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 참가자들이 ‘봉꾸’(응원봉 꾸미기)한 작품들을 모아봤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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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중음악계에는 유독 사건∙사고가 많았다. 케이(K)팝의 급속한 성장으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덩치가 커진 시장에 다양한 행위자들이 뛰어들었다. 예전 같으면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만 퍼지고 묻혔을 소식이 수많은 매체를 통해 확대·재생산되면서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거대 담론이 사라지고 미시 서사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올 한해 대중음악계를 평가했다. 몇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수많은 이슈들이 있었다는 얘기다. 올해 이슈 가운데 되짚어볼 것들을 추렸다.
고 김민기. 학전 제공 |
‘뒷것’ 김민기, 하늘로 떠나다
방실이, 현철, 키보이스의 김홍탁 등 올해 세상을 떠난 음악인들이 많았다. 그 가운데 저항의 상징 ‘아침 이슬’ 김민기의 죽음은 전 사회적 주목을 받았다. 그가 지난 7월21일 세상을 떠난 뒤 올봄 방송됐던 특집 다큐멘터리가 다시 회자되는 등 추모 열기는 길게 지속됐다. 자신을 ‘뒷것’으로 표현하면서 드러나지 않게 수많은 예술가들을 키워온 그의 철학은 큰 울림을 줬다. 4200회 이상 공연이란 대업적을 남긴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성공 뒤에 ‘돈 안 되는’ 어린이 공연 제작에 뛰어든 선택도 다시 평가를 받았다. 한국 공연 문화의 산실 학전은 폐관돼 아르코꿈밭극장으로 바뀌었지만, 살아있는 김민기의 정신은 여전히 ‘대학로 후배들’을 키워내고 있다.
나훈아. 예아라∙예소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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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가황’…돌아온 ‘가왕’
올해 2월 ‘가황’ 나훈아가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데뷔 58년 만이었다. 나훈아는 “‘박수 칠 때 떠나라’라는 쉽고 간단한 말의 깊은 진리의 뜻을 저는 따르고자 한다”고 은퇴의 변을 밝혔다. 현재 고별 전국 투어 ‘2024 고마웠습니다―라스트 콘서트’를 진행 중인 나훈아는 최근 대구 공연에서 “우짜면 좋노 싶더라”며 비상계엄에 대한 착잡한 심정을 밝혀 화제가 됐다. 그는 내년 1월12일 서울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에서 가수 인생 마지막 콘서트를 앞두고 있다.
조용필.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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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가왕’ 조용필은 지난 10월 마지막 정규앨범 ‘20’으로 컴백하면서 “안 되겠다 싶을 때 그만두겠다”며 활동 의지를 불태웠다. 11월 서울에서 시작한 전국 투어 콘서트도 성황리에 진행 중이다. 그는 이 콘서트에서 쉼 없이 30여곡을 부르며 여전히 현역임을 과시했다. 조용필의 왕성한 활동은 후배 가수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11월 ‘이별에도 사랑이’를 발표하며 컴백한 이문세는 “용필이 형이 은퇴 안 했으면 좋겠다. 나도 안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왼쪽)와 방시혁 하이브 의장. 어도어, 하이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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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 vs 민희진…끝나지 않은 싸움
올해 케이팝 업계에선 하이브와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의 갈등 이슈가 블랙홀 같은 역할을 했다. 하이브가 지난 5월 경영권을 찬탈 기도를 이유로 민 전 대표에 대한 감사에 착수하면서 불거진 갈등은, 민 전 대표의 격정적인 135분 기자회견을 거치며 국민적 화제로 떠올랐다. 양쪽의 공방이 길어지면서 민 전 대표가 키워낸 그룹 뉴진스와 그 팬덤으로도 갈등이 번졌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하이브 아이돌 문건’이 공개되면서 케이팝 업계 전체를 뒤흔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걸그룹 뉴진스 멤버들이 11월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스페이스쉐어 삼성역센터에서 전속계약 해지 관련 기자회견을 열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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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봉합은 더욱 멀어지는 모양새다. 지난달 뉴진스가 소속사 어도어에 전속계약 해지 통보를 하면서 독자 활동을 하고 있고, 어도어는 전속계약이 유효하다는 확인 소송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번 사태에 중대 변곡점이 될 민 전 대표의 업무상 배임 고발과 관련한 경찰 수사 결과 발표는 12·3 내란 사태로 조지호 경찰청장,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이 구속되면서 해를 넘기게 됐다.
‘아파트’ 뮤직비디오 한 장면. 유튜브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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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돌풍…잘나가는 K팝
이러한 갈등 와중에도 여전히 케이팝은 잘나가고 있다. 특히 블랙핑크 멤버 로제가 세계적인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함께 발표한 ‘아파트’의 글로벌 히트는 케이팝의 인기를 다시금 확인시켜줬다. 25일 현재 빌보드 ‘핫 100’에 9주 연속 머물고 있는 ‘아파트’는 ‘글로벌 200’ 차트에선 9주째 1위를 지킬 만큼 지구촌 초히트작이 됐다. 한국에선 윤수일이 1987년 발표한 ‘아파트’가 차트 역주행하는 현상도 벌어졌다. 한국 젊은이들의 술 게임을 소재로 한 ‘아파트’가 케이팝의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기본 전략을 확인시켜줬다는 것이다.
‘아파트’ 외에도 제이와이피(JYP)엔터테인먼트의 그룹 스트레이 키즈는 최근 발표한 앨범 ‘합’이 빌보드 앨범 차트 ‘빌보드 200’에서 1위로 데뷔하면서 빌보드 최초로 6연속 ‘빌보드 200’ 1위 데뷔라는 기록을 남겼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지난 14일 오후 국회 앞에서 시민들이 각자의 응원봉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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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세계’…거리 밝힌 응원봉
연말 행복한 일상을 파괴한 내란 사태에서 시민들을 하나로 묶은 것은 다름 아닌 케이팝의 상징 ‘응원봉’이었다. 촛불을 대신한 응원봉은 전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민주주의 운동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여의도에서 울려 퍼진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는 민중가요를 넘어서는 집회 노래로 등극했다.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는 “대학가 학생운동이 없어지면서 집단의 목소리를 낼 기회가 적었던 20대에게 탄핵 집회는 새로운 체험을 제공했다. 이들을 하나로 묶은 것이 케이팝”이라고 짚었다. 케이팝 위주의 탄핵 ‘플리’(플레이리스트)가 공유되면서 40대 이상 중장년층도 케이팝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애들이나 듣는 것”이라고 치부하던 음악이 순식간에 시대를 상징하고 세대를 통합하는 음악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의도치 않은 불똥을 만들기도 했다. 아이유 등 집회 현장 음식을 선결제하는 가수들이 생겨나면서 박수를 받았지만, 내란을 옹호하고 탄핵을 반대하는 극우 세력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탄핵 찬성 연예인 리스트를 만들어 ‘미 중앙정보부(CIA)에 신고하자’는 허황된 가짜뉴스까지 돌아다녔다.
가수 이승환. 이승환 에스엔에스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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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파로 ‘ 라이브의 신 ’ 이승환이 25일 할 예정이던 경북 구미시 공연이 취소되기도 했다 . 김장호 구미시장은 “안전상의 이유”라고 구미시문화예술회관 대관 취소 사유를 밝혔지만, ‘정치적 언행을 하지 않는다’는 서약서 날인을 요구한 것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이를 두고 “표현의 자유 침해” “구미시는 아직도 불법 계엄 치하”라는 비난이 각계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다른 한편에선 이승환에게 공연 제안이 쏟아져 투어를 내년 7월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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