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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5 (일)

[오상우의 내 몸 사용 교과서] 지인을 죽음으로 모는 위험한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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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오상우 동국대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얼마 전 공교롭게도 대조되는 두 환자가 동 시간대에 방문했다. 먼저 본 환자는 20년간 고혈압과 고지혈증약을 꾸준히 복용해 온 분이다. 건강보조제 하나 사 먹어 본 적이 없다. 은퇴를 앞두고 건강을 점검해 보고 싶어 뇌혈관과 심장 관상동맥 검사를 포함한 고가의 건강검진을 받고 왔다. 오랜 기간 질병을 앓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혈관은 놀랍도록 깨끗했다. 복용해 온 약들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한 결과다. 축하 인사를 건네며 주치의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는 기쁨도 잠시. 다음 분은 60대 뇌경색 환자다. 거동이 불편한 모습을 보니 안타까움이 앞선다. 몇 년 전부터라도 약을 복용했더라면 어땠을까? 분명 지금과는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 것이다. 한국인 평균수명이 90세에 다다랐다. 기대여명이 20년 이상 남은 분이다. 아쉬움과 미래에 대한 걱정이 밀려올 수밖에.



“한번 약 먹으면 평생 먹어야 해”

괜한 충고가 실명·사망 초래해

값싼 약이 건강보조제보다 효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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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혈압, 당뇨병약 복용을 시작하면 주변 사람에게 제일 먼저 듣는 조언이 있다. “그런 약은 한번 먹으면 평생 먹어야 해.” 이런 소리 들으면 누구나 약 복용을 망설이게 된다. 혈압과 혈당 수치가 얼마나 나쁜지는 중요하지 않다. 약만 피할 수 있다면 뭐든 해보려고 한다.

유튜브나 인터넷에도 질병 정보가 넘쳐난다. 관심을 끌어야 살아남기 때문에 과장되고 상식을 뒤엎는 내용이 허다하다. 얼마나 귀에 쏙 들어오게 이야기하는지, 그대로 믿고 따라 하지 않으면 큰 손해를 볼 것 같다. 최근에는 콜레스테롤 약이 위험하다는 영상이 인기다. 평생 복용도 부담인데 위험하다고까지 하니 그 누가 약을 끊으려 하지 않겠는가?

만성질환은 초기에 증상이 없다. 동맥경화도 혈관이 3분의 2는 막혀야 증상을 느끼기 때문에 평소엔 모르고 지낸다. 어느 한순간 쓰러지거나, 콩팥이 망가지거나, 실명하거나, 다리를 절단하는 상황이 되어서야 과거를 뼈저리게 후회하게 된다. 이런 합병증을 단기간의 약 복용으론 예방할 수 없다.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꾸준히, 오랜 기간 약을 먹어야 한다. 약은 어설픈 건강보조제나 비타민제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탁월한 효과를 가진다. 그런데도 비타민과 건강보조제의 장기 복용은 문제없고, 약 복용은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꼭 고쳤으면 하는 잘못된 상식이다.

가까운 사람에게 해가 되는 말을 의도적으로 하는 사람은 드물다. 자신의 지식 범위 내에선 선의이고 상대방을 위한 조언이다. 그러나 이 한마디가 타인의 수명을 단축하거나 심각한 후유증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반대로, 조언을 듣는 사람은 자신이 쓰러지고 불행해졌을 때, 그 말을 한 사람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한다는 냉정한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합병증은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나타나기에, 조언했던 사람은 상대방에게 큰 불행을 초래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지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턱대고 던진 말 한마디가 남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30년쯤 전에 숨을 헐떡이며 의식이 흐려진 채 응급실을 방문한 초고도 비만 환자를 만난 적이 있다. 관절통이 심했는데, 지인의 권유로 남대문시장 좌판에서 사 온 정체 모를 약을 2년간 복용해 왔다고 한다. 지인이 효과를 크게 봤다며 적극적으로 추천했다고 한다. 실제 복용해 보니 통증이 금방 가라앉았다. 한 알 먹다가 효과가 떨어지니 두 알, 세 알 이렇게 늘리게 되었는데 한 달 전부터는 한 주먹씩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고 한다. 성분을 분석해 보았더니 역시 스테로이드제다. 과다복용 부작용으로 인해 결국 며칠 뒤 사망했다. 지인의 말 한마디가 죽음을 초래한 경우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관련 피해 사례는 진료 때마다 드물지 않게 만나게 된다. 건강이나 질병과 관련된 조언은 이래서 늘 신중히 해야 한다.

넘쳐나는 엉터리 정보와 광고, 그리고 빠르게 변화하는 의료 환경 속에서 우리를 지키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원칙을 지키는 태도가 필요하다. 획기적인 치료법을 제시하거나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정보일수록 반드시 의심하고, 물어보고, 확인하자. 주변에 신뢰할 만한 전문가가 없다면 차라리 챗 GPT에 물어보자. 가끔 엉뚱한 소리도 하지만, 정체 모를 전문가들이 내뱉는 이야기보단 낫다. 장수할수록 나를 지켜주는 것은 건강이다. 다행히 우리는 외국보단 진료나 약 처방 받기 쉬운 환경에서 살고 있다. 값싼 약이라고 가볍게 봐선 안 된다. 비싼 건강보조제보다 훨씬 확실하게 나를 지켜주는 소중한 존재다. 잘못된 정보에 흔들리지 말고,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 책임지고 지켜나가는 태도가 필요한 시기다.

오상우 동국대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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