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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 (화)

가족이 모이는 곳에서 내 삶의 ‘맞춤형’ 공간으로…거실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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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담은, 나를 닮은 곳

규격 벗고 개인화 ‘거실의 진화’

거실에 나를? 거실을 내게! 맞춘다

경향신문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변화하고 있는 거실. 방송인 김나영(@nayoungkeem)의 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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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모이는 곳’이었던 거실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1인 가구를 위한 ‘공유 거실’이 등장하고 과감한 구조 변경과 공간 치환(공간의 위치를 바꾸는 인테리어) 등으로 ‘맞춤형’ 거실을 확보하려는 이들이 늘어나는 분위기다. TV와 소파로 고착화된 전형적인 거실 풍경 역시 사라지는 추세다. 다채로운 활동이 이뤄지는 복합 공간으로 재편성 중인 거실, 발 빠르게 합류한 신인류의 활용법을 소개한다.

공간이 돈인 시대, 거실을 ‘아꼈더니’

“지금 사는 오피스텔은 7평 남짓한 공간이에요. 침대와 책상을 놓았더니 여유 공간이 없더라고요. 답답한 마음이 들 때면 대형 카페를 찾았는데 그때뿐이었어요. 우연히 친구의 초대로 방문한 공유형 거실에서 깨달았죠. 아, 내가 필요한 건 거실이었구나, 하고요.”

비혼인 조성현씨(가명)는 공유 거실을 ‘구독 중’이다. 국내 스타트업이 운영하는 이 거실은 200여권의 도서와 영화 관람이 가능한 시네마룸, 홈바 등을 갖춘 휴게 공간이다. 한 달 10만원 정도의 비용을 지급한 회원들은 전용 출입증을 발급받아 상시 이곳을 드나들 수 있다. 조씨는 주로 친구들과 가볍게 술을 마시거나 퇴근 후 간단한 업무를 처리해야 할 때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부동산 한파’ 속에서 넓은 집을 구해 이사하는 것보다 경제적 소비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직장인 김미나씨의 집엔 ‘세컨드’ 침대가 있다. 수면 시간이 다른 남편과의 분리 수면을 위해 산 거실용 침대다. 방이 아닌 거실에 침대가 자리하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이미 제 역할을 하는 방과 다르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완벽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원룸부터 투룸 빌라, 17평, 26평, 33평의 아파트까지 잦은 이사를 통해 여러 공간을 경험했어요. 그러다 팬데믹 이후 집이라는 공간에 관심을 두고 다양한 사례들을 보면서 우리 부부와 어울리는 거실에 대해 고민하게 됐죠.”

마침내 찾아낸 모델은 다재다능한 ‘원룸’이었다. 일반적인 침대를 두었을 경우 답답해질 것을 고려해 데이베드 형태의 침대를 골랐고, 기존 갖고 있던 테이블을 배치해 다이닝룸을 만들었다. 오픈형 책장을 둬 수납공간을 확보했더니 서재도 추가됐다. 불필요한 가전과 묵직한 가구는 배제하고 밝은색으로 톤을 맞췄더니 또 하나의 방이 탄생했다. 이렇게 완성된 거실은 김씨에게 “몸과 마음을 느슨하게 풀고 여유를 만끽하는 공간이자 바깥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에너지를 충전하는 곳”이 됐다. 집의 가장 넓은 공간인 거실을 ‘낭비하지 않고’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조정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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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에 따라 변화하고 있는 거실. 각자의 생활 패턴에 중점을 둔 거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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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가족, 반려묘가 함께하는 거실

거실의 진화는 비단 비싼 부동산과 좁은 공간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 포스코이앤씨는 미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신개념 평면 8종을 선보였다. 비혼·딩크 가족을 비롯해 가족별·세대별 취향을 고려한 평면에서 단연 눈에 띄는 공간은 ‘3세대 이상이 함께 사는 5인 가족을 위한 집’이었다.

해당 평면에는 시니어 부부를 위한 침실과 침실 내 거실 공간이 배치됐는데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인구 고령화와 출생률 감소에 따른 가족 구성원의 변화가 거실의 정의를 다각화하고 유동적인 존재로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려동물 양육가구 300만 시대, 반려동물을 위해 거실을 새롭게 꾸민 이도 있다. 디자이너 한예슬씨는 거실 한쪽 벽면을 캣워크로 채워 두 마리의 고양이가 자유롭게 장난치며 놀 수 있도록 양보했다. 이후 반려묘들이 성장하면서 안전을 고려해 캣워크를 해체했고, 현재는 캣타워를 설치해 공간을 재구성한 상태다.

“여행지 숙소들을 보면 주로 침대 앞에 TV가 놓여 있잖아요. 여행에 대한 느낌을 공유하기보다 ‘뭐 볼까’로만 대화가 이어지는 것을 보고 가구의 배치가 얼마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깨닫게 됐어요. 우리의 거실은 대화가 이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면서 고양이들과도 잘 지낼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랐어요.”

