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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8 (토)

[Part Ⅲ] 전문가 토론 | 성인이 된 시장의 새로운 도전 기업 지배구조 개선으로 역할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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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년간 국내 사모펀드(PEF)는 토종 자본을 길러내겠다는 국가적 의지와 함께 태동해, 이제 인수합병(M&A)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로 자리잡았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계 자본에 대한 대응 논리로 출발한 이 시장은 20년 만에 약정금액 136조원, 전업 운용사(GP) 약 400여 개라는 양적 성장세를 기록하며, 양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커졌다. 하지만 이쯤에서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과연 국내 PEF는 ‘규모 확대’라는 1막을 마무리하고, 이제 ‘질적 도약’이라는 2막을 준비하고 있는가?

2024년 12월 11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 금투센터에서 자본시장 연구원이 개최한 ‘PEF 20년 성과와 전망’ 세미나 이후 이어진 5인 토론회는 바로 이 지점에 주목했다. 토론 패널로는 ▲구자현 KDI 선임연구위원 ▲송영우 노먼 밸리어 파트너스 대표 ▲어준경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임유철 PEF운용사협의회 회장(H&Q코리아 대표) ▲김경문 금융위원회 자산운용과 사무관 등 국내 PEF 시장의 흐름을 면밀히 관찰하고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토론에서 패널들은 국내 PEF 생태계가 단순한 재무적 성과 위주의 전략에서 벗어나, 수익성 개선 중심의 ‘오퍼레이션 밸류업(Value-up)’ 역량 강화, 지배구조(거버넌스) 혁신, 정보공개 확대와 투명성 제고, 다양한 출자자(LP) 기반 확보, 그리고 사회적 신뢰 자본의 축적 등을 향후 필수 과제로 제시했다.

토종 자본 육성을 넘어 혁신 자본으로
국내 사모펀드는 IMF 외환위기 후반부, 외국계 사모펀드들이 국내 기업 자산을 헐값에 인수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토종 자본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육성해야 한다’는 정책적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이후 20년 동안 국내 PEF 시장은 양적 성장을 이룩했으나, 이제는 초기 목표를 넘어서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구자현 KDI 선임연구위원은 “처음 PEF를 도입할 때의 핵심 목적은 외국자본의 무차별적 기업 인수로 인한 국부 유출을 막고 국내 자본을 근간으로 한 구조조정 및 성장 지원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다”라고 상기시키며 “20년이 지난 지금, 국내 PEF는 단순 방어적 자본 역할을 넘어 산업 구조 고도화와 혁신 생태계 구축, 스타트업 스케일업 자금 공급, 나아가 글로벌 투자 흐름 주도 등 보다 전향적인 역할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어준경 연세대 교수도 “국내 PEF는 이제 자본시장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고, 일시적 방어를 위한 틀에서 벗어나 장기적 파트너로서 국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는 생태계 조성자 역할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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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는 “미국과 유럽 시장의 대형 PE들이 단순한 바이아웃(Buyout)을 넘어 특정 산업군에 특화한 전문화 전략, 또는 인수 기업에 대한 장기적 혁신 지원 등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장하는 것처럼, 한국 PEF도 도입 취지를 넘어 ‘혁신 자본’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모펀드 업계가 맞닥뜨린 본질적 도전은 ‘어떻게 투자 기업의 가치를 극대화할 것인가’에 있다. 과거 국내 PEF들이 주로 재무적 레버리지나 단순한 비용 절감, 혹은 매출 성장성에 기대왔다면, 앞으로는 생산성·원가율 개선, 공급망 최적화, 인공지능(AI)을 통한 구매 및 재고관리 자동화, R&D 역량 강화, 글로벌 판로 개척 등 보다 내재적이고 정교한 오퍼레이션 밸류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송영우 노먼 밸리어 파트너스 대표는 “과거 국내 PEF 밸류업 활동의 상당 부분이 외형 성장, 인수 후 단기적 구조조정, 재무 레버리지 활용 등에 치중했다면, 앞으로는 테슬라나 글로벌 경쟁기업 사례에서 보듯 생산 공정 개선, 스마트팩토리 도입, 코스트 구조 혁신 등 기업 내면의 효율성을 높이는 전략이 핵심이 될 것”이라며 “이는 단기간에 배우기 힘든 전문 영역으로, 업계 전반의 오퍼레이션 매니저, 산업별 전문가, AI·데이터 분석가 영입 등 인적 인프라 확충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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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철 PEF운용사협의회 회장(H&Q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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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철 PEF운용사협의회 회장 역시 “바이아웃과 소수지분 투자를 막론하고, 투자 후 경영진과 긴밀히 협력해 전방위적 혁신 프로그램을 시행해야 한다”며 “예컨대 자동차부품 기업을 인수한다고 가정하자. 과거에는 단순히 비용을 줄이거나 특정 해외시장에 지분 매각하는 식의 전략이었다면, 이제는 부품 제작 공정별 단위원가, 재고 회전율, 협력사 품질 관리, 글로벌 OEM 수주 확대 등 세밀한 영역을 개선해야 한다. 이러한 오퍼레이션 밸류업 능력이 향후 PE 시장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운영 효율성 강화와 함께 지배구조 혁신 역시 기업 가치 제고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배구조 개선은 단순히 회계적 이익을 늘리는 것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이는 기업의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투명하고 책임성 있게 만들며, 임원진 인선과 이사회 구성, 내부통제 강화 등을 통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성장 기반을 다지는 것이다.

