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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8 (토)

[광화문에서/김호경]부동산 시장 정상화 기회, 스스로 걷어차버린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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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김호경 산업2부 기자 


“정부가 주택 공급을 틀어쥔 건 시대착오적인 이념이다. 상당한 공급 물량이 들어온다는 시그널을 주는 방식으로 부동산 가격 상승을 잡겠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인 2021년 12월 서울의 한 재건축 현장에서 했던 발언이다. 주택 시장에서 규제로 수요를 옥죈 문재인 정부와 다른 부동산 정책을 펼치겠다는 뜻이었다.

당선인 시절엔 국토교통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업무보고 현장을 깜짝 방문해 “엄청난 집값 상승을 부채질했던 이유가 시장 생리를 외면한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다주택이라고 무리하게 규제하는 게 맞는지 더 세밀하게 살펴봐야 한다”고까지 했다. 그 이후로도 윤 대통령은 부동산 규제를 풀어 시장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런 기조에 맞춰 정부도 부동산 규제 완화에 나섰다. 문재인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묶은 부동산 규제 지역을 해제했다. 15억 원이 넘는 아파트에 대한 대출 금지 규제도 풀었다. 올해 11월에는 재건축의 시작을 어렵게 하는 안전진단도 폐지했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을 왜곡시킨 ‘대못 규제’들은 그대로다. 문재인 정부에서 도입한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이 대표적이다. 로드맵은 현재 69%인 부동산 시세 대비 공시가 비율을 2035년 90%까지 올리는 게 목표다. 집값이 안 올라가도 공시가는 올라 보유세 부담이 급증하는 문제가 나타나자, 정부는 로드맵을 폐지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필요한 부동산공시법 개정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는 3년째 2020년 현실화율을 적용해 공시가를 산정하는 ‘임시방편’을 쓰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도 법 개정은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와 여당이 힘을 모아 야당을 설득해도 법 개정을 장담하기 어려운데, 탄핵 정국으로 국정 동력을 잃어버렸다. 야당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얘기다.

이렇다 보니 문재인 정부에서 부활시킨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재초환)’ 폐지도 없던 일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재초환은 재건축을 통해 얻은 이익이 조합원 1인당 8000만 원을 넘으면 초과 금액의 최대 50%를 환수하는 제도다. 재건축의 사업성을 떨어뜨려 공급을 위축시키는 핵심 규제로 꼽힌다. 이에 정부와 여당은 재초환 폐지를 위해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야당이 반대해 왔다. 지금처럼 여야 정쟁이 극단으로 치달은 상황에서 야당이 갑자기 의견을 뒤집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정부가 2년 넘게 추진해 온 임대차2법(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요구권) 관련 제도 개선 역시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당초 정부는 올해 안에 연구용역을 공개하고, 전문가 공청회를 거쳐 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탄핵 정국으로 주무 부처인 국토부 안에서도 “제도 개선은 어렵지 않겠냐”는 회의론이 나오고 있다. 규제를 풀어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하겠다던 윤 대통령이 결과적으로 규제 완화 기회를 스스로 막아 버린 것이다.

윤 대통령은 규제를 더 풀지 못한 건 국회 탓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그 순간 ‘부동산 시장 정상화’ 기회를 걷어차 버렸다는 점이다. 그로 인한 혼란과 불안은 또다시 국민들이 견뎌야 한다.

김호경 산업2부 기자 kimh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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