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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0 (월)

"갈림길에 선 민주주의"…선거·계엄·불신임까지 혼란의 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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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은 세계인 46% 투표한 '슈퍼 선거의 해'

미국·EU·인도·러시아 등 선거 결과 큰 관심

극우·권위주의 강세 속 민주주의 회복력 보여

내년에도 민주주의 시험대 오를 듯

"권위주의자들이 자유를 서서히 침해하면서 전 세계 민주주의가 갈림길에 섰다." - AP통신
"민주주의는 2024년 전 세계 선거 마라톤에서 생존했는가?" - 일간 가디언
"2025년을 맞는 민주주의는 상처투성이지만, 패배하지는 않은 듯하다." - 로이터통신

올해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민주주의라는 정치 제도를 향한 관심이 큰 해였다. 세계 인구 절반이 선거를 치르는 '슈퍼 선거의 해'로, 민주주의가 생존할 수 있는지에 관심이 쏠렸다. 곳곳에서 터지는 전쟁과 고물가라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 집권 세력을 향한 비판이 쏟아졌고, 극우 세력은 핵심 정치 세력으로 부상했으며 이념 갈등은 심화했다. 민주주의가 올해 선거의 해에 살아남았지만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고 있어 민주주의를 향한 공격은 내년에도 지속될 것이란 진단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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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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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꽃' 선거 쏟아진 올해, 어땠나?
유권자의 선택으로 정치권력을 쥘 주체를 결정하는 선거 제도는 '민주주의의 꽃'으로 불린다. 올해 세계에서 60개가 넘는 국가와 지역에서 선거가 치러지면서 세계인 46%가 투표를 통해 주권을 행사했다. 현대 역사상 최대 규모로 치러지는 선거를 앞두고 연초에 유력 매체인 타임스지는 올해가 "민주주의의 성패를 가르는 해"가 될 것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선거는 단연코 미국 대선이다. 지난 11월 5일(현지시간) 진행된 미 대선은 개표가 끝날 때까지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것이라 전망했으나, 예상외로 빨리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백악관 재탈환으로 마무리됐다. AP는 "트럼프 당선인이 민주주의에 위협이 된다는 경고에 유권자들은 집중하지 않았고, 조 바이든 대통령 임기 중 펼쳐진 높은 인플레이션과 이민 급증으로 인한 좌절감에 더 집중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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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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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년간 치러진 선거에서 현직자가 불리한 상황에 놓인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미국에 적용된 것으로 풀이된다. 미 하버드대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 교수는 지난 11월 "2020년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서방 민주주의 국가에서 치러진 54개 선거 중 40개에서 현직자가 물러났다"며 "선거에서 현직자가 불리한 경향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겪으며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큰 이슈로 떠올라 민주주의의 중요성보다 경제적 상황 등이 선거 결과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선거판이 벌어진 인도에서도 현 정부가 타격을 입는 선거 결과가 나왔다. 인도 집권당 인도국민당(BJP)이 승리하면서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3연임에 성공했으나, 예상을 훨씬 밑도는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절대다수의 의석을 잃게 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도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을 시작으로 장기 집권해온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30년 만에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데 실패했다. 극심한 빈부 격차와 부패 이슈 등이 이러한 결과를 낸 것으로 해석된다.
극우·권위주의 '득세'에 정치판 흔들
세계 곳곳에서는 선거가 치러지는 동안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일이 빈번했다. 올해 유럽 선거에서는 극우 세력의 성장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소로 올라섰다. 미국 대선에 이어 가장 주목받았던 지난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극우 정치 세력이 급부상하면서 전 세계를 충격에 빠지게 했다. 청년 유권자들이 이민 정책에 대한 반감을 거침없이 드러내면서 기성 정치 세력에 대한 불신을 보인 결과였다. 극우 정치 세력이 득세하면서 프랑스 유럽애국당(PfE), 독일 독일대안당(AfD), 이탈리아 유럽보수와개혁(ECR) 등 유럽 주요국에서 극우 정당이 핵심 세력으로 자리매김했고, 현재 각국의 정치판을 뒤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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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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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등에서는 민주주의 제도인 선거가 권위주의 세력이 지닌 권력을 한층 공고화하는 데 활용됐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지난 3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역대 최고인 87%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선을 확정 지었다. 선거 한 달 전 정적인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가 교도소에서 숨진 상태였다. 일각에서는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 등에서 엉터리 선거가 치러졌다며 민주주의가 기반을 잃기보다는 권위주의가 더욱 악화하는 상황이라고 우려하는 비판이 제기됐다.

