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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7 (금)

[이기홍 칼럼]윤석열이 보수(保守)에게 속죄할 유일한 방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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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진영 안방에 자폭 폭탄 터뜨린 尹

속히 자진 탈당해 국힘을 자유롭게 해주고

탄핵 기각돼도 ‘자진 하야’하겠다 약속해서

보수가 ‘윤석열 악몽’ 벗어나게 해줘야

동아일보

이기홍 대기자


“저 감옥 가나요?”

명태균 사태가 본격화하기 직전인 올 초가을, 유명 역술인 A 씨에게 모녀가 찾아왔다.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과 장모였다.

“모녀가 와서 ‘나 감옥 가냐’고 묻더군요.”

“미쳤네요. 선생님 것(역술)이 어떻다는 게 아니라, 자기 남편이 평생 검사였으니 정답은 자기 남편이 알지….”(A 씨 지인)

“그래 말입니다, 허허.”

물론 당시 특검법 공방 상황에서 김건희 여사가 느꼈을 불안감 압박감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대통령실 안팎에 법률 자문·예측을 해줄 최고의 전문가들이 숱한데도 역술인을 찾아가는 모습은 윤 부부가 인생 항로를 헤쳐가는 방식이 세상의 상식과 얼마나 괴리돼 있는지를 재확인시켜 준다.

자기 진영 안방에 폭탄을 터뜨리며 정치적 자폭을 한 윤 대통령의 행동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사회학 정치학 심리학 정신의학적 분석은 물론이고 역술·무속의 영향까지도 포함해야 한다.

근저에는 부인에 대한 맹목적 애정이 있는데, 그 부인은 무속에 상당히 심취한 데다 자기가 정권 창출의 주역이며 정치와 사람 포석에 있어서는 남편보다 내공이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필연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데 윤 대통령은 난제에 닥쳤을 때 정상적으로 풀어갈 문제 해결 방식 프로세스를 훈련받거나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검사·수사관들을 대거 풀어 다 압수해 오고, 피의자가 소변을 지리도록 겁을 줄 수 있는(신정아 씨의 자서전 주장) 그런 일방적 힘의 우위 상태에서 상대를 다루며 목적한 바를 이뤄가는 과정을 수십 년 반복하다 보니, 일반 직장생활이나 자영업 3년만 해도 체득하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작용 반작용을 예측 계산하고 적절한 방식을 찾아가는 상호관계 훈련을 전혀 거치지 못한 것이다.

올가을 김 여사는 체중이 40kg도 안 되는 상태였다고 한다. 스트레스가 극심하면 물도 마시지 않으며 남편의 속을 끓게 했다. 그런 부인에게 남편은 벼락부자가 자식에게 묻지 마 애정을 퍼붓듯 시종일관 감싸며 권력을 나눠줬고, 부인 문제의 상식적 처리를 요구하는 모든 이를 원수로 여겨 적대했다.

초등학교 줄반장만 되어도 조심했을 기초적 공사(公私)구분을 안 한 결과가 오늘날 파면과 구속 위기에 처한 참담한 모습이다. 부인도 머잖아 사법처리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당사자 부부만 폭망한 게 아니다. 윤 대통령이 계엄이 황당무계한 오판이었음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대신 강경 지지층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바람에 보수는 다시 갈가리 찢길 위기에 놓였다.

윤 대통령이 보수진영을 궤멸 위기로 내몬 데 일말의 죄책감을 느낀다면, 그리고 결과적으로 좌파가 침투시킨 트로이 목마 같은 역할을 했지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려는 마음만은 진심이었다면 조금이나마 속죄할 길은 있다.

첫째, 하루빨리 스스로 국민의힘을 탈당하는 것이다. 무조건 자신을 싸고도는 맹목적 지지층을 향해 “보수진영은 더 이상 나의 탄핵 문제로 다투지 말아 달라”고 호소해야 한다. 계엄이 정당했다는 주장은 지지자들을 향해서가 아니라 수사기관과 헌재 심판대에서 하라. 더 이상 보수진영 내에선 윤석열을 주제로 한 싸움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둘째, 만약 헌재에서 탄핵이 기각된다 해도 개헌에 필요한 일정한 기간을 거쳐 자진 하야할 것임을 약속해야 한다. 절대다수 국민들로부터 과대망상·정신착란 상태 아니냐고 의심받는 상태에서 어떻게 리더십을 발휘하겠는가.

억울하다고 여기기 전에 자신의 판단력, 정서적 상태가 정상인지를 진지하게 자문해봐야 한다. 국회 의석 거의 3분의 2를 적대적 야당이 갖고 있는 상태에서 계엄은 결코 성사될 수 없다는 기본적 사실 관계를 외면하고 계엄을 선포해버리는 그 판단력은, 무속의 영향으로 맹목적 성공 믿음을 가졌거나 신체적으로 판단력 상실 상태에 빠졌거나 둘 중의 하나일수 밖에 없다. 병정놀이보다도 허술한 준비로 무모하게 밀어 붙인 자신의 나사 빠진 업무 추진 능력도 자체 진단해보라.

셋째, 부부 모두 감옥에 가는 상황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등 사법절차를 존중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침대축구’ 같은 저질스러운 행태는 보수의 사전엔 없다. ‘저질 좌파’나 하는 짓이다. 보수의 품위를 훼손하면 안된다. 군 통수권자로서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장병들이 무슨 죄가 있겠느냐”며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물어달라고 호소해야 한다.

정치인 윤석열은 전통과 역사가 있는 정통 보수정당에 3년 전 영입돼 벼락승천(陞遷)하듯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그가 잠깐 머물렀던 한국의 정통 보수정당은 그로 인해 씻기 힘든 상처를 받았다. 윤 대통령은 이제 자신과 이 당의 인연은 끝났음을 인식해야 하고 보수정당은 ‘윤석열 악몽’에서 깨어나야 한다.

국힘이 윤석열과 결별해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윤 대통령은 보수의 지지로 당선됐지만 보수의 핵심적·시대적 요구를 외면했다. 그는 문재인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졌다. 울산 선거 부정, 원전 수사 등 정의 실현은 매번 문재인 턱밑에서 멈췄고, 보수는 절망했다.

보수가 윤석열과 분리돼 탄핵 찬반 수렁에서 벗어나야, 천운의 횡재를 한 듯 흥분한 야당과 좌파세력이 덮어씌우고 있는 선동 프레임에 맞설 수 있다. 국힘 일각에서 결별을 망설이는 유일한 이유는 이재명 대표 때문인데, 당당하게 윤석열을 빨리 손절할수록 보수에겐 회복 기회가 커진다. 패배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힘이 윤석열을 청산하면 이재명을 청산하지 못하는 좌파에게 할 말이 생긴다.

만약 대선에서 보수가 참패한다면 이는 이재명이 강해서가 아니라 보수가 윤석열 후유증으로 분열된 채 반(反)이재명 이외에 보수가 열어갈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해리스가 반(反)트럼프만 외치다 참패했듯이.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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