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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강천석 칼럼] 미국, 윤석열에 혀를 차고 이재명을 의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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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12·3 계엄 때 핵심 병력 이동 미국에 통보 안 해 트럼프의 美軍 한국 주둔 회의론 자극

李: 탄핵안 통해 한-미-일 共助 비난하고 ‘北-中-러’로 기울며 노골적 反日로 후퇴해 정체성 의문 불러

조선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6일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라라고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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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머릿속에 든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세상에 이런 나라가…’ 하며 혀를 차지 않을까. 2016년 11월 5일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박근혜 한국 대통령에게서 축하 전화를 받았다. 그러고 한 달 뒤 한국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소추를 당해 직무가 정지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8년 만에 대통령 당선자로 돌아온 트럼프에게 축하 전화를 걸었다. 트럼프는 ‘윤 대통령 리더십에 대해 잘 듣고 있다’고 덕담(德談)을 건네며 ‘미국 조선업(造船業)은 한국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37일 뒤 트럼프는 ‘한국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국회의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됐다’는 긴급 브리핑을 받았다.

그 후 트럼프의 입에선 한국이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12월 16일 당선 후 첫 기자회견을 갖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이시바(石破茂) 일본 총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이름을 들먹였다. 그는 이날도 ‘김정은과 유일하게 잘 지내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말은 빠뜨리지 않았다. 동북아 3국 가운데 한국은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과 세계 기자들도 중동·우크라이나·대만해협 등등 모든 문제를 물었으나 어느 누구도 한국 묻지 않았다. 한국은 ‘미움받는 나라’보다 못한 ‘지워진 나라’였다.

트럼프는 첫 대통령 재임 때 ‘왜 한국에 미군을 둬야 하느냐’를 수시로 공공연히 물었다. 그때마다 원숙한 군(軍) 장성 출신 대통령 안보보좌관, 국방장관 등이 이유를 설명하며 대통령을 다독였다. 주한 미군은 한국 방위만 하는 게 아니라 일본을 지키고 중국을 견제하는 전초(前哨)기지 노릇도 한다는 ‘3중 역할론’이다. 지금 트럼프 곁엔 주한 미군 축소·철수론을 전파하고, 한국 등 너머로 미국-북한 양자(兩者) 직접 교섭을 주장하던 인물뿐이다.

한국은 12월 3일 전선(戰線)과 수도 방위 핵심 전력인 수도방위사령부와 특전사 병력을 이동하면서 주한 미군 사령관에게 통보도 하지 않았다. 40년 전 12·12 사태 때와 같았다. 당시 미국은 분노했다.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는 한국에서 ‘2만8500명 주한 미군 생명을 무엇보다 우선한다’로 나타난다. 미국은 한국군 핵심 병력 이동이 주한 미군 안위(安危)와 직결된다고 간주한다. 트럼프의 한국에 대한 침묵 속엔 이번 사태에 대한 그의 생각과 감정이 녹아 있다.

비상계엄 파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민주당은 12월 4일 제출한 1차 탄핵안 결론에서 윤 대통령의 죄상(罪狀)을 이렇게 요약했다.

“가치 외교라는 미명하에 지정학적 균형을 도외시한 채 북한·중국·러시아를 적대시하고 일본 중심의 기이한 외교 정책을 고집하며 일본에 경도(傾倒)된 인사를 정부 주요직에 임명하는 정책으로 동북아에서 고립을 자초하고 전쟁 위기를 촉발시켜 국가 안보, 국민 보호 의무를 내팽개쳤다.”

백악관·국무부·국방부와 맞닿은 미국 연구소들이 먼저 반응했다. ‘심각한 착각’ ‘한국이 중국-북한, 러시아-북한 동맹의 하위(下位) 들러리 국가로 가는 길’ ‘한·일 관계가 문재인 시대로 후퇴하면 주한 미군 주둔 필요성도 그만큼 손상될 것’이란 내용이다. 한·미·일 공조(共助) 회복을 최대 외교 치적으로 여겨온 바이든 정부 뒤통수를 치고 일본 중시론(重視論)을 펴온 트럼프 얼굴에 주먹을 날린 거나 다름없다.

입을 다문 일본은 정부 안팎이 술렁댄다. 일본의 동요는 그대로 워싱턴에 전달된다. 민주당은 2차 탄핵안에선 문제 부분을 삭제했다지만 이 불발탄(不發彈)은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을 계속 따라다니며 정체성을 물을 것이다.

2016년 대통령 탄핵 당시 후임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취임 6개월을 넘긴 2017년 6월 29일에야 회담을 가졌다. 아베(安倍晉三) 일본 총리는 트럼프 당선 9일 후 뉴욕에서 90분 동안 회담했다. 트럼프를 만난 첫 외국 정부 수반이었다.

당선자로 돌아온 트럼프는 이시바 총리의 회담 요청을 밀린 일정을 들어 거절했다. 그러자 아베 전 총리 부인 아키에(安倍昭恵) 여사가 비서 한 사람을 데리고 플로리다로 날아가 트럼프 부부와 만찬을 했다. 다음 날 트럼프는 ‘이시바 총리를 빨리 만나고 싶다’고 태도를 180도 바꿨다. 아키에 여사는 남편의 정적(政敵)이던 이시바 총리를 위한 미국 방문 비용을 사비(私費)로 지출했다.

트럼프 취임 100시간 안에 한국 국익과 관련된 주요 정책 윤곽이 나올 거라고 한다. 트럼프를 만나러 누굴 보내야 하나. 쥐덫에 갇힌 못난 정치가 나라 목숨을 갉아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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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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