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차. 연합뉴스 |
국가인권위원회가 ‘배려’를 명분 삼아 여성 소방 공무원의 현장 출동 업무를 제한한 소방서의 행태를 ‘차별 행위’로 판단하고, 해당 소방서가 속한 소방본부에 재발방지대책 마련 등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인천소방본부장에게 “현장 출동 시 여성대원 배제 등 성차별적 업무 배치를 하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과 간부 대상 성평등 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고 23일 밝혔다. 앞서 인권위는 지난해 8월 인천의 한 119안전센터에서 여성 소방공무원 ㄱ씨가 소방차량 운전 업무에서 불합리하게 배제됐다는 내용의 진정을 접수해 조사해왔다.
인권위 차별시정위원회(소위원장 남규선 상임위원) 결정문을 보면, 2018년 소방공무원으로 임용된 ㄱ씨는 소방관이 되기 전부터 대형면허를 취득하고 임용 이후에도 대형차량 운전 교육을 받는 등 운전 업무 수행을 원했다. 하지만 소방서 조직에선 “여자가 왜 운전하면 안 되는지 알려줄게” 등의 차별적 발언을 하며, ㄱ씨의 운전 업무를 가로 막는 분위기였다.
지속적인 요구로 ㄱ씨는 2022년부터 화학차(특화 소방차량) 운전 업무를 담당하게 됐지만, 이후로도 여성 소방공무원이 소방차량을 모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는 조직에 만연했다. 특히 지난 4월 홍성 산불 당시 지원 업무 과정에서 ㄱ씨의 직속 상관 ㄴ팀장은 화학차를 출동시키며, 정작 업무 담당자인 ㄱ씨를 배제하고 남성 대원을 배치했다고 한다. 피진정인인 ㄴ팀장은 인권위에 “산불 출동에서 진정인(ㄱ씨)을 제외한 것은 현장의 열악한 환경을 고려한 배려이자 해당 업무를 숙련되게 수행할 인력으로 출동대를 편성한 것으로서, 진정인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배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인권위는 양쪽 주장과 참고인 진술 등을 종합한 결과 “피진정인(ㄴ팀장)은 여성이 운전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하고 있었던 점이 확인된다”며 “이런 인식 때문에 대형면허를 보유하고 이전 근무지에서 물탱크차 등 실습 경험이 있는 진정인이 남성대원과 비교해 원하는 운전 업무를 수행할 기회를 얻지 못한 것으로 보았다”고 했다. 아울러 ‘열악한 환경을 고려한 배려’라는 ㄴ팀장 답변에 대해서도 “보호와 배려의 명목으로 특정 업무에 배치하지 않는 것은 성차별적 인식의 또 다른 단면”이라며 “진정인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해당 업무를 수행하지 못할 합리적 사유를 발견하기 어렵다”고 했다.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적인 소방공무원 조직에서 여성 소방관에 대한 차별은 만연히 벌어진다. 2015년 인권위가 벌인 ‘소방공무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서 여성 소방공무원의 39.9%(195명)가 직장 내 차별을 경험했고, 이 중 56.9%(111명)가 ‘성별로 인해 차별당했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인권위는 “여성이 업무 수행 능력이나 의사와 무관하게 다양한 직무를 경험하지 못하거나 기회 자체가 차단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며 “개인 차원의 각성이 아닌 조직 차원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고, 인천소방본부장에게 재발방지 대책 마련과 간부 대상 성평등 교육을 주문했다”고 밝혔다.
소방관들이 심폐소생술 연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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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비 기자 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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