매해 세계에서 진행된 선거의 민주성을 평가하는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는 올해 1~11월 세계에서 치러진 62건의 선거 중 26건에서 후보에 대한 공격 등 폭력이 발생했고, 4건 중 1건은 유권자가 실질적인 선택권을 보장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 알제리, 아제르바이잔 등 최소 16건의 선거에서는 독재자들이 경쟁자의 후보 자격을 박탈하거나 체포하는 등 정치적 조치를 취하는 일이 발생했다고 덧붙였다.
유혈 시위로 정권 교체…"제도 회복력 보여"
반면 민주주의가 공격받고 위협당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평가도 이어진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을 두고 민주주의라는 제도 측면에서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2020년 대선 당시 트럼프 당선인으로 인해 1·6 의회 난입 사태까지 벌어져 민주주의가 크게 흔들리는 사건이 벌어졌으나, 정작 올해 대선 유세 기간 중에는 트럼프 당선인이 두 차례의 암살 시도에 노출되면서 정치 폭력의 희생양으로 묘사됐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인단 투표에서만 승리를 거뒀던 2016년과는 달리 올해는 모든 결과에서 이겨 민주성을 더욱 갖추게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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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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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국경이 맞닿은 멕시코에서도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졌다. 지난 6월 대선, 총선을 앞두고 37명의 후보가 암살당하면서 "현대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선거"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마초(남성우월주의)의 나라' 멕시코에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이라는 첫 여성 대통령이 선출되는 기록이 탄생했다. 이러한 현상은 궁지로 내몰린 민주주의가 회복력을 갖췄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외신은 평가했다.

동시에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반독재 요구가 커지면서 대규모 시위로 정권이 교체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3월 서아프리카 세네갈 대선에서는 최연소 야권 후보인 바시루 디오마예 파예가 당선됐다. 현 대통령이 자신의 정권을 연장하고자 대선 3주 전 갑작스럽게 일정을 연기하는 일이 벌어졌으나 '헌법 쿠데타'라는 비판을 받으며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고, 결국 12년 만에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방글라데시에서도 15년간 독재하면서 지난 1월 야권 보이콧 속에 총선 승리를 거머쥔 셰이크 하시나 총리가 끊임없는 유혈 시위 끝에 지난 8월 인도로 도피하며 정권 교체가 이뤄지는 일도 있었다.
민주주의 불신 갈수록 커져…10명 중 6명 "작동 방식에 불만"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뽑는 일명 대의 민주주의를 향한 불신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월 퓨리서치센터가 24개 민주주의 국가 유권자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 77%가 "대의 민주주의는 '좋은(good)' 정부 시스템"이라고 답했으나, 동시에 응답자 10명 중 6명이 자국의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에 불만이 있다고 답했다. 대의 민주주의를 두고 '매우 좋다(very good)'고 답한 응답률은 2017년 대비 절반에 그쳤다. 퓨리서치센터는 정당이 제대로 시민들의 의사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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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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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다 보니 선거에 참여하는 유권자가 점차 줄고, 제도에 불복하는 일이 늘고 있다. 국제민주주의선거지원연구소가 내놓은 '2024 세계 민주주의 현황' 보고서를 보면 지난 15년 동안 전 세계 유권자의 평균 투표율은 65.2%에서 55.5%로 낮아졌다. 반면 2020~2024년 전 세계에서 치른 선거 5건 중 1건에는 최소 1건 이상의 법적 소송이 벌어졌고, 패배한 후보나 정당이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일이 계속됐다. 선거 10건 중 1건은 야당이 선거를 보이콧했다. 야나 고로코프스카야 프리덤하우스 리서치 담당은 "민주주의가 선거의 해에 살아남았지만, 자유를 위한 투쟁은 지속되고 있다"고 전망했다.
다시 한번 시험대…내년에도 불안 지속
올 한해 전 세계에서 각종 이벤트를 겪은 민주주의가 내년에도 위협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새해를 앞두고 연말에도 민주주의 제도를 뒤흔드는 사건이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AP는 최근 ▲한국에서 대통령이 내린 비상계엄령을 국회가 막은 상황과 ▲미국에서 직전 대선 결과를 뒤엎으려 했던 후보가 결국 승리를 거둔 상황을 대조적으로 언급하며 올해 민주주의가 다방면에서 시험대에 올랐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표현했다.

'슈퍼 선거의 해'를 보낸 올해보다 내년에는 적은 선거가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연말 유럽 주요국에서 정치 변동이 심화하면서 민주주의는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극우 세력이 급부상한 독일에서는 내년 9월로 예정됐던 총선을 2월 23일로 앞당겨 치르게 됐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사회민주당·SPD)가 독일 연방의회에서 불신임받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도 미셸 바르니에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이 하원을 통과하면서 62년 만에 내각이 붕괴,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하야 요구를 거부한 채 정치적 승부수를 고민하고 있다.

베디 하디즈 멜버른대 아시아연구소 소장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민주주의를 포기했다고 말하는 건 조심스럽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주요 서방 민주주의 국가가 우익 포퓰리즘의 부상, 반이민 감정, 복지 국가의 쇠퇴로 민주주의 후퇴를 경험했다"며 성공적인 민주주의 모델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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