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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공영방송 장악을 위한 이사장 해임 “모두 이유 없다”…권태선·남영진 해임무효 판결문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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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남영진 KBS 이사장(앞줄 왼쪽부터),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유시춘 EBS 이사장이 지난해 8월 14일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긴급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방송통신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남영진 KBS 이사장과 정미정 EBS 이사에 대한 해임 의결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강한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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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언론장악’은 여러 경로로 질주했다. 한국방송공사(KBS)에는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분리해 징수토록 하면서 공영방송을 위한 재원을 흔들었다. 문화방송(MBC) 등에는 재허가·재승인 심사 점수에 반영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제재를 누적해 압박했다. 다른 경로는 ‘이사장 해임’을 통한 사장 교체다. 지난해 8월 남영진 KBS 이사장과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의 권태선 이사장이 해임됐다. 감사원의 감사, 방송통신위원회의 검사·감독, 경찰 수사 등을 동원한 결과였다.

서울행정법원 제5부(재판장 김순열 판사)는 지난 19일 방통위의 권 이사장 해임 처분을 취소했다. 서울행정법원 제2부(재판장 고은설 판사)도 같은날 윤 대통령의 남영진 전 KBS 이사장 해임 처분을 취소했다. 판결문을 살펴보면 재판부는 방통위가 두 사람의 해임 사유로 든 핵심 항목에 대해 “해임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언론노조는 20일 성명을 내고 “두 사람에 대한 해임은 방송장악을 목적으로 한 ‘묻지 마 해임’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진 것”이라며 “국회는 지난해 김효재 방통위원장 직무대행 이후 이진숙 위원장의 탄핵 이전까지 내려진 방통위의 모든 의결 사항의 위법성을 따질 국정 조사를 즉시 실시하라”고 요구했다. 권 이사장과 남 전 이사장이 해임 처분 무효 소송 1심 판결문의 핵심 내용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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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에서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해임이 의결된 지난해 8월 21일 권 이사장이 서울 마포구 mbc 상암 사옥을 찾아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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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하나 다 해임 사유 아니다”고 본 두 재판부, 판결문 자세히 보니


“과도한 MBC 임원의 성과급 인상을 방치했다. 영업 이익이 줄었는데도 성과급은 18%포인트 증가했다”
- 방통위의 권 이사장 해임 사유


방통위는 권 이사장 해임 사유 중 하나로 방문진 이사회가 MBC 임원의 성과급 인상을 방치한 것을 들었지만 법원은 방문진 이사회가 의결한 성과급 기준에 따라 지급됐다면서 “정당한 해임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MBC는 2021~2022년 임원 성과급을 지급했다. MBC가 2019년 839억원 적자를 내다가 2021~2022년 각각 684억원, 566억원의 흑자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방문진 이사회에서 정한 MBC 임원 성과급 지급 기준은 ‘공영성 강화를 통한 공적 책임 구현’ ‘콘텐츠 경쟁력 강화’ 등으로 이뤄져 있다. 법원은 “MBC가 공영방송이라는 특성을 고려한 것으로, 방통위의 주장처럼 단순히 영업이익 증감 내역만을 기준으로 성과급 인상이 부당했는지 판단할 수 없다”고 봤다. 법원은 MBC가 방만하게 경영을 했다고 볼 증거도 없다고 판단했다.

“안형준 MBC 사장이 후보자 시절 주식 대금 납입이 없이 주요 주주로 등재됐다는 의혹이 나왔지만 이사회에서 추가 소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MBC에서 감사가 진행되는 중에도 사장을 임명하고, 감사 결과에 대해서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 방통위의 권 이사장 해임 사유


방문진 이사회는 안형준 MBC 사장에 대한 감사 결과를 지난해 3월 보고받았다. 안 사장이 2013년 지인 소유의 주식을 명의신탁 받았는데, 지인의 회사에서 감사를 진행할 때 안 사장이 주식을 본인 소유라고 진술했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사들은 이에 대해 ‘수사가 진행될 것이므로 사장 선정을 번복할 정도는 아니다’ ‘사법부 결정과 별개로 방문진에서 별도 조치를 해야 한다’ 등 다양한 의견을 냈고, 이런 의견들을 담아 보도자료에도 공개했다. 안 사장은 지난해 12월 검찰에서 증거불충분 혐의없음으로 불기소됐다.

하지만 방통위는 권 이사장 해임 사유 가운데 하나로 이 일을 문제 삼았다. 방문진 이사회가 안 사장에게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아 문제가 있다는 취지였다.

