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치는 판소리에 뿌리를 두고 팝으로의 장르 변주를 시도하는 얼터너티브 팝 밴드다. 왼쪽부터 이용진(드럼), 최수인(보컬), 전효정(보컬), 노디(베이스), 안이호(보컬), 장영규(베이스)로 구성됐다. 사진 하이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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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9%를 돌파하고 인기리에 방송 중인 JTBC 토일드라마 ‘옥씨부인전’에는 조선 최고의 예인 천승휘 캐릭터가 나온다. 인기만점 전기수(조선시대 낭독가)인 그는 직접 겪은 일을 책으로 쓰고, 공연 형태로 엮어 노래를 하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밴드 이날치는 현실의 천승휘와 같은 존재다. 안이호(보컬·44), 전효정(보컬·27), 최수인(보컬·24), 장영규(베이스·56), 노디(베이스·39), 이용진(드럼·41)으로 구성된 밴드 멤버들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판소리 스타일을 빌려 노래한다. 판소리 ‘수궁가’ 중 별주부가 호랑이를 만나는 대목에서 모티브를 얻은 ‘범 내려온다’가 이들의 히트곡이다. 코로나 시국이던 2020년 발매된 이 곡은 한국관광공사 유튜브 캠페인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 서울’ 영상으로도 사용돼 조회수 5200만 뷰를 기록 중이다. ‘조선의 힙스터’, ‘조선의 아이돌’이란 별명도 생겼다.
지난해엔 홍콩, 덴마크, 슬로바키아 등 해외 공연을 돌며 인기를 실감했다. 지난해 공연 중 영국 런던 사우스뱅크센터의 퀸 엘리자베스 홀에서 열린 K뮤직 페스티벌에서는 미발매 신곡 ‘히히하하’를 미리 들려주고 떼창을 성공적으로 유도했다.
이날치가 2집 프로젝트 첫 싱글로 공개한 노래 '봐봐요 봐봐요'. 사진 이날치 유튜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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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치는 지난달부터 매달 싱글을 발표하는 2집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11월 5일 나온 첫 번째 싱글 ‘낮은 신과 잡종들’에는 ‘봐봐요 봐봐요’, ‘발밑을 조심해’ 두 곡이 담겼다. ‘히히하하’는 2집 프로젝트의 두 번째 싱글로 26일 공개된다. 이 노래들은 기존의 판소리를 토대로 한 것이 아니라, 극작가 김연재와 협업한 창작물이다. 왕의 정복 전쟁이 벌어진 태고의 어느 날, 두 주인공 더미와 자루가 전쟁과 폭력에 맞서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다. 노랫말엔 “자웅 자웅 자웅”, “퉁 쾡 자르르르르”, “우줄 우줄” 등 국어사전에 있거나 없는 의태어, 의성어가 흩뿌려져 재미를 더한다.
지난 20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 이날치 사무실에서 만난 멤버들은 “2집부터는 판소리 근간이 되는 이야기를 창작하면서 노래를 내는, 과거의 소리꾼처럼 앨범을 만들고자 한다”며 ‘21세기 판소리’를 예고했다. 해외 반응에 대해서는 “우리 음악을 낯설게 느끼는 지점이 있을텐데, 그것이 한국의 전통 음악이라서가 아니라 ‘이날치라는 밴드의 창법과 선율이 특별하다’고 생각해 주시는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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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 3, 베이스 2, 드럼 1
이날치만의 선율은 독특한 멤버 구성으로부터 출발한다. 기타, 피아노와 같은 화성음을 이끄는 악기 대신 판소리 보컬 3인으로 멜로디를 채운다. 당초 시작은 보컬이 4인이었으나, 2집을 제작하면서 멤버 재편을 거치고 1년 전 이 조합으로 확정했다.
두 명의 베이스와 드럼은 판소리의 고수(북치는 사람)와 같은 역할로, 이날치만의 가락을 만드는 중요한 구성요소다. 노디는 장영규에 대한 궁금증과 존경심을 안고 이날치에 새로 들어왔고, 이용진은 전 멤버 정중엽의 추천을 받아 이날치에서 드럼 스틱을 잡게 됐다.
