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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8 (토)

트럼프 유력해지자 美민주당 지지 철회 철저히 계산된 행동 아마존 제국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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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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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선부터 워싱턴포스트(WP)는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 선언을 하지 않겠다."

지난 11월 미국 대선을 열흘여 앞두고 폭탄선언이 터졌다. 미국 정가의 유력지인 WP가 수십 년간 이어진 전통을 깨고 지지 후보를 밝히지 않은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당선 확률이 높아지자 WP 사주인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가 개입해 신문사의 오랜 민주당 지지를 철회시켰다. 트럼프 당선으로 이 결정은 결과적으로 현명한 선택이 됐다.

베이조스의 발 빠른 태세 전환은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의 악연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승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아마존의 성공 DNA가 작동한 때문이기도 하다. 아마존은 2016년 당시 힐러리 클린턴의 낙승을 예상하고 마음 놓고 반트럼프 전선에 합류했다가 호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따 놓은 당상이라 믿었던 100억달러 규모의 미국 국방부 클라우드 수주건에서 고배를 마신 데 이어 반독점법 칼날을 맞아 최악의 경우 해체 수순을 밟을 수 있다.

최근 한국어로 번역된 '모든 것이 전쟁이다'(원제 The Everything War)는 베이조스와 트럼프의 앙숙 관계를 비롯해 아마존의 성장 과정과 확장 전략을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저자는 월스트리트저널의 아마존 전담 기자인 다나 마티올리.

'고객 집착'이라는 아마존의 사명 뒤에 숨겨진 마키아벨리식 전략과 경쟁사 압박, 데이터 활용의 실체를 밝혀낸다. 이를 위해 수백 쪽에 달하는 내부 문서와 이메일을 분석하고, 기밀 유지 계약에 묶인 17명의 아마존 핵심 임원들을 포함해 아마존의 전현직 고위 임원들과 비밀리에 대화를 나누었다. 5년간의 취재와 600명 이상을 인터뷰한 결과물이 묵직한 책 한 권에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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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전쟁이다 다나 마티올리 지음, 이영래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2만9800원


이 책은 '빅테크의 저승사자'라 불리는 리나 칸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이 로스쿨 학생 당시 썼던 2017년 논문으로 시작한다. "아마존은 소매업체를 넘어서 이제는 마케팅 플랫폼, 배송·물류 네트워크, 결제 서비스, 신용 대출업체, 경매업체, 대규모 출판사, TV 프로그램·영화 제작사, 패션업체, 하드웨어 제조업체, 선도적인 클라우드 서버 호스트가 되었다." 2021년 서른두 살의 나이로 FTC 역사상 최연소 위원장이 된 리나 칸은 빅테크를 향한 반독점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으며 2023년엔 아마존에 소송을 제기했다. 아마존은 독과점 기업이며, 아마존이 휘두르는 힘이 소매업 전반의 가격 인상을 불렀다는 것이 요지였다.

또한 판매자들에게 아마존의 다른 서비스를 사용하도록 강제한 것도 독점 혐의를 받는 부분이다.

그간 혁신의 아이콘인 아마존의 성공 비결을 분석한 책은 많았지만 반독점 소송의 전말과 아마존의 그림자를 파헤친 책은 드물었다. 아마존에 비판적인 내용이 다수 담겼지만 끈질긴 검증과 아마존의 승인을 받아 출간된 점도 놀랍다.

20세기 경영학 교과서에는 독과점 기업은 시장을 장악한 후 물건과 서비스 비용을 올려 부당한 이익을 추구한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베이조스는 이를 정면으로 비웃는다. 아마존은 개별 사업이 아닌 생태계를 움직이는 전술로 시장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수많은 기업들로부터 아마존의 악행을 취재해 고발했다. 아마존이 아마존닷컴의 데이터를 이용해 인기 제품을 베껴 경쟁 우위에 선다든가 인수나 투자 제안을 하는 척하면서 사업계획서를 빼돌려 자체 브랜드 신제품에 접목시키는 등의 야비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세계를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당신 집 안을 비롯한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다면, 그들은 무슨 짓이든 할 것"이라고 까발린다. 미국에서 '아마존됐다(to be amazoned)'는 말은 '아마존이 당신의 사업 영역에 진출했으니 당신에게 남은 것은 망할 일뿐이다'라는 자조가 담겨 있다.

고도의 세금 회피 전략도 아마존을 비약적으로 성장시킨 주요인이다. 1994년 뉴욕 맨해튼 헤지펀드에서 일하던 베이조스가 시애틀까지 날아가 차고에서 회사를 차린 것도 세금 때문이었다. 워싱턴주는 세법에 따라 회사가 위치한 지역에 사는 고객에게만 판매세를 매긴다. 나머지 지역 고객은 면세로 책을 배송받을 수 있었다.

소매업체가 직원과 사업장을 두고 있는 곳에서만 제품에 판매세를 부과하는 미국 세법 구멍도 교묘하게 활용했다. 초기 아마존은 몇 개의 주에만 창고를 두고 다른 주로 물건을 배송했고 늘어나는 창고를 아마존이 운영하는 곳이 아닌 아마존의 자회사로 지정하는 방식으로 창고에 '법인 분리' 정책을 사용했다. 이로써 창고가 있는 주에서도 판매세가 면제됐다. 자회사에도 아마존 직원이 있었지만 세금 회피를 위해 이들을 달리 분리했다. 아마존은 매장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모든 소매업체들과 달리 주에 세금을 납부할 필요가 없었고 이는 압도적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는 바탕이 됐다. 이러한 전략으로 오프라인 강자였던 시어즈 백화점과 토이저러스를 침몰시켰다.

지금 베이조스의 관심은 온통 트럼프에 있다. 과거의 악연으로 사업상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관계 개선에 적극적이다. FTC가 소송에서 이겨 아마존이 해체될까? 최악의 경우라도 아마존 제국은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미 수많은 큰 전쟁에서 승리한 DNA가 있기 때문이다.

[이향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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