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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3 (금)

텍스트힙 열풍 키운 `한강`…키워드로 본 2024 출판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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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장기 불황 겪던 훌판계 활기

2030 "책 읽는 나, 제법 멋진걸"

올해의 책 '이처럼 사소한 것들'

32종 출간 `쇼펜하우어` 열풍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짧은 영상이 지배하는 ‘숏폼(길이가 짧은 형태의 콘텐츠)의 시대’에 긴 글이 불티나게 팔렸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장기 불황을 겪고 있는 국내 출판계에 모처럼 활기를 몰고 왔다.

젊은 층 사이에선 책 읽는 모습을 자랑하는 텍스트 힙(text-hip)이 유행했고, 2030 독자들이 시장을 견인했다. 한강의 저서들이 주요 서점가 베스트셀러 순위를 석권한 가운데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국내 3대 대형서점인 예스24와 알라딘 독자들이 뽑은 ‘올해의 책’에 선정되며 뒷심을 발휘했다. 키워드로 올 한해 출판계를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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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노벨문학상

올해 K출판계의 가장 큰 성취는 단연코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다.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한국인이 노벨상을 받은 것은 2000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에 이어 두 번째다. 대표작인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등의 저서는 서점가 베스트셀러를 휩쓸며 ‘한강 신드롬’을 일으켰다. 출판사와 인쇄소는 50만 부를 증쇄했고 엿새 만에 그의 작품 100만 부가 팔리는 진기록을 연출했다.

특히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사태와 맞물리면서 더 큰 관심을 받았다. 작품은 1980년 군사 정권의 비상계엄 선포와 5월의 광주를 정면으로 마주한 한강의 대표작이다. 독자들이 45년 전 상황과 현재를 비교하며 역사를 간접 체험하려는 수요가 늘어났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강 작가의 수상을 계기로 서점가에 다시 ‘문학의 시간’이 찾아온 것도 의미가 크다. 양귀자의 ‘모순’과 최진영의 ‘구의 증명’ 등이 상반기를 이끈데 이어, 김애란의 ‘이중 하나는 거짓말’과 정유정의 ‘영원한 천국’ 등이 하반기에 큰 사랑을 받았다. 여기에 ‘한강 효과’가 더해져 올해 소설 분야 매출은 전년대비 35.7%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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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으며 웃음짓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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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힙` 열풍

올 한 해 가장 주목받은 신조어는 ‘텍스트 힙(text-hip)’이다. ‘텍스트 힙’은 글로 된 모든 것을 통칭하는 ‘텍스트’와 세련됐다는 뜻의 영어 단어 ‘힙’의 합성어다. 한마디로 ‘글을 다루는 게 멋지다’란 의미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젊은 세대의 ‘텍스트 힙’ 열풍에 기름을 부었다. 소셜미디어(SNS)에는 책 읽는 모습을 인증하거나 책 표지, 책 속 글귀 등을 찍어 올리며 독서 인증을 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실제로 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서 성인 독서율은 역대 최저치(43%)를 기록했지만, 20대의 독서율은 75%에 달했다. 15만 명이 찾은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은 방문객의 70% 이상이 2030세대였다.

Z세대(199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 출생)에게 영향력이 큰 아이돌(연예인), 유명인(셀럽)의 독서 관련 콘텐츠도 텍스트 힙 열풍에 한몫했다. 무려 10년 전 펴낸 800쪽짜리 벽돌책인 철학서 ‘불안의 서’(봄날의책·2014)는 배우 한소희가 추천하면서 품귀 현상을 겪었다. 배우 문가영이 쓴 첫 산문집 ‘파타’(PATA·위즈덤하우스)는 온라인 서점에서 예약 판매 시작 하루 만에 ‘중쇄’를 찍었다.

일각에선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과시용 독서’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출판업계 관계자는 “Z세대가 독서를 쉽고 재밌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며 “일시적 유행이 아닌 독서를 장려하고 건전한 독서 문화가 조성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자가 뽑은 `올해의 책`

온라인서점 예스24와 알라딘에서 독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4년 올해의 책’에 중편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다산책방)이 선정됐다. 얼핏 단조로워 보이는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은 지난해 11월 말 출간된 후 단숨에 각 서점에서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출간 5개월 만에 8만4000권이 판매됐다.

2022년 오웰상(소설 부문)을 수상하고 같은 해 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라 “아름답고 명료하며 실리적인 소설”이라는 심사위원들의 찬사를 받은 작품이다.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이 소설을 두고 “우리가 이 세계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 하나를 얻게 된다”고 평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사회 공동체의 은밀한 공모를 발견하고 자칫 모든 걸 잃을 수 있는 선택 앞에서 고뇌하는 한 남자의 내면을 그린 작품이다. 단순히 좋은 작품을 넘어서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변화와 행동을 이끌어내는 작품이란 점에서 호평 받았다. 최근엔 킬리언 머피 주연의 영화로 개봉하며 다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대세가 된 ‘쇼펜하우어’

올해 상반기 베스트셀러 코너에는 19세기 철학자 ‘쇼펜하우어’ 책들이 줄줄이 꽂혔다. 2021년 1종, 2022년 2종이었던 쇼펜하우어 책은 지난해 9월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이후 32종이나 출간됐다. 지난해 배우 하석진이 TV연예 방송 프로그램에서 쇼펜하우어를 소개해 화제가 된 뒤, 걸그룹 ‘아이브’ 장원영이 관련 책을 언급하자 판매가 폭증했다. 장원영은 “염세주의적 쇼펜하우어를 통해 위로를 받는다”고 추천했다. 최근에는 쇼펜하우어 인기에 니체와 프로이트 등의 학자에 관한 책도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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