임유철 회장은 “사모펀드의 핵심 강점 중 하나는 경영권을 확보한 뒤 회사의 지배구조를 체계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이사회 재편, 전문경영인 선임, 이사회의 책임성 강화, 내부감사 고도화 등의 조치를 통해 기업은 단기 성과에 휘둘리지 않고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갖추게 된다”고 말했다.

어준경 교수도 이에 동의하며 “거버넌스 개선은 재무적 측면을 넘어 기업의 전체 생태계를 바꾼다. 기업 내 의사결정 단계를 슬림하게 하거나, 사외이사를 글로벌 산업 전문가로 포진시켜 기술 트렌드와 시장환경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게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배구조 혁신이 곧 투자자(LP)와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긍정적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보공개·투명성 위해 “공시·보고 체계 필요”
국내 사모펀드 시장이 커짐에 따라 사회적 관심도 높아졌다. 이제 PEF가 소수의 전문투자자들만의 비밀스런 영역이 아니라 자본시장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은 만큼 정보 비대칭성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사모펀드 정보공개 의무를 강화하고 있다. 한국도 이 같은 흐름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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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준경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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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준경 교수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사모펀드 공시제도(disclosure rule) 개정을 통해 포트폴리오 회사에서 중대 사건 발생 시 72시간 내 보고 의무를 부과하는 등 투명성을 크게 높였다”면서 “한국 PEF도 최소한의 보고 체계를 구축해 금융당국과 시장참여자들에게 기본적 구조와 자금 흐름을 알리고, 이를 통해 불필요한 오해나 의혹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문 금융위 사무관은 “해외는 규제가 사실상 거의 없던 상태에서 점진적으로 강화하는 추세다. 반면 우리는 초기부터 강한 규제로 시작했다 완화하는 과정을 거쳤다”며 “필요하다면 다시 규제 강도를 조정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다만 규제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투명성과 책임성 강화로 시장 건전성을 높이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성숙한 PEF 시장이라면 정보공개 확대와 최소한의 감시 장치 도입은 오히려 PEF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높이고 자율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정보공개 강화는 LP들에게도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출자자들은 자신의 자금이 어떤 기업에 어떻게 투입되고 회수되는지 알 수 있고, 감독 당국은 시스템 리스크를 사전에 감지할 수 있으며, 학계와 시장 분석가들은 보다 풍부한 데이터를 토대로 객관적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 이러한 선순환 고리를 통해 PEF 생태계 전반의 성숙도가 한 단계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투명한 소통과 ‘착한 투자’ 사례 축적 필수
사모펀드 시장 성장과 함께 피할 수 없는 문제는 ‘사회적 시선’이다. 아직도 일부 국민들은 사모펀드를 ‘밀실에서 거래되는 투기자본’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일부 대형 PE의 인수전에서 불거진 논란, 지분 확보 과정에서의 불투명성 등의 사건은 ‘PEF는 결국 단기 차익만 추구한다’는 오해를 증폭시키기도 했다.

