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1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제76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부대분열을 보며 박수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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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사태는 왜 제왕적 대통령제와 이별해야 하는 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사건이다. 비상계엄 선포는 온전히 윤 대통령의 비정상적이고 위헌적인 판단의 결과물이지만, 대통령제는 최소한의 제어 장치를 작동시키지 못해 시스템으로서의 한계를 드러냈다. 한 사람의 오판으로 국가 전체가 혼란에 빠지는 상황, 진영 대결이 극단에 이르러 ‘상식적 판단’을 불가능하게 하는 상황을 막으려면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고 견제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새로운 권력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비극적 최후 맞은 대통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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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통령들은 대부분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국가원수로서 ‘만인지상’으로 강력한 권력을 휘둘렀지만 마지막에는 그 권력에 자신의 몸을 베이는 대통령들이 대다수였다. 한 사람에게 과도한 힘이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계와 모순점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은 대통령제가 가진 독재 체제로의 변질 가능성을 또렷이 보여줬다. 이 전 대통령은 1~3대로 12년, 박 전 대통령은 5~9대로 16년간 장기집권 했다. 집중된 권력은 개인을 부패하게 했고, 부패한 개인은 권력을 놓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은 1960년 3·15 부정선거 후 4·19 혁명으로 물러났다. 박 전 대통령은 10·26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다. 뒤이어 11~12대 대통령 전두환씨의 독제 체제가 등장하자 국민적 저항이 들끓었고, 1987년 민주화는 대통령제를 단임제로 바꿨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장기 독재 체제로 변질되는 문제를 막는 최소한의 제어 장치를 만든 셈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대통령제의 비극은 계속됐다. 대통령들은 사법처리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불행한 최후를 반복했다. 민주화 이후 배출된 단임 대통령 8명 중 5명은 구속되거나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의결됐다. 단임 대통령제에서도 제왕적 대통령제는 심화했다. 대통령은 중간 임기 평가를 받을 기회도 없고, 필요도 없어졌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2·12 쿠데타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지만, 비자금 내역까지 공개되며 국민 저항이 격화해 결국 법적 처벌을 받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구속된 이후 징역 17년형을 확정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을 거쳐 헌법재판소에서 파면됐고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22년형이 확정됐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본인이 처벌받진 않았지만 가족들이 수사를 받으며 오점을 찍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가족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1일 기자에게 “가족 리스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도 결국에는 비선 측근 문제로 정권을 내줬다”라고 말했다. 본인, 가족, 측근 비리가 대통령제 때문에 생겼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권력이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 더 빈번하게 일어날 가능성은 크다.
대통령들의 비극적 최후는 승자독식에 따른 정치 양극화도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전임 정권 수사는 일종의 공식이지만 칼 끝을 겨누는 수준에 그치느냐, 실제 휘두르냐는 다른 문제다. 정치권에선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이뤄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정치 대결 구도와 양극화의 ‘트리거’로 본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수사가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이어졌고, 더불어민주당 등 진보 진영에서 그에 대한 반작용이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생도 보수와 진보의 전쟁이 만들어낸 파편으로도 지적된다.
정치권 관계자는 “대통령제냐 혹은 의원내각제냐는 짜장면이냐 짬뽕처럼 무엇이 더 옳으냐가 아닌 선택의 문제로 봐야 한다”며 “지금은 정치권이 복수혈전을 펼치는 상황이다. 서로 합의를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더이상 대통령제는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유성진 이화여대 스크랜튼학부 교수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탄핵이 반복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사회에 격화되고 있는 정치적 양극화와 이에 편승한 정치세력”이라며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권한 약화에 초점을 맞춘 개헌과 두 거대정당 중심의 정당체제 혁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극단적인 위험 드러낸 비상계엄
윤석열 대통령이 2차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후 서울 한남동 관저에서 대국민담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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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재임 기간은 대통령제의 위험성이 다양한 측면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난 시기다. 윤 대통령은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시행령 통치 등으로 야당과의 협의 과정을 사실상 거부하며 국정을 독자 운행하려 했다. 여당에도 일방적 지시를 내리며 수직적인 당정 관계를 고착화했다. 21~22대 국회에서 대치 정국의 결정적 책임은 결국 윤 대통령에게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한 친윤석열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에도 ‘여소야대라서 국정 운영이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조언을 하면 ‘거부권과 시행령으로 잘 운영할 수 있다’고 답했다”며 “일반적으로 정치인들이 할 수 있는 얘기와는 전혀 달랐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협치가 필요 없다고 판단했고, 야당을 적으로 간주했다. 이런 과정에서 여야 간 대치 정국은 더 심화했다. 대통령 개인의 판단에 따라 국회의 운영 양태가 완전히 달라진 셈이다. 윤 대통령이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반대하고 국민 여론도 반대하는 의대 2000명 증원을 고수한 과정도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보여주는 사례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과정에서 대통령 개인이 무슨 일까지 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윤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을 포함해 수석급 참모진 등을 배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의 한 수석은 윤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대국민 담화 당일에 기자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 수석은 대국민 담화 발표 직전인 오후 10시쯤에야 용산 대통령실로 들어가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국무회의 과정도 윤 대통령 개인의 의사 결정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위한 국무회의를 개최하는 과정에서 정족수를 채우는 데만 집중했다. 일부 장관들은 이미 정족수가 찼다는 연락을 중도에 받기도 했다. 장관들은 대통령을 제어할 수 없었고 그저 정족수를 채우는 수단으로 기능했다.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국무위원들의 증언들을 토대로 보면, 장관들 다수는 계엄 선포에 반대 의견을 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묵살했다. 논의 과정도 사실상 없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금 헌법으로는 제2의 윤석열을 막을 수가 없다”며 “승자독식에서 벗어나야 하고, 대통령제를 유지하더라도 대통령 권한을 줄이는 제도적 정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대한민국 정치개혁을 위한 그랜드 디자인,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라며 “다음 대통령의 시대정신은 87년 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게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순봉 기자 gabgu@kyunghyang.com, 유새슬 기자 yoos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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