법원은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의혹이 제기된 경우, 사장 선임 절차를 멈춰야 할지에 대해 “객관적 정답이 있는 문제라고 볼 수 없다”고 봤다. 다양한 배경·가치관을 가진 이사로 구성으로 이뤄진 방문진 이사회의 논의 과정을 통해 다수의 입장에 따라 최종 결정이 이뤄졌고, 의사 결정 과정이 불합리하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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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의 해임 처분 집행정지 신청이 인용된 지난해 9월 11일 권 이사장이 서울 마포구 방문진 사무실 앞에서 복귀 소감을 밝히고 있다.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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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이사장이 2021~2022년 방문진 이사회에서 MBC로부터 중장기 투자·개발계획에 관한 감사 결과 등을 보고받을 때 MBC 담당자가 회의 종료 후 자료를 회수하겠다는 요청을 받아들여서 공공기록물을 멸실·폐기·유출했다. 감사원에 방문진이 보유한 비공개 속기록을 내지 않았고, MBC가 보유한 자료를 제출받아 내는 등 협조도 하지 않아 감사원의 감사를 방해했다”
- 방통위의 권 이사장 해임 사유


방통위는 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감사 방해 등을 권 이사장 해임 사유로 들었는데 권 이사장 해임 처분은 감사원의 방문진 감사가 끝나지도 않았을 때 나왔다. 법원은 “MBC 감사 자료는 문서보안 관리 지침에 따라 이사회 회의가 종료된 후 회수·폐기가 예정된 것”이라며 “방문진이 자료를 기록물로 ‘접수’할 의사가 있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주식회사 MBC의 감사 자료가 공공기록물법의 적용을 받는 기록물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봤다.

‘감사 방해’ 주장에 대해서도 “감사 사항과 무관한 내용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감사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범위 안에서 감사해야 하고, 자료 제출 요구 등으로 인한 기관·관계자의 부담이 최소화돼야 한다고 규정했다”고 봤다.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감사원법을 위반할 정도의 감사 방해는 아니라고 본 것이다. 방문진이 MBC로부터 자료를 제출받아 감사원에 제출할 의무까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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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남영진 전 KBS 이사장(오른쪽) 등 공영방송 3사 전·현직 이사들이 모여 윤석열 대통령의 공영방송 장악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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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임 때부터 “무리한 사유” 비판··· 언론노조 “방송 장악을 목적으로 한 ‘묻지 마 해임’


“남영진 이사장이 고액 연봉 상위 직급을 방치하는 KBS에 대한 관리 감독을 게을리 했다. 2019년 KBS가 방통위에 낸 ‘직제 개편안 및 상위 직급 감축 계획’이 달성될 수 있도록 보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할 필요는 없는지 등을 강구해야 했다“
- 방통위의 남 전 이사장 해임 사유 중


방통위는 남영진 전 KBS 이사장을 해임하면서 고액 연봉 상위 직급을 방치하는 등 이사장으로서 관리 감독을 게을리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법원은 KBS의 ‘고액 연봉 상위 직급’ 문제를 해결하려 하더라도, 취업 규칙 변경 등 노동법에 관한 쟁점이 먼저 해결돼야 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남 전 이사장이 이사회를 통해 강도 높은 인력 구조조정을 추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사로서 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방통위는 2017년 KBS 재허가를 내면서 ‘과다한 상위 직급 비율을 감축하는 등 직제 규정의 정원표 개정’을 재허가 조건으로 걸었던 적이 있다. 이에 KBS는 2019년 10월 개정된 정원표를 냈다. 방통위는 KBS가 2017년 내건 ‘상위 직급 비율’ 조건을 이행한 것으로 판단해 2020년 12월에는 재허가 조건에 같은 조건을 부가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2022년 경영평가 결과에서도 개정된 정원표에 대해 상위 직급의 인원·인건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평가했다”는 점도 고려했다.

“남 이사장이 법인카드로 고향 인근에서 대량의 물품을 구매하고, 휴일에 법인카드를 사용하는 등 총 34건, 747만원을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부정사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등 공사 이사에게 요구되는 도덕성과 청렴성을 갖추지 못했다”
- 방통위의 남 전 이사장 해임 사유 중


방통위는 남 전 이사장이 법인카드를 부정하게 사용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남 전 이사장이 업무추진비 등 공금을 사적 용도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법인카드 부정 사용 의혹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는 남 전 이사장이 KBS의 이사에게 요구되는 도덕성과 청렴성을 갖추지 못햇다고 볼 수 없다”면서 해임 사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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