원심판결을 지난 18일 파기환송했다. 부산고법에서 최씨의 재심청구가 받아들여지고 이를 대법원이 다시 확정하면 최씨는 당시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60여년 만에 다시 받게 된다.

글·사진/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