밴드 이날치는 tvN '정년이' OST인 '새타령' 라이브 클립을 공개했다. 이날치 베이시스트 장영규가 '정년이' 음악감독을 맡았다. 사진 하이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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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를 주도적으로 결성한 장영규는 “공식적으로 기록되지 않았으나 분명히 존재했을 판소리의 다양한 형태에 주목했다. 여기에 상상력을 더해,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닌 오늘의 대중음악을 하기 위해 이날치만의 멤버 구성을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1990년대 밴드 어어부 프로젝트를 하면서 국악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이후 충무로에서 ‘천재 음악감독’으로 입지를 다졌다. 최근엔 여성 국극 주제의 드라마 tvN ‘정년이’의 음악감독으로 참여해, 중독성 강한 “쑥국 쑥국 쑥쑥국 쑥국”이란 추임새의 이날치 버전 ‘새타령’으로 화제를 모았다.
새로 합류한 보컬 전효정과 최수인은 서울대학교 국악과 출신의 20대 소리꾼이다. 학창시절부터 각종 판소리 대회를 휩쓸었던 최수인은 “1년 전 이날치 보컬이 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선 ‘궤도에서 벗어난 활동’이라면서 걱정했다. 막상 해보니 해방감을 느꼈고, 이러한 자유로움은 전통 소리를 갈고닦는 데에도 도움이 됐다. 특히 우리 세대 국인인은 현대음악과 접목하는 그 스펙트럼이 점차 넓어지고 있기도 해서, 이날치 합류에 있어 주저함은 없었다”고 전했다.
‘범 내려온다’ 히트 이후 팀에 들어온 전효정은 “솔직히 부담이 됐다. 전 멤버의 성대모사를 해야 하는 것인지, 나만의 노래를 불러야 하는 것인지 그 고민을 깨는 작업들을 지난해 내내 했다. ‘쉽게 하는 것처럼 보이면 그 사람이 진짜 고수’라는 말을 이날치에 들어와서 절실히 깨달았다”고 밝혔다.
원년 멤버인 안이호는 두 보컬의 대학 선배로서 “자신이 가진 재주를 무기 삼아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나도 처음에 전통을 벗어난 시도가 두려웠다. 막상 지금은 그런 고민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각자 가진 무기에 맞는 쓰임새를 찾는 것 뿐이다. 전통을 존중하되, 얽매일 필요는 없다. 자신이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를 찾는다면 성과는 따라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치는 판소리에 뿌리를 두고 여러 팝 음악을 시도하는 얼터너티브 팝 밴드다. 안이호(보컬), 전효정(보컬), 최수인(보컬), 장영규(베이스), 노디(베이스), 이용진(드럼)으로 구성됐다. 사진 하이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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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걸린 2집, 조급함은 없다
이날치는 2집 프로젝트에서 자신들의 무기를 더욱 날카롭게 갈기로 했다. 판소리에 팝을 접목하는 독창적 시도를 한층 확장하고자, 판소리 근간이 되는 이야기부터 썼다. 장영규에 따르면 멤버들의 경험담을 토대로 판소리를 창작하고자 했으나, 멤버 구성이 바뀌게 되면서 극작가 김연재와 협업한 완전한 새로운 창작물로 방향을 틀었다.
이 과정에서 완성에 무려 4년이나 걸리게 됐다. 그럼에도 멤버들은 “조급하지 않다. 빠른 컴백보다 우리 이야기를 펼치는 것이 중요했고, 이 과정은 앞으로의 3집이나 4집에서 좀 더 수월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어려운 길을 택한 배경으로는 “1집의 성공 이후 국악을 재해석하는 무대가 많아졌다. ‘정년이’ OST로 ‘새타령’을 불렀고 내년에는 ‘흥보가’를 재해석해 보여드릴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작업들이 있으니, 우리 음반에서만큼은 새로운 창작을 해야만 했다”고 강조했다.
내년 초여름까지 이어질 2집 프로젝트의 목표는 간단하다. 이날치는 “사람들은 우리가 특별한 장르를 한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팝 기반의 대중음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반짝 화제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우리 음악의 특별한 음악성을 인정받고 싶다”고 바랐다.
황지영 기자 hwang.jee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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