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년 만의 미투' 당사자인 최말자씨가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56년 만의 미투' 사건 재심 개시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최씨는 1964년 성폭력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고의에 의한 상해'로 구속 수사 및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60년 전 성폭행하려는 남성의 혀를 물어 절단했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최말자(78)씨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재심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판단을 내놨다. 18세 소녀가 78세 노인이 돼서야 법정에서 억울함을 다시 다툴 수 있게 된 것이다. 만시지탄이다.
이 사건은 영화화까지 됐을 정도로 세간의 큰 관심을 모았다. 1964년 당시 18세였던 최씨는 노모(당시 21세)씨의 성폭행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혀를 깨물었고 1.5cm가량이 잘려 나갔다. 최씨의 정당방위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를 구속한 검찰은 외려 “장애인으로 만들었으면 결혼을 해라” 등의 2차 가해까지 했다.
법원도 최씨 편이 아니었다. 재판부는 “젊은 청년을 일생 불구로 만들었다”며 중상해죄를 적용해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강간미수죄가 아닌 주거침입죄 등만 적용된 남성의 형량(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보다도 높았다. 최씨는 6개월간 옥살이도 했다. 이 사건은 정당방위를 다룬 대표적 판례로 형법학 교과서에 실렸고, 1995년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법원 100년사에 소개되기도 했다.
‘미투 운동’에서 용기를 얻은 최씨는 여성단체 도움으로 2020년 5월 재심을 청구했다. 그러나 달라진 사회 환경에서도 법원의 벽은 높았다. 1·2심 법원은 “무죄 등을 인정할 새로운 명백한 증거가 없다”며 최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심 이유를 열거하고 있는 형사소송법 조항(제420조)을 자구 그대로 협소하게 해석한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최씨 진술이 충분히 합리적이고 그에 부합하는 다른 직·간접 증거가 여럿 있다면, 객관적 물증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별다른 사실조사 없이 청구를 기각하는 건 부당하다고 봤다. 전향적인 결정에 늦었지만 박수를 보낸다.
이제 최씨 사건은 본안 재판에서 다시 다투게 될 전망이다. 최씨는 4년 전 재심을 청구하면서 “사법이 변하지 않으면 후세까지 나 같은 피해가 이어질 수 있겠다는 절박한 생각에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정당방위에 대한 인색한 판결이 적지 않다. 이제 법원이 최씨의 용기 있는 외침에 의미 있는 답을 내놓기 바란다.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