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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1 (수)

'처단'의 대상은 정말 누구일까?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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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강희경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를 비롯한 비상대책위원회 교수들이 지난 12월 6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앞에서 열린 시국선언 발표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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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진료과 워크숍에 다녀왔다. 예고 없이 밀려온 의료 대란으로 모두가 힘들었던 한 해를 돌아보는 일은 괴롭기 그지없었다. 전공의가 사직한 상태에서 외래 진료, 입원 환자 진료, 정규 수술과 응급 수술, 그리고 야간 당직까지 도맡아야 했던 2024년. 외과 수술은 약 30%가량 줄었다. 진료 공백을 메워주던 전임의들도 내년 3월이면 취업으로 병원을 대거 떠날 예정이다. 전문의 과정을 수련해야 할 전공의가 없는 현실에서, 새로 배출될 외과 전문의는 없다시피 한다. 당장 무슨 수술을 누구와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결국 진료량을 지금보다 더 줄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을지도 모른다.
한국일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2월 3일 밤 긴급 담화 발표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대장)이 발표한 '계엄사령부 포고령(제1호)'.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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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계엄으로 온 나라가 큰 혼란을 겪고 있다. 당시 발표된 소름 끼쳤던 포고령은 ‘자유대한민국 내부에 암약하고 있는 반국가 세력의 대한민국 체제 전복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내려졌다. 특히 제5호에서는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 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할 것. 이를 위반할 시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고 명시되었다. ‘처벌’이 아니고 ‘처단’이었다. 처단은 법률 용어도, 군사 용어도 아니다. 흉악범에 대한 자비 없는 응징이나 원한이 쌓인 적에 대한 복수를 뜻하는 데 사용된다. 국가가 자국민에게 사용하는 말이라기보다는 폭력 단체나 테러 집단이 쓰는 말로 익숙하다.

가공할 폭력적 경고는 포고령 말미에서도 반복된다. “이상의 포고령 위반자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계엄법 제9조에 의하여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제14조에 의하여 처단한다.” 즉 5호에서 이미 언급된 ‘반국가 세력’의 표본인 전공의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처단을 강조하고, 여기에 더하여 5호대로 처단을 하지 않는 포고령 위반자가 있다면 그에 대해서도 죄를 물어 처단하겠다는 연쇄 처단의 서슬 퍼런 경고가 들어있다.

놀랍게도, 지난 2월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은 이미 7월 정부 조치로 소속 병원을 통해 사직 처리가 완료되었다. 그들은 원래 있어야 할 수련 병원을 떠나, 각자의 자리에서 생업과 의업에 어렵게 적응 중이다. 즉, 12월 3일 현재 ‘파업 중이거나 의료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개입하고 검토했을 것이 분명한 문서에 의료 대란 사태의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 사실을 몰랐다면 이 사태를 촉발한 장본인으로서 사태 해결에 대한 무성의함을 드러낸 것이고, 알았다면 내란 사태의 획책을 통해 악의적 보복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포고령으로 의료인을 겁박하여 강제하는 모습은 많은 의료인과 국민에게 충격을 안겼다. 민주공화국을 운영할 정치적 능력이 전무하다는 것을 만천하에 자백한 것이다. 하루빨리 국가가 혼란과 파행을 벗어나 정상화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내란범들에게는 철저하고 확실한 ‘처단’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혼란 속에서 고통받아 온 모든 국민에게 정의를 보여주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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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흥권 분당서울대병원 대장암센터 교수·'의과대학 인문학 수업' '타임 아웃'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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