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름그린과 드라그셋, 아모레퍼시픽 수영장, 2024 설치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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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승 | 미술사학자·상명대 초빙교수
‘크리스마스 또 돌아왔네’라는 시가 있다. 거룩하기보다 거북한 연말 분위기를 ‘떼꾼하게’ 그린 정끝별의 시다. 일종의 의무감으로 또 이렇게 들뜬 계절을 보낸다. 이번 겨울은 함박눈과 함께 찾아온 듯하다. 꼭 한달 전이었는데 습기를 함빡 머금은 함박눈이 출근길을 반기더니 종일 그칠 줄 몰랐다. 내리는 눈발이 하도 소담해 강의 중에도 창밖을 힐끔거렸다. 쉬는 시간에는 건물 밖을 눈 맞으며 돌아다녔다.
다니는 학교엔 큰 규모의 연못 광장이 있다. 층계 못을 따라 흐르는 물이 실개천을 이루며 정취를 더한다. 물을 빼는 겨울, 인공의 감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는 게 다만 흠이다. 바지를 걷고 발을 담근 하필이면 사실적인 조각상이 이 계절 유독 생뚱하다. 게다가 20㎝ 넘는 적설량을 기록한 날이었다. 가벼운 셔츠 차림의 조각상 머리와 어깨 위로 소복하게 쌓인 눈이라니. 킥킥거릴 수밖에 없는 부조화였다.
엘름그린과 드라그셋, 아모레퍼시픽 수영장, 2024 설치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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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에 있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엘름그린과 드라그셋의 ‘공간들’을 보며 기시감을 느꼈다. 연인에서 동료로 30년째 한팀을 이뤄 동행해 온 북유럽 출신의 작가들은 전시공간에 실제를 능가하는 140㎡ 규모의 단독주택을 지었고, 주방 딸린 고급 레스토랑을 옮겨 놓았다. 실내 수영장까지 설치했는데, 전시장 내 기존 대리석 기둥을 지형지물처럼 활용한 덕에 물만 채우면 여느 호텔 수영장 못지않다.
두 작가는 이전에도 종종 수영장을 전시공간에 들였다. 단골 모티프인 수영장은 이들에게 실재인 듯 가상 같은 현실 공간의 표상이다. 그러고 보면 자연을 모방해 도시에 옮긴 인공의 대체물 가운데 물 빠진 수영장만큼 이질적인 공간이 또 있을까 싶다. 규모가 클수록 공허한데, ‘아모레퍼시픽 수영장’은 현대인의 고립된 일상 단면을 압도적 규모로 재현해 헛헛함을 더한다.
작업을 보면 물 빠진 수영장 주변으로 4명의 인물 조각상이 자리한다. 안전요원의 위치에서 망원경으로 내려다보는 감시망 아래 각자 상황에 몰두한 세 소년은 서로 시선조차 나누지 않는다. 수영장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생각에 잠긴 소년, 텅 빈 수조 안에서 헤드셋을 끼고 가상현실에 빠진 소년, 아예 등 돌려 창밖 구름 낀 하늘을 응시하는 소년은 서로의 존재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두 작가의 말을 빌리면 수영장은 계층이나 배경과 무관하게 어울릴 수 있는 공공 공간이다. 그래서 기능 상실로 현대인의 고립을 암시했다는데, 물이 있대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수영복 한장 걸친 차림으로 남녀노소가 함께하는 거의 유일한 장소인 수영장에서 과연 타인과 허물없이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느냐 하면 회의적이다. 대화는커녕 시선조차 닿지 않으려는 배려가 오히려 미덕인 공간이 수영장 아닌가.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 설치된 엘름그린과 드라그셋의 작품 ‘클라우드’(2024)의 모습. 사진 강혜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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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 설치 ‘클라우드’에서도 현실을 마주한다. 이름조차 무상한 구름을 표방한 호화로운 음식점에 홀로 앉은 여성의 시선은 스마트폰에 꽂혀 있다. 음식 대신 칼로리가 적힌 접시를 앞에 두고 영상통화 중인 모습이 극사실적이다. 그럴듯한 겉모습에 깜빡 속았다는 연애실패담을 늘어놓는 영상 속 남자사람친구의 수다만 요란하다. 그런데 허상은 가짜일까. 캐럴 없는 연말은 상상이 안 된다. 실체가 없어도 설렘이 있는 게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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