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애초에 파나마 운하 건설은 미국의 동맹국이던 콜롬비아의 뒤통수를 친 조치였다. 미국이 운하 건설을 추진하던 1900년대 초 파나마는 콜롬비아의 한 주였다. 하지만 당시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파나마의 반란을 지원했다.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이 쓴 책 '예정된 전쟁'에 따르면 1903년 반란군이 독립을 선언하자 미군은 파나마에 상륙해 철로를 봉쇄했다. 콜롬비아 군대의 진격을 막기 위해서였다. 미국 해군은 콜롬비아군이 바닷길로 파나마에 상륙하는 것도 막았다. 루스벨트는 곧장 파나마를 국가로 승인하고 외교 관계를 맺었다.
그 대가로 루스벨트는 운하를 건설해 영구적으로 통제하는 권한을 얻어냈다. 파나마는 운하에서 얻는 수입이 연간 25만달러에 불과했으나, 미국의 통행료 수입은 1921년 100만달러에서 1928년 1800만달러로 급증했다. 파나마에 운하를 돌려준 1999년 이전 몇 해 동안에는 연간 5억달러가 넘는 수입을 올렸다. 앨리슨은 "미국은 파나마 연간 국내총생산의 1.2~2.7배에 이르는 수익을 빼앗은 셈"이라고 썼다.
루스벨트는 19세기 말~20세기 초 미국의 제국주의적 영토 확장에 앞장섰던 정치인이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의 행태는) 루스벨트의 팽창주의를 떠올리게 한다"고 썼다. 자칫 트럼프가 루스벨트를 본받아 독립국가의 주권을 무시할까 걱정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했을 때 그의 첫 반응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천재"였다고 하니 그럴 가능성도 있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이니 무리한 요구는 안 하겠지'라고 생각하면 오산일 수 있다.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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