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호룡 기자 |
[한국금융신문 곽호룡 기자]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한때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이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거침없이 질주하던 그 석유화학이 맞나 싶을 정도다.
업계는 이제 수익은 커녕 불황에서 어서 벗어날 수 있기만 바랄 뿐이다. 석유화학이 주력 계열사인 그룹은 유동성 문제가 불거질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일각에서 “과연 탈출할 희망은 있는가”라고 반문할 정도로 글로벌 업황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범용 석유화학 비중이 높은 롯데케미칼, 여천NCC, 효성화학 등은 2022년부터 매년 수천억원대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해외 사업장 매각에 이어 그룹 차원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고군분투중이다. 효성화학은 부채를 줄이기 위해 그나마 이익을 내고 있던 반도체용 특수가스 사업부를 효성티앤씨에 넘겼다.
범용 석유화학은 규모의 경제 논리가 작용하는 대표적 장치산업이다. 대규모 생산능력 확보와 수직계열화를 통해 원가 등 고정비를 낮춰 경쟁력을 키우는 구조다.
국내 석유화학 부진은 중국 업체 공급 과잉에서 비롯했다. 여기에 원유만 팔던 중동 산유국들도 적극적으로 석유화학 설비투자에 나서며 상황이 악화됐다. 국내 석유화학 산업이 단순히 경기 하강 사이클에 접어든 것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에 직면했다는 진단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문제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예고됐다. 지난 2015년 산업연구원이 내놓은 ‘차이나 리스크에 직면한 석유화학산업의 대응방향’이라는 보고서를 보자.
당시 산업연구원은 “한국 석유화학은 주로 중국에 수출하는 범용제품 비중이 80%를 넘는 개도국형 생산구조”라며 “중국은 머지 않은 장래에 석유화학 제품 수출국가로 전환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2016년 이후 저유가 여파로 국내 석유화학 대호황이 찾아오자 경고 목소리는 쏙 들어갔다. 오히려 석유화학은 국내 경제를 이끄는 대표 수출 품목 ‘차·화·정’으로 포장돼 각광을 받았다. 정부, 업계 모두 조 단위 영업이익에 취해 앞날을 보지 못했다.
기존 석화업체들 증설 경쟁은 물론 정유 기업들도 경쟁적으로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기업들은 당장 눈앞 이익에 매몰됐고, 정부도 실패 가능성 높은 다각화를 위한 연구개발(R&D) 지원에 소홀했다는 평가다.
이 난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국가 단위 구조조정으로 범용 제품을 버리고 스페셜티 산업으로 전환한 일본 사례를 벤치마킹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정부 주도 구조조정이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결국 기업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밖에 없다. LG화학, SKC 등과 같은 회사가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두 기업 모두 리더십을 통해 변화를 추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LG화학 신학철 부회장, SKC를 차례로 이끈 이완재 전 사장과 박원철 사장 모두 외부에서 영입한 최고경영자(CEO)들이다.
이들은 개인 플레이긴 했으나 상대적으로 빠르게 다각화하고, 신사업에 적극 투자했다. 단기적 처방이 아니라 참신한 리더십으로 문제 해결에 나선 것이다. ‘파괴적 혁신’만이 살 길이라는 얘기다. 물론 정부도 석유화학 위기 타개를 위한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곽호룡 한국금융신문 기자 horr@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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