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대선 다음날인 11월6일(현지시각)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 컨벤션센터에 나타나 지지자들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웨스트팜비치/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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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 국제뉴스팀장
지난 18일 한국 언론은 집단 패닉에 빠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대선 뒤 첫 기자회견에서 북한·중국·일본은 거론했는데 한국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트럼프의 ‘한국 패싱’에 대한 우려가 치솟았다. 전세계가 트럼프에게 줄을 대려고 혈안인데 한국은 대통령이 직무정지돼 외교 공백이 불가피하다는 점도 짚었다. 지난 주말, ‘민간인’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트럼프를 만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는 ‘그런데 정부는…’이라는 말이 나왔다.
일리가 없지는 않다. 외교의 ‘꽃’은 정상 외교다. 공교롭게도 혹은 불행하게도 한국은 하필 외교와 협상의 기본·원칙을 깡그리 무시하는 트럼프가 등판할 때마다 그를 상대해야 할 대통령이 부재 중이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하는데 끼울 수가 없고, 시작이 반이라는데 출발선이 아득하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가 이름을 부르는 나라와 정상들은 정말 ‘꽃’이 되는 걸까?
우선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있다. 트럼프의 기자회견은 일본의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미국에 1천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하는 것을 계기로 마련됐다. 일본 기자가 “일본 총리 이시바가 (당신과) 만남을 원하고 있다”고 물었다. 트럼프는 “물론 총리와 만나고 싶다”고 했다. 기자가 다시 ‘취임 전 성사’ 가능성을 물었다. “원한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실제로 성사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트럼프가 꽤 긴 시간을 할애해 거론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있다. ‘시진핑이 취임식에 오지 않는다고 해 실망했냐’는 기자의 질문이 물꼬를 텄다. 직접 호명되지 않았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언급됐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오판이 북한의 참전을 불렀다면서 김 위원장을 두고 “내가 또 잘 지내는 남자”라고 했다. 이들은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사람들이다.
트럼프가 지난달 25일 호명한 이웃 캐나다와 멕시코의 경우를 보자. 두 나라는 트럼프한테 25% 관세 폭탄 위협을 받았다. 나흘 만에 마러라고로 날아간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당선자 트럼프를 최초로 만난 외국 정상이 됐다. 그런데 트뤼도는 트럼프한테서 미국의 51번째 주 “주지사”라고 조롱당하고 있다.
트럼프가 언제 한국을 입에 담을 때 좋은 소리를 한 적이 있나? 트럼프 1기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자. 2017년 트럼프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끔찍한 거래”라거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체계 배치 비용 “10억달러를 내라”며 한국을 질타했다. 또 “한국은 부자 나라”라며 꾸준히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기여가 “너무 적다”고 주장했다. 그가 한국을 거론할 때는 법칙처럼 천문학적 청구서가 날아들기도 했다. 이번 선거운동 과정에서는 “한국은 머니 머신(money machine)”이라며 자신이 대통령이었다면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으로 “연간 100억달러(약 14조5천억원)를 낼 것”이라거나 한국은 “무역에 있어서는 적국”이라고 했다. 이쯤 되면 그가 불러주지 않아 다행인 측면도 있지 않을까.
외교 공백이 없는 쪽이 당연히 바람직하다. 그런데 그가 불러주지 않았다고, 아직 그를 만나지 못했다고 하늘이 두쪽 나는 건 아니다. ‘호명’될 때를 대비해 차분하고 철저하게 대응을 준비하면 된다.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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