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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월)

[르포 대한민국] 10년 동안 20점 추가 하락… 한국 성인 문해력은 OECD 평균에 미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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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문해력은 81국 중 아일랜드·일본 이어 3위로 최상위권 유지

OECD 평균보다 11점 낮고 갈수록 하락세인 성인 문해력이 진짜 문제

말보다 글의 가치가 낮게 평가된 탓…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협한다

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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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학부모의 문해력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수학여행 가정통신문에 ‘중식 제공’이라는 글을 보고 중국 요리를 제공한다고 이해하거나, ‘우천시에 OO로 장소를 변경한다’고 하면 ‘우천시’라는 지역에 있는 OO로 장소를 변경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이를 놓고 젊은 세대가 동영상에 지나치게 익숙해진 결과로 받아들이거나, 한자 교육을 부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학부모 입장에서 보자면 모두 틀린 분석이다. 학교에서 배부되는 가정통신문을 읽다보면 핵심을 이해하기 어렵거나 오해하기 쉽게 작성되는 경우가 많았다. 핵심을 쉽고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고민하기보다는 작성자가 과거 양식만 따라 쓰기 때문이다. 그러니 장황하면서 핵심을 파악하기 어려운 가정통신문이 나오는 것이다. 학부모뿐만 아니라 교사의 의사 전달 능력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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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세대의 경우 더욱 심각하다. 관공서나 병원에서 만나는 고령층 대다수는 각종 안내문을 읽고 이해할 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잘 보이도록 큰 글씨로 써놨지만 아예 볼 생각을 하지 않고 불친절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공무원과 간호사들이 최대한 큰 목소리로 설명을 해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오해가 쌓이면서 피곤함은 더해진다. 글자는 읽을 수 있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실질적 문맹이 사회에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낮은 문맹률은 우리의 자랑이었다. 해방 직후 78%에 이르렀던 문맹률을 낮추기 위해 전쟁 중이던 1953년 ‘문맹 국민 완전 퇴치 계획’을 수립했다. 총력을 기울여 한글을 가르치면서 1958년 말 문맹률은 4.1%까지 낮아졌다. 놀라운 성취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글자를 아는 것과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무시했다. 성인들의 문해력에 대한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조사는 2014년이 되어서야 시작됐다. 2023년 실시된 제4차 성인문해능력조사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16.6%인 약 735만명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충분한 문해력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60세 이상으로 대상을 한정할 경우 그 비율은 41.7%까지 증가한다. 이 조사에서 일상생활에 충분한 문해력 수준을 중학교 수준으로 낮게 설정하고 있음을 고려해보면 실제 생활에서 문해력이 부족한 사람의 비율은 더 높아질 수 있다.

학생들의 문해력 저하에 대해 우려가 많지만 대한민국 학생 문해력은 세계적으로 높은 편이다. 2022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주관해 81국 69만명에 이르는 만 15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은 읽기 영역에서 515점을 기록해 아일랜드, 일본에 이어 3위였다. 2006년 556점과 비교하면 낮아졌지만 여전히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인터넷과 동영상에 푹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학생들은 세계적으로 우수한 수준의 문해력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성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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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는 만 16~65세 성인들에 대해서도 PISA와 유사하게 언어능력, 수리력 및 문제 해결 능력을 측정하는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를 실시하고 있다. PIAAC의 특징은 동일 집단에 대해 10년 간격으로 조사를 반복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2012년 조사에서 25~34세였던 집단이 2022년에는 35~44세가 되는데 이 집단의 역량이 10년 사이에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조사하는 방식이다. 조사 결과, 우리나라는 문해력의 경우 500점 만점에서 249점으로 OECD 평균 260점보다 11점 낮게 나타났다. 학생들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성인들은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10년 사이에 20점 이상 점수가 하락하면서 수준이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한 국가로 분류됐다.

PIAAC에서 드러난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가파른 문해력 하락세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취직해서 여러 가지 업무를 수행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면 일정 시점까지 문해력은 상승해야 한다. 그리고 중년 및 고령층이 되면 육체 능력의 감퇴와 더불어 문해력이 감소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의 성인 문해력은 모든 연령대에서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여주며 특히 연령이 높아질수록 하락 폭은 더 커진다. 핀란드·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 젊은 층에서는 문해력이 오히려 좋아지며, 연령이 높은 경우에도 비교적 완만한 감소세를 보여준다. 일본의 경우 젊은 층에서는 일정 부분 향상을 보이다가 이후 감소하지만 우리나라보다는 덜 극단적인 패턴을 보여준다.

이러한 차이는 대한민국 사회가 문해력과 관련한 구조적 문제가 존재함을 보여준다. 정확한 원인에 대해서는 관계 기관과 전문가들의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우리 사회 거의 모든 곳에서 글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각종 규정과 절차는 무시되기 일쑤이고, 업무를 하면서 매뉴얼을 뒤적이는 사람은 눈치 없는 사람으로 간주되기 십상이다. 말보다 글의 가치가 낮게 평가되는 곳에서 문해력이 높아질 가능성은 없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인정하고 직시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보여주고 있는 낮은 성인 문해력은 우리 사회가 큰 문제를 안고 있음을 보여준다. 낮은 문해력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협한다. 지식정보 사회에서 문해력이 핵심적인 역량임을 고려해보면 우리는 지난 20년간 문제를 방치해오면서 미래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해왔다. 그 결과, 가짜 정보와 소문에 휘둘리며 의사 결정권자가 엉뚱한 판단을 내리거나, 사회적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가장 빠른 고령화를 겪고 있는 우리로서는 남은 시간이 없다. 문제의 원인을 찾고 해결 방안을 내놓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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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수석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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