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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선포’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위로 나라가 비상사태로 치닫고 있다. 실제로 위급한 상황이 아닌데도 대통령의 어처구니없는 말 하나로 정말 비상사태가 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 선포 대국민 특별담화문에서 탄핵과 특검을 남발하는 민주당의 입법 독재로 국정이 마비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전복될 위기에 처해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계엄을 선포했다고 강변했다. 많은 사람이 처음 들었을 때는 가짜뉴스로 생각할 정도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한 국가의 지도자가 국정의 난맥과 마비를 민주적 절차에 따라 풀지 못하고 폭력에 의존한다는 말인가?
자신의 정치적 무능력을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는 주권자의 권한으로 대체하려는 것부터가 자신이 그토록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배신이다. 그는 거듭 “거대 야당이 지배하는 국회가 자유민주주의 기반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의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괴물이 되었다”고 변명한다. 탄핵 찬성 집회에 참여하는 학생들도 알고 있는 삼권분립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대통령이 사실 괴물이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을 혼자만 모르는 당신이 바로 괴물이다. 어린아이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기막힌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괴물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자력으로 쟁취해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이해할 수 없어 어이없어하다가, 국가와 민주주의를 퇴보시키는 시대착오적인 폭거에 분노하다가 이런 괴물을 탄생시킨 것은 바로 우리의 정치문화라는 인식에 암담해진다. 우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맞닥뜨리면 희생양을 찾는 경향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정신 상태가 의심스럽다거나 개인적 성향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등의 말은 모든 책임을 한 개인에게 돌린다. 물론 윤석열 대통령은 탄핵 심판과 내란죄 수사를 통해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은 결코 문제의 끝이 아니다. 그가 물러나고 대선을 통해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한다고 해서 계엄 선포로 불거진 우리 정치의 문제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괴물을 낳은 사악한 정치적 문화가 공고하면, 정치적 괴물은 계속 탄생할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더 무섭고 잔혹한 괴물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카리브디스’라는 소용돌이를 피하려다가 여섯 개의 머리를 가진 바다 괴물 ‘스킬라’를 만나는 형국과 같다. 호랑이 굴에서 도망쳤는데 용의 굴로 들어간 격이다. 괴물과 싸우다 서로 괴물이 된 대한민국 정치에서 서로 괴물이라고 비난하는 것만큼 슬픈 코미디도 없다.
괴물 같은 정치문화 더 나빠져
윤석열 대통령의 ‘괴물’ 소환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된 2016년 12월을 떠올리게 만든다. 당시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 손에 들려있는 촛불만큼이나 많이 언급된 개념이 하나 있다. 해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재판에 대한 보고서에서 언급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이다. 그 행위가 아무리 괴물 같다고 해도 그 행위자는 괴물 같지도 또 악마적이지도 않다는 것이 이 말의 요점이다. 도대체 무엇이 지극히 평범한 아이히만을 대량 학살이라는 거대한 기계의 톱니바퀴로 만들었는가? 아렌트의 대답은 간단하다. 생각할 능력의 결핍이 악을 불러온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말할 능력이 없음이 결국 악을 키운다. 소통하지 않으면 결국 무엇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능력을 상실한다. 우리는 8년 전의 비극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우리의 괴물 같은 정치문화는 개선되기는커녕 더 나빠졌다. 괴물을 만든 건 바로 사악한 우리의 정치문화이다.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 당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베이징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하면서 “우리나라 기업은 이류이고 행정은 삼류인데 정치는 사류”라는 말을 했다. 최고와 일류를 추구해야 할 목적으로 남겨놓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평가의 순서는 바뀌지 않았다. 기업은 세계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일류에 가깝고, 정치는 여전히 삼류다. 우리 정치는 이제 기업의 발목을 잡을 뿐만 아니라 국민의 삶마저 옥죄는 괴물이 되어버렸다. 이런 괴물 같은 정치를 바꾸지 않으면 윤석열 대통령이 물러나더라도 또 다른 괴물이 탄생할 것이다.
