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라도 드려보려고 전화했습니다.”
금융감독원이 특정 회사에 대한 검사 결과를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한 날 아침의 흔한 풍경이다. 요즘 유독 이 말로 시작하는 연락을 많이 받는데, 내용은 대체로 비슷하다. 전화를 건 쪽은 금감원의 검사 대상이 된 회사이고, 요지는 금감원의 보도자료에 자신들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언급된 금감원의 보도자료는 ‘잠정’ 검사 결과다. 잠정 검사 결과 배포는 최초의 검사 출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취임하면서 자리 잡은 일종의 ‘문화’다.
문제는 보도자료가 배포되는 순간, 잠정이 잠정이 아닌 게 된다는 점이다. 시장은 ‘현재 이 회사가 이런 혐의를 받고 있구나. 조금 더 지켜봐야겠다’가 아닌 ‘이 회사가 이런 짓을 저질렀구나’라며 나쁜 회사로 받아들인다.
이런 자료는 몸집이 작은 회사일수록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투자가 뚝 끊겨 생업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되는 중소형 운용사가 많다. 강조하지만, 회사를 편 들려는 게 아니다. 혐의가 확정되기 전까지 무죄 추정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을 언급하는 것이다.
특정 회사의 위법 여부는 금감원의 검사 이후 금융위원회 논의를 거쳐 결정된다. 금융위의 결정을 납득할 수 없다면 회사는 행정소송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써 법원의 판단을 받기도 한다. 금융위나 법원만이 ‘이 회사가 불법을 저질렀다’고 말할 수 있다. 금감원은 그런 자격이 없고, 그래서 ‘잠정’ 검사 결과인 것이다.
물론 금감원의 빠른 일 처리가 도움이 될 때도 있다. 부도덕한 회사로 자금이 흘러가는 것을 막아 추후 발생할 시장 혼란을 예방할 수 있다. 또 다른 금융사들에 보도자료에 나온 행위를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금감원의 칼날이 그렇게 정확하다고 자부할 수 있나’는 생각해 봐야 할 지점이다. 지적받은 회사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추가 취재를 해보면 일부 납득이 가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금융위나 법원에서 금감원의 판단이 뒤집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달 20일 박정림 전 KB증권 대표가 금융당국의 중징계 불복 소송에서 1심 승소한 게 대표적인 예다.
이런 사태의 시발점은 금감원의 시각에서 금감원의 입장만 담긴 보도자료다. ‘지적된 회사가 반박 자료를 내면 되지 않느냐’는 몰라도 한참 모르는 비판이다. 시장에서 금감원의 위치는 절대적이라 회사가 공개적으로 반박하면 승산 없는 싸움이 시작된다. 그러니 아는 기자들한테 알음알음 사정을 설명하는 전화를 하며 가슴만 앓는 상황이다.
다만 잠정 검사 결과 발표의 긍정적인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금감원의 보도자료에 지적된 회사의 입장을 담는 것을 제안한다. 회사 측이 가장 억울해하는 부분은 “금감원에 충분히 설명했는데 자료가 이렇게 나왔다”다. 물론 금감원 입장에선 회사의 말이 핑계같이 들릴 수 있지만, 반론권 또한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다. 금감원의 지적에 회사가 어떤 답변을 내놨는지 함께 공개해 최종 판단은 시장에 맡기는 방안이 보다 균형적이다.
한 가지 더. 사안이 면밀하게 해석되길 바란다면 보도자료 배포 시간 역시 앞당겨야 한다. 일례로 몸값을 부풀려 상장했다는 혐의를 받는 파두 검사 결과는 금요일 오후 5시 37분에 배포됐다. 파두 직원들이 퇴근을 앞둬 기자들이 충분히 취재하기 어려운 시간이다. 악재성 공시를 금요일 오후에 내는 ‘올빼미 공시’를 비판하는 금융당국이 아니던가. 금감원이 잠정 결과에 자신 있다면, 보도자료 배포 시간 또한 앞당겨주길 제안한다.
문수빈 기자(bea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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