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손민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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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 최대주주인 MBK파트너스와 영풍이 경영권 분쟁 중인 최윤범 회장 측을 상대로 의안상정금지 가처분 소송을 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최 회장 측이 내년 1월 23일 임시 주주총회에 집중투표제 도입안을 올리고 통과를 전제로 한 이사 선임안까지 상정했는데, 이 부분이 법률 위반 소지가 크다는 게 MBK-영풍 측 입장이다. MBK-영풍은 특히 최 회장 측 안건이 자본시장법상 주주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 보고 있다.
26일 투자은행(IB) 업계 및 법조계에 따르면, MBK-영풍은 최 회장 측을 상대로 의안상정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의안상정금지 가처분은 대체로 결의금지 가처분과 동시에 신청된다. 전자는 특정 의안의 상정을 막아달라는 게 목적이며 후자는 결의를 막는 게 목적인데, 둘은 사실상 궤를 같이 하기 때문이다.
앞서 고려아연은 지난 23일 임시주총 의안을 확정짓고 주총소집결의를 정정 공시했다.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안은 최 회장 측 계열사인 유미개발이 주주제안을 통해 상정한 안건이다. 고려아연은 현재 다른 대부분의 기업처럼 정관에 의해 집중투표제를 배제하고 있는데, 이를 변경해 집중투표제가 가능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집중투표제는 이사를 선임할 때 주식 1주에 대해 선임하고자 하는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투표 방식이다. 다수의 이사 후보가 있을 경우, 주어진 의결권을 한명 또는 여러 명의 후보에게 집중 또는 분배해 투표할 수 있다. 단순투표 방식으로 이사를 선임할 경우 과반의 주식을 소유한 대주주의 의사에 따라 모든 이사가 선임되지만, 집중투표 방식을 이용하면 소수주주도 의결권을 집중해 이들이 추천한 이사를 선임함으로써 모든 이사가 대주주의 뜻대로 선임되는 걸 막을 수 있다.
이사 후보가 총 21명이기 때문에,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소수주주는 지분 4.5%만 갖고도 자신이 원하는 후보를 이사회에 넣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분이 여러 사람에게 분산돼 있는 최씨 일가와 달리, 지분 40.97%(의결권 기준 46.7%)를 둘이서 나눠 들고 있는 MBK와 영풍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최 회장 측이 1-1호 의안으로 올린 집중투표제 도입안이 가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본래 정관 변경안은 주총 특별결의 대상이어서 ‘출석 주주의 주식 수의 3분의 2 이상, 발행주식총수의 3분의 1 이상’이 찬성해야만 통과되지만,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의 경우엔 주주가 지분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든 의결권 행사가 발행주식총수의 3%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MBK-영풍은 집중투표제 도입 여부를 투표할 때 의결권을 각각 3%까지만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MBK-영풍은 1-1호 의안 통과를 전제로 한 이사 선임안에 법적인 문제가 있다고 본다. 특히 자본시장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게 MBK-영풍 측 입장이다. 최 회장 측이 주주명부가 확정된 지난 20일까지 이 같은 주주제안을 숨김으로써 자본시장법상 시장질서를 교란했다는 것이다.
IB 업계 관계자들은 최 회장 측의 집중투표제 도입안 상정이 알려졌다면 고려아연 주가가 더 올랐을 것이라고 본다. 집중투표제가 도입된다면, 지분 과반 확보 여부와 관계없이 주식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확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에서도 이를 잘 알기 때문에 주가가 200만원을 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MBK파트너스는 최 회장 측이 집중투표제 도입안을 준비하면서 계속 주식을 사 모았다는 점도 문제 삼는다. 최 회장 측 주주들은 지난달 15~22일 0.13%를,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4일까지 0.32%를 장내매수했다. 취득단가는 90만~160만원대로 폭넓게 분포돼 있다.
다른 소수주주들이 이사 추천 기회를 놓쳤다는 점 역시 MBK-영풍이 지적하는 부분이다. MBK파트너스 관계자는 “만약 집중투표제 도입 안건이 올라온다는 사실을 국민연금이나 개인 소액주주 등 다른 주주들이 알았다면, 이들도 원하는 후보를 이사회에 입성시키려는 시도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미 MBK-영풍 측이 14명의 후보를 대거 추천한 상태여서 주주 한 명당 갖게 되는 의결권이 대폭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MBK-영풍은 최 회장 측이 주주평등원칙을 위배했을 뿐 아니라 상법도 위반했다고 본다. 상법 제382조의2 제1항과 제542조의7 제2항에는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사에 대하여 집중투표의 방법으로 이사를 선임할 것을 청구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MBK-영풍 측은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이라는 구절에 주목한다. 집중투표 방식의 이사 선임안을 올리는 시점에 정관상 집중투표제가 배제돼 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고려아연은 집중투표제 방식으로 이사선임안을 올린 시점(23일)에 정관상으로 집중투표제가 허용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집중투표제를 전제로 한 이사 선임안은 무효라는 게 MBK파트너스 측 주장이다.
이에 대해 최 회장 측은 “정관 변경안은 주총에서 가결되는 즉시 효력이 발생하므로, 제1-1 의안이 가결된다는 조건하에 후속 안건을 제안하고 주주총회에 상정하는 건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지만, MBK-영풍은 이 역시 말이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MBK파트너스 관계자는 “가령 이사의 정원을 늘린다는 내용의 정관 변경이라면 가결을 전제로 다음 안건들(이사 선임안)을 내는 게 가능하지만, 집중투표제의 경우 상법에 엄격하게 규정돼 있기 때문에 경우가 다르다”고 말했다.
노자운 기자(jw@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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