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25 (수)

[박진석의 시선] 내란 특검 집착하다 수사 적기 놓칠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박진석 기획취재2국장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이 황폐한 사막 수준이던 시절, 특별검사제는 그 어딘가에 있을 오아시스로 인식됐다. 도입만 된다면 검찰이 은폐한 진실을 낱낱이 파헤칠 거라는 기대감이 넘쳐났다.

1999년 역사적인 1, 2호 특검팀이 동시 출범했을 때 그 기대감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하지만 특검은 신기루였다. 결과는 신통치 않았고, ‘특검만능론’은 빠르게 ‘특검무용론’으로 바뀌었다. 그 뒤를 이어 열두 개의 특검팀이 더 명멸했다. 그중 그나마 성공이라고 볼 수 있는 건 ‘이용호 게이트’ 특검, 대북송금 특검, 드루킹 특검, 박근혜 특검 등 네 건에 불과하다. 14타수 4안타, 타율 2할8푼5리. 막대한 예산과 인력의 투입을 고려하면 상당히 비효율적인 수치다.



검·경·공, 사활 건 수사 경쟁

중립성·의지 의심 여지 없어

특검, 기소 지연 역효과 우려

특검팀은 ‘외인부대’이며 임시 조직이다. 근본적으로 상시 엘리트 조직인 검찰의 수사력에 필적하긴 어렵다. 그런데도 특검제가 유효한 건 수사 성패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 즉 수뇌부의 정치적 독립성과 수사 의지 측면에서 우월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뒤집어보면 수사기관의 정치적 독립성과 수사 의지가 확고할 경우 굳이 특검팀을 운영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

여기 두 개의 특검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약칭 ‘김건희 특검’과 ‘내란 특검’이다. ‘김건희 특검’은 과잉 입법에 대한 우려는 있을지언정 특검제도의 취지에 완벽하게 부합한다.

하지만 ‘내란 특검’도 그럴까. 이 특검법은 특검팀 출범이 필요한 이유로 현재 이 사안을 수사 중인 세 수사 기관에 대한 우려와 불신을 들었다. 조문의 요지를 옮겨보자. ‘검찰의 경우 윤석열 대통령이 전직 검찰총장으로 검찰에 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우려가 있으며, 법무부 장관이 내란 행위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어, 공정한 수사를 할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고.’

검찰이 몰락한 옛 보스를 사수할 정도로 의리 있는 조직인가. 과대평가다. 권력의 향배에 따라 언제라도 ‘바람보다 먼저 눕는 풀’이 돼 온 게 검찰이다. 게다가 지금의 검찰은 ‘윤석열 정권’ 내내 대통령과 한 몸이라는 의심을 받아왔다. 하루라도 더 빨리 배신의 종을 울리면서 정반대 방향으로 전력 질주해야 제 한 몸이나마 건사할 수 있는 상황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이런 절박함에서 비롯된 검찰의 수사 의지를 의심할만한 대목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음 조문을 보자. ‘경찰은 (중략) 경찰청장·서울지방경찰청장이 고발돼 있어 자기 조직의 수장에 대한 공정한 수사를 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 어렵고.’ 경찰이 이미 그 경찰청장, 서울청장을 구속했다는 사실만 내밀어도 해명은 충분할 듯하다.

다음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공수처는 수사 역량이 부족하다는 우려가 있음.’ 맞다. 하지만 지금의 공수처는 소수의 인력으로 기신기신 연명하던 미니 조직이 아니라 경찰 국가수사본부, 국방부 조사본부와 합쳐진 초대형 공조수사본부의 머리다. 게다가 경찰과 공수처에 있어서 이번 사건은 대형 사건 수사 능력을 입증해 조직의 존재 가치를 증명할 절호의 기회다. 적어도 수사 의지 측면에서 세 기관 모두 진정성을 의심할 부분이 없다. 기자가 특검 도입 움직임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 이유는 수사 지연 가능성에 대한 우려다. 특검팀 설치가 확정되는 즉시 폭주 기관차처럼 달리는 세 기관의 수사에는 급제동이 걸릴 거다. 그리고 특검팀이 본격 수사에 착수하려면 최소한 한 달 이상이 소요된다. 특검법은 특검 선임까지의 절차에만 열흘 가까이 배정하고 있다. 게다가 이 모든 절차가 관련 인사들 간에 서면 소통으로 진행된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특검을 선임한다 해도 그때부터 다시 준비 기간 20일이 부여된다.

물론 특검 공백기에도 기존 수사기관의 수사는 이어질 거다. 하지만 빼앗기는 것으로 결론 난 사건에서 원래의 수사 동력을 유지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피의자와 참고인들이 특검 출범을 핑계 삼아 소환 불응으로 태도를 돌변한 경우는 과거 숱하게 목도한 바다. 게다가 서두에 언급한대로 특검팀은 아무리 대규모라 해도 수사력에 대한 근본적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찍이 덩샤오핑이 설파한 대로 흑묘백묘다. 그게 특검이든 검찰이든 공수처든 경찰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중요한 건 누가 수사하느냐가 아니라 하루라도 빨리 윤 대통령을 재판에 넘겨 비상계엄의 책임을 묻고 2차 계엄 가능성 및 후대에 불거질 수 있는 모방심리의 싹을 잘라내는 것 아닐까. 혹여 야당이 특검법안 시행을 교조적으로 밀어붙이다가 수사의 적기를 놓칠까 걱정돼 한 마디 던져본다.

박진석 기획취재2국장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