괴물을 키운 건 우리가 아닐까
우리가 정치를 개선하려면, 우선 정치의 등급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관용’과 ‘책임’의 두 가지 개념으로 정치를 세 등급으로 분류할 수 있다. 우선, 일류정치는 관용과 책임이 모두 실현되는 정치이다. 민주주의에서는 국민의 이익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입장이 있을 수 있다. 이념도 다르고, 가치도 다르고, 이념과 가치를 실현하는 정책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다양한 정당들이 바람직한 질서와 사회를 위해 경쟁한다. 서로 다른 역사, 문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평화로운 공존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관용’이다. 물론 다양한 집단과 개인이 평화롭게 공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모든 실제적 차이를 용인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마다 관용의 정도는 다르지만, 관용 자체가 불가능해질 정도로 차이가 극단화되어서는 안 된다. 좋은 사회는 아무리 경쟁하고 갈등하더라도 관용을 지속 가능하게 만든다.
정치는 국민에 대한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 권력을 추구하는 행위이다. 힘이 있어야 자기 뜻을 펼칠 수 있는 것처럼, 권력은 정치의 필연적 수단이다. 따라서 정치인은 자신의 내면적 신념에 따라 행동해서는 안 된다. ‘나는 옳은 일을 한다’는 내적 확신과 도덕적 순수성은 종종 현실적 타협을 거부하고, 행위 결과를 부차적인 것으로 생각하여 책임을 경시하는 태도를 가져온다. 이에 반해 정치인은 행동의 결과에 책임질 줄 아는 윤리적 의식을 가져야 한다.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개인적 신념을 희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정치인은 ‘내 행동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라고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이렇게 관용과 책임이 결합한 정치가 일류정치이다. 이런 정치에서 우리는 ‘국가 정치’와 ‘국가 정치인’을 본다.
이류정치는 국민에 대한 책임 의식은 상대적으로 있어도 경쟁적 정당을 관용하지 않는 ‘정당 정치’이다. 모든 정당은 사실 권력을 놓고 경쟁한다. 자신들이 정권을 잡아야 비로소 나라가 좋아진다는 신념 아래 경쟁적 상대 정당을 공격하고 비난한다. 이러한 경쟁적 적대 관계가 악화하면, 경쟁적 정당들 사이의 대화와 타협은 실종되고 혐오와 투쟁이 일상화된다. 싸움 잘하는 정치인이 능력 있는 정치인으로 평가받는 정쟁 사회가 된다. 물론 이 경우에도 국민과 국익에 대한 책임 의식이 살아있을 수 있다. 상대 정당보다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은 종종 국민에 대한 책임에서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양당제 정당 정치에서 국민에 대한 책임이 줄어들수록 정당들은 더욱더 적대적 공생관계에 빠진다.
끝으로, 삼류정치는 국민에 대한 책임도 없고 관용도 하지 않는 천박한 ‘파당 정치’이다. 파당은 정치적 이해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뭉쳐 이룬 폐쇄적 집단이다. 이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국가와 국민의 이익보다 파당의 이익을 우선시한다. 그들은 정치를 자기 이익의 도구로 삼는 ‘정치꾼’들이다. 문재인 정권이나 윤석열 정권은 상대 당을 제거하고 청산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고 관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똑같다. 서로를 반국가세력으로 낙인찍고 제거하려는 삼류정치가 바로 국정을 마비하고,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괴물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국민의힘은 당의 이익을 위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포기한다는 점에서 괴물이고, 탄핵 소추로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에 이어 대통령 권한대행을 탄핵하는 민주당은 당리당략을 위해서 국정 마비도 불사하겠다는 괴물이다. 민생과 국익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삼류의 파당 정치와 파렴치한 정치꾼들은 결국 나라를 망친다. 삼류정치가 괴물을 낳는다. 누가 이 괴물을 죽일 것인가? 사람들은 이 엄혹한 시기에도 냉정을 잃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하는 국민이 희망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런 괴물을 키운 것은 우리가 아닌가? 이런 인식으로 출발하는 새해가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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