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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4 (토)

[김상미의감성엽서] 새해엔 쓰고 또 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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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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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의 마지막 날을 며칠 앞둔 오후. 며칠만 지나면 2025년 새해다. 나는 새해가 좋다. 지난해에 못했던 걸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명분을 주니까. 새해가 오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할까? 나는 시인이니까 내 마음에 드는 좋은 시를 한 스무 편쯤 썼으면 좋겠다. 시력 34년에 겨우 시집 5권밖에 못 냈으면서 욕심도 많다며 누군가는 웃겠지만, 왠지 새해엔 그리운 시마(詩魔)가 나를 찾아올 것만 같은 예감! 벌써 가슴이 뜨거워지고, 그동안 이곳저곳으로 쪼개어져 흐르던 감성들이 한 줄기 시내를 이루며 내게로 흘러오는 게 보인다. 새해 아침이 밝아오면 그 시내에 머리를 감고, 손과 발을 깨끗이 씻고, 책상 앞에 앉으리라. 그러곤 시로 가득한 내 기억 속으로 풍덩 빠지리라. 시는 기억 속에서 자라고, 그 기억을 아름답게 춤추게 만드는 건 시인의 열정일 테니.

우선 몸풀기를 위해 책꽂이에 꽂힌 올가 토카르추크(폴란드 작가,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의 “다정한 서술자”를 책상 위로 가져온다. 내 기억 속에서 춤추는 시어(詩語)들을 시의 숲으로 데려오려면 ‘다정한 서술자’가 필요하니까. 그리고 내가 아는 한, 그 역할을 아주 잘해줄 작가로 올가 토카르추크만 한 작가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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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여니 찌를 듯 선명하고 홀릴 듯 단순한 겨울바람이 온몸을 감싼다. 그 바람 속에서 내 마음속 서술자의 목소리를 듣는다. “무엇보다 먼저 써야 한다. 마치 인생이 거기에 달려 있는 것처럼.” 그래, 쓰자. 쓰고 또 쓰자.

새해 목표가 정해졌으니 앞으로 어떻게 쓸 것인가. 이 혼란한 시대를 어떤 시로 극복할 것인가. 가장 훌륭한 창작은 창작에 대한 성찰이라고 누군가가 말했지만, 이젠 그런 공식이나 미학, 계획 없이 그냥 쓰고 또 쓰고 싶다. 내 세계를 이루는 아주 하찮은 것에서부터 시작해 비 오고 바람 불고 눈 내리고 햇빛 쨍쨍한 저 들판으로 나아가고 싶다. 아마 올가 토카르추크를 비롯한 많은 시인, 작가가 그 길에 함께 해주리라. 시인은 혼자지만 시는 혼자가 아니니까.

좋은 시 스무 편? 물론 확답은 못하지만 꼭 그 가까이엔 가리라. 처음으로 시를 걸고 하는 내기. 내 살과 피와 열정을 다 쏟는다면 못할 것도 없는 내기. 나는 서랍에서 백지를 꺼내 펜을 들고 시를 쓰기 시작한다. 그러곤 그 시에 빛과 공기, 바람과 다정함을 불어넣는다. 모든 시는 사랑의 행위, 믿음의 행위. 며칠 뒤 밝아올 새해 또한 내게 무한한 우정을 보태주리라. 그러면 나는 그 안에서 보이는 것 이상의 것들로 다시 시의 문을 활짝 열 수 있으리라. 모두 모두 새해 복 듬뿍 받으세요!

김상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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