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구 워싱턴 총국장 |
계엄·탄핵 국면에서 이해가 안 됐던 것 하나가 국민의힘 행보다. 윤석열 대통령의 12·3 계엄은 잘못이지만 탄핵은 반대한다며 탄핵소추 표결에 불참한 건 명백한 이율배반이어서다. 전국 정당을 지향하고 수권 정당을 표방하는 당이 국민 열 중 여덟이 찬성하는 대통령 탄핵에 반대한 건 ‘영남 자민련’의 길을 가겠다는 자해극처럼 들렸다. 가뜩이나 108석으로 쪼그라든 당이 또 쪼개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그랬을까.
미국 정치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무너져 내린 일로 기억되는 2021년 1·6 의사당 난입 사태. 그 배후로 지목되며 추락했지만 4년 만에 부활한 도널드 트럼프의 생환 스토리 말이다. 1·6 사태와 12·3 계엄은 정도와 양상은 다르지만 본질적으로는 닮았다. 선거에서 진 쪽이, 부정선거 음모론이라는 망상에 빠져, 헌법과 법률에 따른 민주적 절차(미국은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의회 인준, 한국은 국회의원의 계엄 해제 표결)를, 폭력을 동원해, 저지하려 했다는 점에서다. 미수에 그쳤다는 결말까지도.
미국 민주주의의 참사로 기억되는 2021년 1·6 의사당 난입 사태.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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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을 50여 일 앞두고 만난 리젠트대 심리학 교수 짐 셀즈는 2016년 대선에선 트럼프를 찍었지만 이번엔 그럴 수 없다며 이런 말을 했다. “민주주의를 잃으면 다 잃습니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는 다르게 대선은 트럼프 압승으로 귀결됐다. 이를 예상한 사람들이 4년 전 몇이나 있었을까. 대반전 드라마는 한국 정치에도 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파면 이후 촛불 민심에 힘입어 정권을 잡은 더불어민주당에서는 ‘20년 집권론’이 나오는 등 기세가 좋았다. 20년은커녕 불과 5년 만에 정권을 내줄 거라고 예상한 사람들이 역시 몇이나 있었을까.
민주당 정권은 편가르기에 매몰돼 ‘내로남불’을 거듭했고, 이데올로기에 치우쳐 먹고사는 문제를 놓쳤다. 미국의 민주당 정부도 치솟는 장바구니 물가를 해결 못 해 정권을 뺏겼다. 민생고를 이기는 정권은 한국에도 미국에도 없다.
다수 언론사의 신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조기 대선 시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은 걸로 나온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민주당은 오만과 독선으로 윤 대통령에게 정권을 헌납했던 3년 전 자신을, 무능과 실정으로 트럼프에게 정권을 빼앗긴 미국 민주당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그게 지속 가능한, 다시 말해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수권 정당의 길이다. 그렇지 않으면 또 머지않아 성난 민심의 회초리를 받아들게 될지 모른다.
김형구 워싱턴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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