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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5 (일)

나는 새해 첫날이 싫다[에디터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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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전국농민회총연맹이 트랙터를 몰고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로 향하다 서울 서초구 남태령 일대에서 가로 막혀 밤새 대치한 다음날인 22일 시민들이 모여 집회를 이어나가고 있다. 정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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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해 첫날이 싫다.’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가 1916년 1월 낸 A4 한 장 분량의 에세이 제목이다. 그는 새해가 만기일처럼 다가온다고 했다. 사람들이 지난해 결산과 새해 예산 짜기 같은 금융과 상업의 접근법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일을 지적했다. 요즘 새해 계획 1·2위를 다투는 게 재테크다. 비슷한 순위권의 건강이나 자기계발도 수입과 지출 따지듯 한다. 지난해 모자라고 부족한 점을 반성하고, 새해 새 결심을 다지는 일도 ‘관습적으로’ 반복한다.

그람시가 새해라는 고정관념을 문제 삼는 건 지난해와 새해 사이 시간의 단절·구분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특정 날짜에 맞춰 삶을 계획하는 일이다. 이런 생각은 “새해 새 역사가 시작된다”는 믿음과도 이어진다. 그람시는 중세의 새해, 근대의 새해 같은 예를 든다. “침투적이고 지배적”이며 “의문 없이” 받아들이는 연도 중 하나가 1492년이다. 이 글에 연도만 적고 따로 부연은 안 했는데, 한국에서도 공식처럼 외우는 ‘콜럼버스가 신대륙(또는 신세계)을 발견했다’는 그해일 것이다. 과장·왜곡·고정된 이 새해를 근대의 기점으로 삼는 이들도 많다.

대체 이 ‘근대의 새해’는 아메리카 선주민들에게 무슨 의미인가. 1491년까지 없다가 콜럼버스가 새로 ‘발견’한 ‘대륙’인가. 인류는 1492년부터 정말 ‘신세계’에 살 게 됐나. 유럽 밖, 1491년 전후 곳곳의 개별 삶들을 지워내는 건 분명하다. 유럽인의 선주민 대량학살 문제도 가린다. ‘1492, 우리 세계의 시작’(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 지음)이란 책 제목에 빗대면 ‘1492, 우리 세계의 종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람시는 이런 몇몇 특별한 날짜, 연도, 기념일 같은 연대기가 새해라는 고정관념처럼 역사를 단절하며 역사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봤다.

연대기는 주로 권력자, 지배자의 ‘새해’를 기록한다. 흔히 쓰는 원년의 뜻 중 하나는 ‘임금이 즉위한 해 또는 이듬해’다. 연호를 정한 첫해라는 뜻도 있다. 연대기 중 지금도 위력을 떨치는 건 박정희 1972년 유신 같은 권력자의 새해다. 위법·위헌의 12·3 비상계엄을 저지른 윤석열을 탄핵하고, 형사처벌하지 못하면 극우들은 2024년을 ‘구국의 영웅이 결단을 결행하신 해’로 기록·기념하려 들 것이다. 이미 여러 극우 인사가 구국의 결단이라며 칭송한다. 용산으로 복귀한 ‘대통령 윤석열’은 2025년을 자기만의 어떤 원년으로 만들려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만든 또는 만들어진 영웅과 메시아’, 실은 ‘권력 괴물’들의 연대기를 경계하는 게 한국에선 늘 과제다.

역사 서술은 여러 사건과 인물을 두고 무엇을 넣고, 뺄지에 관한 문제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판단하는 일이다. 그람시도 “연대기는 역사의 중추”라는 말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누구의 어떤 연대기를 우선해야 하는 문제가 남는다. 2024년은 2030 여성 주축의 시민과 농민들이 결합해 이뤄낸 ‘남태령 대첩’의 해로 기억해야 한다. 2025년은 윤석열 정권과 가장 먼저, 앞장서 싸웠던 성소수자와 장애인들이 차별금지법을 제정한 해여야 한다. 기후환경에 앞장선 이들의 화두인 ‘체제 전환’의 실마리를 푸는 해여야 한다. ‘소수자들, 패배자들, 급진의 기획자들의 연대기’를 기록해야 한다. ‘정권교체의 새해’만 이룬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건 2017년 확인했다.

경북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 노동자 박정혜와 소현숙은 1월2일 기준 360일째 고공농성을 했다. 10~11일 구미공장에서 ‘한국옵티칼 박정혜·소현숙 고공농성 1년 희망텐트’를 연다. 한화오션 하청 노동자이자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인 강인석은 44일째 단식투쟁 중이다.

새해, 새 시대, 새 역사 운운하는 권력자들이 유독 이런 문제는 ‘결산’하려 하지 않는다. 한국의 억압·차별·배제·소외 문제는 만기일도, 결산도, 새 예산 편성도 없다. 차별금지법 제정 문제에서 드러났듯 보수를 자처하는 이들은 이 문제를 무시하거나 배척하고, 진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나중에’로 미룬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하겠다는 말 같지만, 늘 ‘순서상이나 시간상 맨 끝’의 일이 되고 만다. 더불어민주당이 전광훈을 내란 혐의로 고발했지만, 차별금지법 제정을 두고는 전광훈류의 극우 개신교도들과 타협하거나 이들의 준동을 언제든 방관할 수 있다.

그람시는 매일을 새해 첫날처럼 여기려 했다. 그는 “매일 새롭게 거듭나고 싶다” “삶의 매 순간이 과거와 연결되면서도 새로운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고 썼다. “땅을 밟고 싶고, 일터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박정혜, 소현숙)는 바람으로 하루하루 싸우며 살아가는 이들을 보며 새 연대기를 떠올렸다.


☞ ‘응원봉 시민’의 연대, 냉소·분노도 희망으로 바꿨다[12·3 비상계엄 한 달]
https://www.khan.co.kr/article/202501021649001



☞ 1년 채워가는 한국옵티칼 고공농성···30만보 걸어가 만난 김진숙
https://www.khan.co.kr/article/202412011752001


김종목 사회부문장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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