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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선물로 그린 초상화[이은화의 미술시간]〈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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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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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큰 도움을 받거나 고마움을 느낀다면, 어떻게든 은혜를 갚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인상주의의 선구자 에두아르 마네는 자신의 그림을 사주거나 지지해 주는 이에게 가장 예술적인 방법으로 감사를 표하곤 했다.

1868년 마네가 그린 ‘에밀 졸라의 초상화’(사진)도 받은 호의에 대한 답례였다. 당시 졸라는 첫 소설 ‘테레즈 라캉’을 발표한 후 작가이자 미술 비평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그는 주류 예술가들보다 마네 같은 비주류 예술가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마네는 1865년 살롱전에 출품한 누드화 ‘올랭피아’로 보수적인 아카데미 화가들과 격한 논쟁을 벌이며 파리 화단의 스캔들 메이커로 떠올랐다. 그러나 졸라는 그런 마네를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될 미래의 거장 중 한 명으로 높이 평가하며 마네를 지지하는 기사를 썼고, 1868년 이를 브로슈어로 출판했다.

주류 평단에 속한 모두가 그를 공격하고 비판할 때, 용감하게 자신의 예술을 지지하며 대변해 준 젊은 평론가가 얼마나 고마웠을까. 마네는 감사의 선물로 졸라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림 속 졸라는 마네의 작업실 책상에 앉아 먼 데를 응시하고 있다. 실내는 모두 모델의 직업과 성격, 취향을 상징하는 소품으로 꾸며져 있다. 졸라가 손에 든 책은 샤를 블랑이 쓴 ‘화가의 역사’다. 벽에는 살롱전의 문제작 ‘올랭피아’를 재현한 그림이 걸려 있고, 그 뒤에는 졸라와 마네 둘 다 존경했던 화가 벨라스케스의 판화 ‘바쿠스’가 있다. 졸라가 좋아했던 일본 판화뿐 아니라 마네에 관해 쓴 푸른색 표지의 브로슈어도 보인다. 이렇게 화가는 자신만의 방식과 재능으로 비평가에게 감사를 표했다.

곤경에 처하거나 어려울 때 도와주는 이가 진정한 친구다. 졸라는 마네보다 8년 연하였지만 화가 친구를 위해 기꺼이 방패가 되어 주류 평단과 싸웠다. 젊은 비평가의 응원과 지지는 그해 마네에게 그 무엇보다 큰 선물이었을 것이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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