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發 강달러에 국내 경제약화-정치불안 가세한 '1480원 환율'
"1500원 현실화" 경고에도…"당국 개입, 고환율 역행 못해" 딜레마
올해 마지막 거래일인 30일 오전 시중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와 환율 개장 시황이 표시되고 있다. (자료사진) /뉴스1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이번 주 원·달러 환율이 1500원에 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외환 당국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달러 강세는 지속될 전망인 가운데, 원화 가치가 연이은 탄핵 등 정국 불안에 스스로 고꾸라지고 있어 환율 방어 필요성은 확대된 상황처럼 보인다.
그러나 당국은 적극적인 환율 개입에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환율 상승은 기조적으로 자리 잡은 강달러 위에 국내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 약화 등이 뒤얽힌 문제여서, 공격적 시장 개입은 실제 환율 안정 효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경제 위기의 방파제인 외환보유고만 축낼 수 있단 경계심이 앞선 결정으로 풀이된다.
31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전날 원·달러 환율은 하루 새 5.0원 오른 1472.5원으로 주간 거래를 마쳤다. 한 해 마지막 거래일을 기준으로 1997년(1695.0원) 이후 2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계속되는 원화 약세에 한국은행 등 당국은 딜레마에 처한 모양새다.
안 그래도 미국 트럼프 정부 출범으로 달러 강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데, 원화 가치가 정국 불안 등 대내 요인으로 인해 저절로 추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증권가에서는 환율이 조만간 1500원을 돌파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정국 불안 장기화 우려로 환율 추가 상승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며 "이미 4.6% 수준까지 오른 미국 10년 국채 금리가 추가로 상승하면 주요 신흥국 통화 가치가 더 불안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이번 주 환율 예상 범위로 1460~1500원을 제시했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도 "지금은 대내 정치 불확실성이 환율의 단기 변동성을 높이는 상황"이라며 "정국 불안이 깊어질 경우 환율 1500원 현실화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자료사진) ⓒ AFP=뉴스1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환율이 우려처럼 1500원 턱밑까지 오르고 변동성이 커질 경우, 당국은 외환보유고를 활용해 보다 공격적인 환율 방어에 나설 수 있다.
앞서 당국은 비상계엄 사태 이후 급등하는 환율에 대응하고자 경제·금융 당국 수장(F4) 회의에서 여러 차례 구두 개입에 나섰다. 이 밖에 환율 변동성을 축소하는 수준의 미세 조정을 시행했으며, 지난 20일에는 환율 안전판 역할을 하는 국민연금과의 외환 스와프 한도를 500억 달러에서 650억 달러로 확대했다.
다만 시장 기대 수준을 뛰어넘는 규모로는 개입하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최근 환율 상승이 이미 기조적으로 자리 잡은 달러 강세 위에 국내 정국 불안, 경제 펀더멘털 악화 등이 가세한 결과물이라서다. 이달 초 계엄 사태로 인한 혼란이 당장 해결된다 해도 원화 강세 전환은 기대하기 어려운 환경인 터라, 외환보유고를 헐어 달러를 풀어 봤자 실질 효과는 거두기 힘들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전규연 하나증권 연구원은 "당국 개입과 국민연금 외환스와프가 환율 상단을 일부 제약하고 있으나 당국의 시장 안정화 조치는 환율의 추세를 바꿀 수 없다"며 "원화 고유의 강세 유인을 찾기 힘든 상황에서 환율이 하락하려면 미국 경기를 둘러싼 우려가 불거져 달러가 약세 전환하는 경로가 유일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과도한 개입 땐 외화보유액 감소에 따른 대내외 불안 심리 악화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당국의 외환보유고는 경제 위기 때 급격한 자금 유출에 대응해 국민 경제를 지키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 현재 우리나라 외화보유액은 4000억 달러를 넘겨 세계 9위 수준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적정 규모로 평가하는 기준인 3개월 평균 경상수입과 단기외채 합계를 웃돈다.
하지만 외환보유액은 지난 10월부터 2개월 연속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을 앞두고 미국 재무부의 환율 보고서 압박이 커질 가능성 또한 고려해야 한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자료사진) /뉴스1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그렇다고 당국은 '심리적 저항선'인 환율 1500원 선 돌파를 손 놓고 지켜보기도 부담이 된다. 이 경우 시장에 충격이 가해지면서 환율 변동성이 더욱 극심해지는 시나리오를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이 같은 고환율 우려는 향후 국내외 상황에 따라 누그러질 수도 있다.
대외적으로는 1월 20일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트럼프 2기 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걷히면서 달러 강세가 다소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찬희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달러화 흐름은 2016년 트럼프 1기 당시와 유사한 궤적"이라면서 "트럼프 취임 이후 선반영된 불확실성이 되돌아갈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내적으로는 새해 국내 정치 대립이 어느 정도 해소되고 최상목 경제부총리를 필두로 한 대행 체제가 자리를 잡는다면 환율 상승 압력이 일부 가실 수 있다. 연말·연초 국내 수출 업체들이 차익 실현을 위해 그간 쌓아둔 달러를 시장에 풀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당국의 부담을 덜어주는 요인이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환율 급등 시 수출 업체의 단기 고점 인식에 따른 물량이 나올 수 있어 환율 급등을 제한할 수 있다"며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회 몫 헌법재판관 3명에 대한 임명을 수용하는 등 정국 안정에 전향적 태도를 취할 경우에도 예상과 달리 환율이 하향 안정세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icef08@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