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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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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청망청하지 말고 깨어서 '성탄 예수' 기다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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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이용훈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수원교구장 주교)이 수원교구청 입구 '평화의 예수상' 앞에 서 있다. 이충우 기자


지난 3일 대통령 계엄 선포 이후 3대 종단 가운데 가장 먼저 사과와 책임을 촉구한 종교가 천주교다.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던 날에도 발 빠르게 입장을 표명했다. 이를 주도한 이용훈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수원교구장 주교·73)은 최근 기자와 만나 "종교의 목적은 영성적으로 사람을 지도하는 데 있지만 종교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생명, 인권 문제랄지 자유가 짓밟히는 상황에 대해서는 눈치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가 근무하는 수원교구청 앞에는 세상을 향해 두 팔 벌린 '평화의 예수상'이 서 있고, 붉은 벽돌 건물엔 '경청과 식별로 동행하는 수원교구'라는 표어가 걸려 있다. 1층 로비에서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예년과 달리 성탄절을 기다리는 들뜬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려운 시국이다. 이 주교는 성탄하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림 시기'에 읽을 만한 성경 구절을 낭독하며 마음을 바로잡을 때라고 강조했다. 루카복음 21장 34절이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그날이 너희를 닻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도록 하여라."

이 주교는 "이 말씀은 우리가 세상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죽음이 찾아올 수 있으니 흥청망청하지 말고 깨어서 예수님을 기다리라는 뜻"이라며 "한마디로 표현하면 시대의 징표를 잘 읽고 난국을 극복하라는 메시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느닷없이 닥친 이 난국을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까. "국격이 추락하고 우리 자존심에 큰 상처를 얻은 것은 사실입니다. 경제적으로 타격이 심하고 환율이 치솟는 바람에 소상공인들도 굉장히 어렵다고 호소하더군요. 하지만 우리 국민은 지혜롭기 때문에 한국의 위상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쉽게 불의에 타협하거나 무너지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그는 위기 극복을 위해 그리스어로 '함께 가자'는 '시노드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를 새롭게 건설하기 위해서는 공동선을 위해서 함께 가야 합니다. 내 뜻, 내 생각, 내 의견이 다르더라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포용할 줄 알아야 하죠.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경청하는 자세가 특히 필요하다고 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의미는 무엇일까. "하느님은 완전하고 절대적인 분인데, 예언자도 보냈고 많은 의인을 보냈지만 세상이 회개하지 않으니까, 내가 사람이 돼야겠다고 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죠. 하느님은 한 분이지만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입니다. 우리 인간 사회를 잘 이해하기 위해 우리와 똑같이 먹고 인간의 고뇌를 함께 느끼고 공감하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은 인간이 하느님을 죽인 사건이죠."

경기도 화성 3대째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 1학년 당시 소신학교 시절부터 서울에서 기숙 생활을 했다. 소신학교 6년, 대신학교 6년, 군대 3년 총 15년 뒤인 1979년 사제가 됐으며 본당 신부와 유학 생활, 수원가톨릭대에서 윤리신학을 가르치는 교수를 역임한 뒤 2003년부터 주교가 됐다. 2009년부터는 수원교구청 교구장을 맡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평생을 한길만 묵묵히 걸어온 셈이다. 소회를 묻자 "사제생활이건 주교생활이건 정신없이 달려왔다고 생각한다"며 "늘 쫓기면서 살았다. 교수가 되니까 논문을 채워야 하고, 주교가 되니까 현장도 나가야 하고 행사와 회의에 일이 폭주한다"고 말했다.

한눈팔지 않은 비결이 궁금했다. "기본에 충실하는 거죠. 사제 직무의 가장 바탕이 되는 게 기도입니다. 기도를 잘하면 다른 일은 다 잘됩니다. 성무일도라고 하는데요. 정해진 기도나 묵상기도, 명상기도 등 기도하는 시간에 자신을 반성하고 마음을 하느님께 향하지요. 하느님 없이 내 마음대로 하면 빗나갑니다."

신학생 모집이 어려울 정도로 사제 지망이 큰 폭으로 줄고 있다.

"제가 7대 종교 모임에 천주교 수장으로 나가니까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더군요. 불교에는 출가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고, 결혼이 가능한 개신교 목사님도 안 온답니다. 왜 안 오냐면 성직자로 사는 게 부담스럽다고 해요. 남을 의식하며 사는 것을 젊은이들이 어려워한다고."

그는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는 사제가 꼭 필요하다"며 "소외계층을 위해 발 벗고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 개인적 성취보다 사명감을 가진 시대의 예언자가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 달에 수십 권을 읽는 소문난 독서광이다. "한강 작가의 소설을 거의 다 읽었어요. 시대의 아픔에 공감하는 저항 작가더군요. 모든 소설이 울림을 주었어요."

은퇴까지 꼬박 3년 남았다. "사제로서 내 일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기쁩니다. 은퇴 후에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거나 책을 마음껏 읽고 싶습니다."

[수원 이향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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