김경문 사무관은 “국민들은 일정 정도 PEF 활동을 불안하게 바라볼 수 있고, 특히 특정 이슈가 불거지면 전체 시장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PEF 업계 스스로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가치 제고에 기여하고, 고용 안정이나 협력사 상생, 소비자 후생 증대 등 긍정적 효과를 알리는 적극적 홍보와 소통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임유철 회장 역시 “PEF가 지배구조 개선, 오퍼레이션 개선을 통해 실제로 기업의 장기 성장토대를 닦아주는 사례를 모범적 ‘착한 투자’ 사례로 축적·발표해야 한다”며 “예를 들어, 특정 제조기업에 투자한 뒤 혁신 기술 도입과 생산성 향상, 해외 시장 개척 지원을 통해 기업 가치를 배로 키워 고용을 늘리고 협력사와 공정한 수익 배분 구조를 정착시켰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대외에 알림으로써 ‘PEF=투기자본’이라는 낡은 프레임을 깨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신뢰를 얻는 과정은 단순하지 않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PEF 시장에 안정적 투자 기반을 제공한다. 국민연금과 같은 주요 기관투자자들도 사회적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으며, 공정한 거래 관행과 투명성 제고, 명확한 가치제고 전략을 내세운 PEF 운용사에 더 기꺼이 투자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과정이 다시 사모펀드 시장에서 긍정적 브랜드 이미지를 확립하고, 조성된 신뢰 자본을 바탕으로 더욱 적극적인 투자 활동에 나서게 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 공감했다. 20년간의 국내 PEF 역사는 우연이 아니라 정책적 의지와 시장 참가자들의 노력, 글로벌 금융환경 변화가 어우러진 결과물이다. 이제 양적 성장에 만족할 때가 아니라, 질적 도약을 위해 치열한 고민과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다.

패널들은 한 목소리로 “국내 PEF는 이제 양에서 질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자현 연구위원은 “사모펀드가 혁신산업을 뒷받침하고, 구조조정 수요에 대응하며, 안정적 자금 공급자로서 장기 성장에 기여한다는 점을 시장과 사회가 체감하게 된다면, PEF는 보다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유철 회장은 “운용사협의회를 비롯한 업계 단체들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규제 당국 및 투자자들과의 소통 채널을 강화해야 한다”며 “자율 규범 마련, 정보공개 매뉴얼, 모범사례집 발간 등 실질적 활동을 통해 업계 신뢰도를 제고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한편, 김경문 사무관은 “금융당국은 시장자율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글로벌 규제 트렌드를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경우 제도 정비에 나설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PEF 시장이 건전하고 투명한 환경에서 발전할 수 있도록 정책적 뒷받침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PEF 시장은 도입 20년 만에 ‘성숙기’라는 전환점에 섰다. 수익성 개선 중심 오퍼레이션 밸류업, 지배구조 혁신, 정보공개 확대, 출자자 저변 확대, 글로벌 네트워크 강화, 그리고 사회적 신뢰 구축이라는 도전과제가 앞으로의 10년, 20년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토론회가 던진 화두들은 단순히 제안에 그치지 않고, 향후 국내 PEF 시장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설계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게 참석자들의 공통된 기대였다.

[박지훈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2호 (2024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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