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국방선임기자 |
군대는 상명하복이 철저한 조직이다. 총탄이 퍼붓는 전장에서도 “돌격 앞으로~” 명령이 떨어지면 죽음을 각오하고 뛰쳐나가야만 하는 게 군인이다. 그래서 군인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군인이라면 부당한 명령도 이행해야만 할까. 다시 묻자. 12·3 비상계엄 사태 때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명령에 따라 군 병력을 투입한 지휘관과 그들의 명령으로 동원된 장병 1526명은 어떻게 해야만 했을까. 그들은 ‘뭔가 크게 잘못 돼가고 있다’고 여기면서도 아무런 저항도 못 했다. 세상은 항명하지 않았다며 비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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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계엄 때 출동한 군 병력
부당 명령에 저항 못했다는 비판
현행 법규론 문제 제기 어려워
군인, 국민과 국가에만 충성해야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난 4일 새벽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무장한 계엄군이 출입 통제에 항의하는 시민들과 대치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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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개인적 판단에 따라 소극적으로 반발하거나 명령을 일부러 따르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이 호통을 치고 다그쳐도 국회로 나간 장병은 국회의원들을 회의장에서 끌어내지 않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접수하라는 명령을 받은 방첩사령부 요원들은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지휘관에게 계엄의 불법성을 지적하며 동참하지 말라고 말한 법무장교, 개인적 사정을 핑계로 계엄군 자리를 마다한 장군, 국방부 지하 벙커로 들어오라는 김 전 장관의 지시를 무시한 국방부 당국자의 얘기도 들린다.
명령 이행에도 법적 책임 따라
현실적으로 군 통수권자·군령권자·상급자의 명령을 불법적이라 판단해서 불복종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미약하다.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에 따르면 군인은 직무와 관계가 없거나, 법규·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반하거나, 자신의 권한을 넘는 명령을 발해선 안 된다. ‘군 형법’은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않은 군인을 항명죄로 처벌하게 돼 있다. 권한 밖의 명령이나 정당하지 않은 명령은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보는 근거들이다.
그러나 이는 법조문을 폭넓게 해석한 견해에 불과하다. 고등군사법원은 1996년 “상관 명령의 적법성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반항·불복종할 수 있는 상태가 허용된다면 군 존립 자체의 중대한 위협이 된다”며 “상관의 명령이 명백히 불법한 내용이라고 보이지 않는다면 수령자(명령을 받은 장병)는 그 적법성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그리고 “하급자는 군과 관련된 제도의 개선 등 군에 유익한 의견이나 복무와 관련된 정당한 의견이 있는 경우에는 지휘계통에 따라 단독으로 상관에게 건의”(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하는 것만 허용돼 있지, 법에 정당하지 않은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말라고 쓰여 있지는 않다.
전쟁에서 군인의 모든 행동은 승리를 지향해야만 한다. 그런데 군인은 전쟁터에서 시간을 두고 생각할 겨를이 없다. 전황은 빨리 변하며, 예측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순간 머뭇거리면 패배를 부르고 죽음에 이를 수 있다. 군대가 명령의 복종을 강조하며 항명을 엄하게 처벌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명령이라도 민간인을 학살하는 등 비인도적이거나 비윤리적 행동을 하는 건 범죄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서 전쟁범죄를 저지른 나치 독일 장군들은 한결같이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정부나 상관의 명령에 따라 행동했다고 하더라도 도덕적 선택이 가능했기 때문에 국제법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규정하면서 이들을 처벌했다. 명령은 지엄하지만, 모든 명령이 적법한 것은 아니다.
나치 독일의 부끄러운 과거를 이어받은 전후 독일 연방군은 ‘내적 지휘(Innere Fuhrung)’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독일군 장병은 군인이기에 앞서 기본권과 인권의 대상인 ‘제복을 입은 시민’이다. 그래서 자신의 양심과 판단에 따라 부적절하거나 범죄적 명령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게 내적 지휘다. 내적 지휘를 도입하면 권리가 지나치게 보장돼 훈련이 부족하고, 상관의 권위가 약해지며, 군대의 정치화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독일군 내부에서 나왔다. 이에 대해 내적 지휘를 만든 볼프 폰 바우디신 장군은 “신념 없이는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며 오히려 독일군의 전력이 더 강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내적 지휘는 독일 특유의 역사와 전통에 바탕을 뒀다. 이를 바로 한국에 가져오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 독일을 제외하고, 내적 지휘를 받아들인 나라는 없다. 하지만, 부당 명령에 대한 법규정을 정비하고, 군 내부에서 적법한 문제 제기를 권장하는 조직 문화를 키워야 할 필요는 있다.
장군이라면 정치 무식도 죄
아울러 이참에 장성급 장교(장군)에 대한 정치 교육을 강화하자. 장군이라면 헌법과 계엄, 정치에 식견을 가져야 한다. 계급이 높아질수록 군사와 정치의 교집합이 많아진다. 『손자병법』과 함께 전 세계 군인의 필독서로 꼽히는 『전쟁론』에선 “전쟁은 정치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도 지금까지 군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킨다며 정치에 무지했다.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계엄이 논란이 됐는데도 이후 “계엄 관련 내용을 점검하지 않았다”고 고백한 게 대표적이다.
야전의 하급 지휘관과 장병은 명령에 바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상황을 모르고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명령의 적법성과 정당성을 따지기 힘들다. 그리고 하급자가 상관의 명령에 복종할지 결정한다면, 그건 군대가 아니다. 상황도 알고 정보도 있는 장군이 적법하고 정당한 명령을 내려야만 한다. 통수권자·군령권자·상급자가 그렇지 못한 명령을 내리면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12·3 비상계엄에 연루된 장군들은 “나도 몰랐다”며 자신의 책임을 덜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지휘관이라면 무식도 죄다. 그리고 명령으로 부하 장병을 국사범으로 몰릴 처지에 놓이게 한 잘못은 더 크다.
군인이 충성하는 대상은 국민과 국가, 헌법을 지키는 통수권자·군령권자·상관이지 그들 개인이 아니다. 그래서 목숨을 내놓더라도 지시받은 임무를 다 하려는 것이다. 명령의 복종은 국민과 국가, 헌법을 지키는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국방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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