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보면 칼이
빼곡한 지옥
がけつららとうりんじごくさか
崖氷柱刀林地獄逆しまに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49일 동안 재판을 받는다고 하는데 죄의 심판을 위해 죽은 자가 가장 먼저 도착하는 곳이 도산지옥이다. 칼 도(刀) 자에 메 산(山) 자를 쓴다. 도림(刀林)이라고도 한다. 문자 그대로 칼이 빼곡한 숲이다. 살아생전에 남에게 뭘 베푼 적이 없는 인정머리 없는 자들이 떨어지는 지옥의 첫 관문이다. 배고픈 이에게 밥을 준 적도 없고, 타인을 위해 다리를 놓은 적도 없이 그저 구두쇠처럼 살아온 사람들이 죽은 지 7일째에 들어간다. 맨발로 칼을 밟으며 산을 헤매는 중생들은 살이 찢기는 고통 속에 후회하리라. 나는 왜 이웃에게 손 내밀지 못했나. 나는 왜 내 것을 아득바득 긁어모으기만 했나. 나는 왜 죽음 그 후를 생각하지 못했나. 긴 시간의 흐름에서 인간의 생은 이다지도 짧은 것을, 나는 왜 그때 알지 못했나.
한겨울 숲길을 걷던 시인 마쓰모토 다카시(松本たかし·1906~1956)는 널찍한 벼랑 끝에 쀼죽쀼죽 달린 고드름을 보다가 문득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다. 거꾸로 보니 영락없는 도산지옥. 눈 덮인 산중에 거꾸로 펼쳐진 지옥의 한 장면을 마주하고 소름이 돋았을까. 부르르 몸을 떨며 집으로 가는 길에 가난한 아이를 만나 어묵 한 접시, 메밀국수 한 사발 정도 사주었을지 모른다. 죽어서 평안을 찾기 위해 남을 돕는다면 그것도 인간으로서 어떨까 싶지만 오죽하면 부처님이 그런 강구까지 해가며 인간 세상을 구원하려 했을까. 이 무시무시한 지옥이라도 상상하면서 제발 서로 자비와 자애를 베풀라, 하는 애절한 울림이 한겨울 지옥도에서 들려온다.
인왕산 둘레길을 걷다 보면 무무대(無無臺)라는 전망대가 나온다. 경복궁에서 남산을 지나 멀리 잠실까지 서울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쀼죽쀼죽 솟은 고층 건물들을 가만히 바라보다 문득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다. 날카롭게 솟아오른 빌딩 숲이 오늘따라 도산지옥처럼 보이는 건 왜일까. 우리 선조들이 이곳에 무무대라는 이름을 붙인 건 장자의 사상에서 가져온 것이리라. 시작이 있다는 건 아직 시작되지 않은 때가 있다는 것이고 그 이전도 아직 시작되지 않은 때가 있다는 것. 있음이 있기 전 없음과 그 없음도 있기 전 없음의 시절, 그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이 한양 도성에 펼쳐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무무대에 남아 있다. 아직은 활활 타오르는 이 열정의 도시에 그 가능성의 불씨가 꺼지지 않기를, 우리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하의 추위에 비록 겉은 고드름이 꽁꽁 얼지라도 속은 다만 뜨거운 환희로 영영 들끓기를, 다 같이 바라고 또 바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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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윤 작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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