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내한 앞둔 오를린스키 인터뷰
폴란드 카운터테너인 야쿠프 유제프 오를린스키는 브레이크 댄스로 여러 대회에서 입상한 전문 춤꾼이기도 하다. /야쿠프 유제프 오를린스키 페이스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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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는 본래 수백 년 전 이탈리아 궁중 문화의 산물이다. 브레이크 댄스는 20세기 미국 거리 문화의 상징이다. 폴란드 출신 성악가 야쿠프 유제프 오를린스키(34)는 얼핏 상관없어 보이는 이 둘을 결합시켰다.
오를린스키는 바로크와 고전 시대 오페라로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는 카운터테너다. 카운터테너는 알토나 메조소프라노 음역을 소화하는 남자 성악가를 일컫는다. 동시에 그는 거리에서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비 보이(B-boy)일 뿐 아니라 나이키·리바이스 등의 패션모델이기도 하다.
새해 1월 11일 아트센터인천에서 첫 내한 공연을 앞두고 있는 오를린스키와 20일 영상으로 인터뷰했다. 첫 질문은 “왜?”였다. 화면 너머의 그가 웃으며 말했다. “20여 년 전까지도 재즈와 팝, 힙합과 클래식의 구분은 뚜렷했죠. 하지만 우리 시대에 이른바 고급문화와 거리 문화는 복잡하게 뒤섞이고 있어요.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거리 미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데, 왜 클래식은 안 되는 거죠?”
그의 답변을 듣다가 문득 얼굴 없는 거리의 미술가인 뱅크시(Banksy)가 떠올랐다. 심지어 오를린스키는 오페라 도중에도 격렬한 춤 동작을 곁들인다. 그는 “등장인물의 감정이 폭발하거나 반대로 기쁨을 표현하는 등 분명한 성격 묘사를 위해서 필요한 경우에 한다는 원칙은 있다. 하지만 내 능력이 무대에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선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건축·미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조부는 건축가였고, 부모님과 형은 화가나 그래픽 예술가다. 오를린스키는 “여덟 살 때부터 소년 합창단에서 노래했지만, 고교 시절까지는 막연하게 화가가 될 줄 알고서 그림과 소묘들을 들고 다녔다. 물론 실력은 형편 없었지만…”이라며 웃었다.
그의 노래를 듣던 친구들이 성악을 권유했고, 남성 중창단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첫 음역은 굵고 낮은 베이스 바리톤이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기의 고(古)음악들을 부르다가 뒤늦게 카운터테너의 고(高)음역이 잘 맞는다는 걸 깨닫게 됐다. 오를린스키는 “당시 폴란드에는 유명한 카운터테너가 없어서 관객들이 웃은 적도 있었고, 저 역시 처음에는 살짝 창피하고 부끄러웠다”며 웃었다. 바르샤바의 쇼팽 음악원에서 성악을 전공한 뒤 미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유학했다.
독특한 점은 10대 시절부터 브레이크댄스를 췄다는 점이다. 그저 취미 수준이 아니라 여러 대회에서 입상한 전문 춤꾼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나무 오르기와 스케이트보드, 스키까지 도무지 가만히 있는 걸 못 견뎠다. 지금도 오페라나 콘서트 다음 날 거리에서 동료들과 춤추기도 한다”고 했다. 부상 걱정은 없을까? 그는 “무척 조심하지만 ‘창조를 위해서는 넘어지고 부서질 수 있어야 한다’는 말에 이끌린다”고 했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는 고음악 전문 앙상블 ‘일 포모 도로’와 함께 바로크 곡들을 부른다. 오를린스키는 “내게는 언제나 단 하나의 구분,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2만~4만원.
[김성현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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