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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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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5년 단임 대통령제, 여야 5년간 죽어라 싸우게 해" ['포스트 87'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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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 87’ 길을 묻다

12·3 계엄 사태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권력자 개인의 과오만큼 '87년 체제'의 불완전성을 고스란히 노출했다는 평가다.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야할까. 이에 주요 정치인의 의견을 릴레이로 전달한다. 다섯 번째 인터뷰는 국민의힘 소속 박형준 부산시장이다.

중앙일보

박형준 부산시장은 29일 아침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개헌은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결단해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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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 이후 4주 가까이 흘렀지만 한국 정치는 여전히 아노미 상태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을 해야 하는 헌법재판소는 법에 정해진 심판정족수(7인 이상)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 공석인 헌법재판관의 추가 임명 문제로 대립하던 와중에 야당은 한덕수 국무총리의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그 결과 헌정 사상 초유의 ‘대행의 대행’ 체제가 출범했다.

이른바 ‘합리적 보수’로 불리는 박형준 부산시장은 29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굉장히 위험한 국면”이라며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국정을 책임진 세력 모두가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사태를 함께 수습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정치적 셈법에 따른 정쟁만 계속하면 대한민국 전체가 멍들고 경제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며 “야당은 최상목 대행 체제의 안정성을 유지해줘야 하고, 그러면 국민 여론도 ‘헌법재판관은 임명해야 한다’는 쪽으로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교수 시절 ‘87년 체제’라는 개념을 처음 선보였던 박 시장은 “장기 집권을 막기 위해 굉장히 어설프게 ‘5년 단임 대통령제’를 만들다 보니 여야가 5년간 죽어라 싸우는 상황이 됐다”며 “이제는 대통령과 의회의 권력을 적절히 나누고,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정부에 과감히 이양하는 ‘이중 분권 개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개헌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시행 시점을 2030년이나 2032년으로 넉넉히 두면 충분히 가능하다”며 “여야 국회의원·시도지사 중에 개헌에 동의하는 사람도 많다”고 밝혔다.

Q : 비상계엄 여파가 계속되고 있다.

A : “의도가 뭐였든 민주주의에 엄청난 타격을 줬다. 윤 대통령도, 대통령을 만든 사람들도, 대통령을 지지했던 국민도 수렁에 빠졌다. 국가 전체에 주는 충격이 굉장히 크다.”

Q :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A : “대통령 권력과 의회 권력이 충돌하면서 권력 남용 문제를 해결 못 했다. 권력은 자기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하는데, 양쪽 모두 권력을 과잉 행사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던 윤 대통령이 권력을 공적(公的)으로 사용하리라 기대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Q :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A : “일은 저질러졌지만, 수습하는 과정도 ‘듀 프로세스’(due process·절차적 정당성)에 따라야 한다. ‘혁명적 상황’으로 문제를 수습하려고 하면 부작용이 더 크다.”

중앙일보

박형준 부산시장은 29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여야 모두 권력자의 당이 되어 버렸다”며 “권력은 자기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하는데, 잡은 권력을 과잉 행사하려는 유혹에서 양측 모두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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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여야는 이미 ‘끝장 투쟁’에 돌입했다.

A : “다음 권력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 그 경쟁에서 어떻게 유리한 입지를 확보할까 하는 정치적 셈법만 남았다. 어차피 시간은 오는데, 그 시간을 당기거나 늦추려고 하는 ‘시간 투쟁’이 모든 걸 빨아들이고 있다. 정치를 회복해야 한다. 특히 유리한 국면에 있는 야당은 힘을 사용하려는 욕구가 강할 텐데, 이 역시 과유불급이다. 왜 권한대행까지 탄핵하는 무리수를 두며 서두르는지 국민은 다 안다.”

박 시장은 “여야가 전부 강경 세력에 의존해서 정치하니 타협의 여지가 점점 더 없어지는 것”이라며 “많은 정치인이 이런 문제에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87년 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을 내놓았다. “적대·증오의 정치를 타협·설득의 정치로 바꾸는 건 이상적이고 어렵지만, 적어도 제도를 이쪽으로 바꿔야 한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Q : 개헌은 늘 누구나 동의하지만 이뤄지지 않는다.

A : “차기 대통령 주자 때문이다. ‘내가 집권한다’고 생각하면, 개헌은 집권에 차질을 빚거나 자기 권한을 줄이는 문제일 뿐이다. 이를 피하려면 개정 헌법의 시행 시기를 조정하면 된다. 두 가지 방법이 있다.”

Q : 그게 뭔가.

A : “2025년 대선이 열리면 지방선거와 대선이 함께 열리는 2030년에 새 헌법을 시행하면 된다. 국민투표는 2026년 지방선거 때 해도 된다. 2027년 대선이라면 총선·대선이 함께 치러지는 2032년에 헌법을 적용하면 된다. 차차기 대통령부터 새 헌법을 적용하도록 준비 기간을 두고, 선거제를 함께 개편하면 질서 있는 제도 개혁이 가능하다.”

Q : 바람직한 정부 형태는 무엇인가.

A : “분권형 정부 형태가 낫다고 본다. 대통령은 외교·국방만 맡고, 내치는 의회에서 선출하는 총리 중심의 내각제로 가는 게 현실적이다. 이를 위해 의회는 다당제 구조가 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선거제도 바꿔야 한다. 여기에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권력도 나눠야 한다. 지방 분권이 되어야 정치 갈등도 완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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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30일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에서 열린 ‘영·호남 시도지사·국회의원 상생협력 회의’ 참석자들이 손을 맞잡았다. 모임을 제안한 박형준 부산시장은 “협치 차원으로 마련된 행사에서 ‘앞으로 제도 개혁을 할 때 서울·강남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지방 분권을 과감하게 구현하는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나눴다”며 “야당 소속 광역단체장과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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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지방 분권과 정치 갈등이 무슨 상관인가.

A : “중앙 정부가 권력을 독점하니, 다 중앙 정치에서 싸우는 것이다. 지역의 시·도지사끼리 만나면 당이 달라도 싸울 일이 없다. 의견 자체가 다른 게 없기 때문이다. 국가 전체로도 ‘서울 일극주의’로는 저출생·혁신산업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과감하게 규제 혁신을 할 수 있는 권한과 재정을 지방 정부에 준다면 더 많은 기업을 유치해 지역마다 혁신 거점을 만들 수 있다.”

Q : 보수가 위기에 처했다고 보나.

A : “엄청난 위기다. 일단 정당은 선거를 치러야 하니, 당장 분열하지 않고 단일 대오를 유지하는 건 중요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처절한 자기 혁신의 노력을 보여주지 않는 이상 국민 신임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오현석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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