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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12·3 계엄사태가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극단적으로 드러내면서 차기 대선을 바라보는 여야 주자들의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입장이 주목받고 있다. 여권의 대선 주자들은 벌써부터 4년 중임제, 의회 해산권 등을 거론하며 개헌 논의에 불을 지피고 있다. 야권 주자들은 내란 사태 우선 해결을 강조하며 현 시점에서의 논의에 신중론을 펴고 있다.
여권 주자들, 개헌 ‘힘싣기’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1차 탄핵소추안 표결이 진행된 지난달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를 경찰병력이 에워싸고 있다. 이준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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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국면에서 나온 이번 개헌 논의는 야당보다 여당이 더 주도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윤 대통령의 위헌적 비상계엄에 후폭풍을 줄이려는 입장에서 탄핵보다는 임기단축 개헌 등을 통한 ‘질서있는 퇴진’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비상계엄 사태의 이유를 윤 대통령 개인의 문제보다 ‘제도 탓’으로 돌리며 시선을 분산하려는 뜻도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여권에선 탄핵안 가결 이후에도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는 다양한 개헌론을 제시해왔다.
여권의 대권 주자들도 당의 입장에 발맞춰 개헌론을 적극적으로 거론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7일 윤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첫번째 탄핵안이 부결된 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선거 주기가 맞지 않아 혼선이 있는 현행 헌법을 개정해 내후년 지방선거 때 대선도 같이 치를 수 있도록 4년 중임제 대통령제로 개헌을 추진하라”고 제안했다. 그는 2021년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시절에도 4년 중임제 개헌을 제시한 바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최근 SNS에서 “승자독식의 의회폭거와 제왕적 대통령제를 허용하는 이른바 87 헌법 체제의 한계를 인정하고 개헌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의회 해산권과 내각 불신임권 등 내각제적 요소를 넣어 의회와 내각이 서로 견제하는 체계를 제안했다. 이번 사태의 근본적 문제 중 하나로 거대 야당의 ‘의회 폭거’를 꼽고, 대통령이나 총리에게 의회 해산 권한을 주자는 제안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맞춰 “일할 수 있는 대통령을 만드는 헌법 제도”도 강조했다.
여권 정치인들의 개헌론은 지지층 입장과 충돌하고 있다. 경향신문이 여론조사기관 메타보이스에 의뢰해 지난 28~29일 전국 18세 이상 남녀 102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신년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자 33%는 ‘개헌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이 개헌에 더욱 적극적이었다. 이는 여권 주자들의 개헌론이 지지층 목소리를 반영했다기 보다, 현 상황을 타개하고 거대 야당을 견제하는 차원으로 활용되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불리한 상황인 여당이 미리 야권 대통령 힘을 빼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있다.
반면 여권 대선 주자 중 당내 주류와 각을 세우고 있는 한동훈 전 대표는 개헌론에 별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다. 친한동훈계 일각에서는 개헌이 본질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사견을 전제로 “대통령제든 의원내각제든 제도의 문제가 아니고, 이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 아닌가”라며 “개헌을 통해 정국의 문제점을 돌파한다는 것들이 과연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까”라고 말했다.
여당 바깥에 있지만 아직 보수진영의 대권후보로 평가되는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도 개헌론에 회의적이다. 이 의원은 최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4년 중임제 개헌을 하면) 다음 선거를 위해 많은 정책이 졸속으로 추진되지 않을까”라며 “그런 것은 권력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일 뿐, 권력구조를 바꾼다고 많은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검찰이나 감사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같은 기관들의 독립성과 균형·견제 장치를 마련하는 방향의 개헌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야, ‘신중론’ 속 시점 모색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27일 국회 당대표회의실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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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들은 현시점의 개헌 논의에 조심스러운 기류를 보이고 있다. 이재명 대표 측 관계자는 통화에서 “지금 개헌을 말할 타이밍인지 모르겠다”라며 개헌 논의의 전제 조건으로 국정 정상화를 거론했다. 최근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수습되고, 윤 대통령 탄핵심판 등 ‘내란 사태’의 해결이 우선 이뤄져야 논의에 나설 수 있다는 취지다.
이 대표 측은 개헌의 필요성이나 구체적인 방향과 관련해선 “지난번 대선 때 나가서 밝힌 정도에서 크게 달라진 바 없고, 추가적인 논의는 없었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 대선 당시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제안했으며, 지난해 1월 신년 기자회견에는 결선투표제 도입과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 감사원 국회 이관 등을 제시한 바 있다. 그는 향후 개헌 논의가 재개돼도 비슷한 방향을 제안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지금은 내란 단죄와 탄핵에 집중해야 할 때”라며 “개헌 논의는 그 이후에 논의해도 늦지 않다”는 입장을 보였다. 다만 김 지사는 “나는 2021년 대선 때부터 4년 중임제 개헌을 공약한 바 있다”며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선 긍정했다. 그는 권력구조 개편에 있어 분권형 대통령제와 책임총리제 및 책임장관제 실시를, 선거제에 있어선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정당 국고보조금 폐지 등을 제안한 바 있다. 국회의원 3선 초과 연임금지, 면책특권 폐지 등도 강조했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도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고 분산하는 방향의 개헌에 대해 공감하는 입장이다. 김 전 총리는 최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그것을 내각제로 부르든 이원집정부제라 부르든 중요하지 않고, 우리 헌법에 어떤 한계가 있는지 논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만 논의 시점과 관련해서는 “최소한 여당 쪽에서 이 상황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정립된 입장을 내야 한다”며 비상계엄에 대한 명확한 사과, 윤 대통령과의 선 긋기 등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탈피하기 위한 개헌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당장 시급한 것은 ‘친위 쿠데타용 계엄’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원포인트 개헌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과 같이 대통령의 독단적인 결정만으로 ‘계엄’을 선포할 수 없도록, 계엄 선포시 반드시 국회 동의를 거치게 하고 국회에서 해제를 결의하면 즉시 효력이 발생하게 해야 한다”라며 “만일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쿠데타용 계엄 방지’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도 동시에 실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누가 대통령이 돼도 국민들이 불안해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권 주자들은 모두 당장 개헌 논의를 시작하는 데 선을 그었으나, 야권 지지층에선 상대적으로 개헌 필요성을 말하는 목소리가 높다. 경향신문 신년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자 중 53%는 개헌의 적절한 시기를 ‘2025년 내’라고 답했다. 야권 지지자들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신속한 해체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차기 대선에서 유리한 지형을 차지한 야권 주자들이 여러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며 이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8년 전에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에 대한 고민이 적었고 이번에도 한쪽(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2심 전 대선이란 목표 외에는 없고, 다른 한쪽(국민의힘)은 어떻게든 그것을 지연시키는 것 이상의 목표가 없다”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정치권이 선거에만 몰려버리면 5년 후든 몇년 후든 근본적인 문제는 계속 안고가게 된다”면서 여야 모두 헌정체제 재정립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민서영 기자 min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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