고급스러운 원목 패널과 감각적으로 놓은 화초와 액자가 조화를 이루는 집사들의 공간은 실용성과 세련미를 더했다. 거실 중앙에 있는 테이블은 한씨 부부에게 아늑한 식사 공간이자 홈 카페 존이다. 때때로 이곳은 업무를 보는 홈오피스로 변신하기도 한다. 창밖으로 보이는 ‘앞 동 뷰’가 아니었다면 주택을 개조해 만든 카페라고 해도 믿었을 것이다.

“가끔 캣타워에 앉은 고양이들이 저와 남편이 밥 먹는 모습을 지그시 바라볼 때가 있어요. 마치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요. 그럼 서로 또 한참을 웃어요. 구성원을 1순위로 두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완성된 거실이 주는 행복이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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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대로 공유형 거실(@pairings_lounge), 침실 겸 거실(@creator.mina),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거실(@foaaroom), 구조 변경으로 달라진 거실(@ppoddanaa).


거실은 시대상을 반영한다

가전·가구 시장도 거실 인테리어의 변화에 큰 역할을 했다. 초개인화 시대가 도래하고 각자의 개성 표현이 중요해지면서 관련 업계는 심미적 요소가 강조된 가전·가구를 출시, 공간과의 조화를 셀링 포인트로 삼고 있다.

공간디자이너인 정현주 디렉터는 거실 인테리어의 대대적 변화를 가능케 한 가전으로 ‘이동형 TV’를 꼽았다. ‘배(背)소파 임(臨)TV’의 획일적인 구조를 벗어나 색다른 거실 레이아웃을 시도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제품은 한때 ‘품절 대란 아이템’으로 명성을 얻은 LG 스탠바이미다. 해당 제품은 올해 1분기에도 약 6만대의 판매량을 기록했을 정도로 지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액자형 디자인으로 TV를 보지 않을 때는 마치 그림이 걸려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삼성전자의 ‘더 프레임’ 역시 거실을 화사하게 변신시키는 데 일조했다.

모듈형 가구는 TV와 함께 ‘붙박이’ 거실 풍경을 바꾼 일등 공신이다. 부품처럼 분할된 가구들을 원하는 형태로 배치하고 필요할 때 늘릴 수 있는 모듈형 가구는 개인의 취향·목적이나 공간에 맞춰 가구를 들일 수 있어 집 꾸미기 고수들의 필수품으로 꼽힌다.

정 디렉터는 “예뻐진 가전과 가벼워진 가구, 공간의 효율성과 유연성이 시너지를 내며 거실 인테리어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가능해졌다”며 “앞으로는 각자의 개성과 취향이 보장되는, 개인화된 거실로 나아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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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중심이었던 거실이 각자의 개성과 취향이 보장되는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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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허무니 ‘연결’의 공간이 생겼다

해외의 거실은 어떨까. 유명 리빙 인플루언서의 거실을 들여다보면 컬러풀한 색채를 입은 소품부터 갤러리를 연상케 하는 벽까지 저마다의 개성이 강조된 모습이다. <Mad about the house>의 저자이자 영국의 인테리어 인플루언서 케이트 왓슨은 “공간을 꾸밀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적합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 역시 자신의 스타일을 반영해 증조모의 소파로 빈티지 효과를 내고 폐쇄된 발전소에서 획득한 난간을 개조해 커피 테이블을 만들어 사용 중이다.

하지만 ‘국민 절반이 아파트에 산다’는 대한민국에서 규격화된 공간을 새롭게 재창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케아 코리아가 지난 17일 발표한 홈퍼니싱에 관한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거실은 ‘꾸미고 싶은 공간 1위’(62%)를 차지할 정도로 관심이 큰 공간이지만, 현실은 구조적 한계, 예산 등으로 제약이 많다. 김미정씨가 지금의 집으로 이사하며 거실 벽을 허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처음엔 거실을 서재처럼 꾸미고 싶었는데, 그러면서도 소파에 누워 누리는 평온함도 포기할 수가 없더라고요(웃음). 공부나 작업을 위한 방을 따로 뒀던 경험을 떠올려 봤을 때 그 또한 그리 효율적이지 않았죠. 그래서 거실과 방을 뚫어 하나의 공간으로 만들었어요.”

새 공간의 앞쪽에는 8년째 사용 중인 소파 옆엔 캠핑 의자와 1인용 의자를 뒀다. 대화하거나 자유롭게 책을 읽고 빔프로젝터를 통해 영화를 보는 용도다. 철거할 수 없는 뒤쪽 공간 날개벽에는 선반을 달고 데스크톱을 올렸다. 간접등을 켜면 독서실 못지않다. 방 한가운데엔 티크 소재의 책상을 배치했다. 크레파스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한 배려다.

‘집을 팔 때 후회할 것’이라는 주변의 우려와 반대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동시에 각자 원하는 활동을 할 수 있어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공간으로 빛나고 있다. 휴식과 소통을 비롯해 다채로운 역할을 할 수 있는 이 공간의 이름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그저 과도기의 거실이다.

“소셜미디어에 보면 서재형 거실, 개방형 거실 등 관련 해시태그들이 정말 많잖아요. 모두 정형화된 구조에서 나오는 답답함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어떤 삶을 지향하느냐, 그 답부터 찾길 바라요. 그러다 보면 내가 원하는 거실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이고, 나아가 우리 사회 거실에 대한 해석 또한 달라질 겁니다.”

김지윤 기자 ju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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