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1.05 (일)

[걷고 싶은 길] 가슴 벅찬 새 해를 안고 걷는 바다부채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국내 유일의 해안 단구 길

연합뉴스

정동진 바다부채길 해돋이[사진/조보희 기자]



(강릉=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쏴~ 꽝! 쏴~ 꽝!. 넓고 푸른 동해의 파도는 거세고 우렁찼다.

을사년 새로 떠오르는 해의 기운을 가슴 가득 안고 걷기에 '정동심곡 바다부채길'만큼 제격인 곳은 별로 없다.

◇ 바다와 하나 되는 해안 단구 길

경복궁과 광화문의 정 동쪽 땅끝인 강릉 정동진에서 시작하는 바다부채길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해안 단구를 따라 조성된 도보 여행 길이다.

이 해안 단구는 200만∼250만 년 전에 일어난 지각 변동으로 형성됐다.

해안 단구란 해안을 따라 분포하는 계단 모양의 지형이다.

정동진 해안 단구는 지반의 융기 작용에 따라 해수면이 80㎞ 정도 후퇴하면서 바다 밑에 퇴적돼 있던 지형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육지화됐다.

부채길의 이름은 이곳 땅 모양이 바다를 향해 부채를 펼쳐놓은 모양이라는 데서 붙여졌다. 부채길 전 구간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연합뉴스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사진/조보희 기자]



새벽 어둠을 가르며 솟구치는 태양의 감동, 수백만년에 걸친 지구 역사의 신비, 광활한 동해의 역동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여정이 바다부채길이다.

탐방로는 절벽을 따라 나무 데크와 철제 다리로 조성돼 있다.

발밑으로 초록빛 수면과 하얀 파도를 내려다보며 걷는 내내 바다와 하나가 된 듯한 흥분에 휩싸이게 된다.

바다부채길은 정동항에서 심곡항까지 편도로 약 3㎞이다. 왕복한다면 6㎞ 정도를 걷게 된다.

정동항과 심곡항은 작은 어항이다. 두 항구 사이에 해상광장, 몽돌해변 광장, 투구바위, 부채바위, 전망 타워 등의 명소가 있다.

파도가 밀려왔다가 물러갈 때마다 '또르르 또르르' 돌 굴러가는 소리를 내는 몽돌해변은 3군데가량 되는 것 같았다.

고려의 명장 강감찬 장군의 전설이 서린 투구바위는 관광객 사랑을 많이 받는 장소이다.

투구바위는 동해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표상하듯 드넓은 바다를 향해 우람하게 서 있었다.

연합뉴스

투구바위[사진/조보희 기자]



◇ 세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정동진 역

바다부채길로 향하는 여로는 여행자를 설레게 했다.

자가용이나 관광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서울에서 출발한다면 기차를 이용해보길 '강추'한다.

서울에서 KTX를 타고 출발해 강릉역에 닿으면 바로 정동진역으로 가는 '누리로'호 기차로 갈아탈 수 있다.

15분이면 강릉역에서 정동진역에 도착한다.

누리로 열차는 바다를 지척에 끼고 해안을 달렸다. 강릉∼정동진 구간은 바다에서 제일 가까운 선로이지 싶었다.

은빛 물결 위를 달리는 '999 철도'를 탄 듯한 기분은 누구든 동심으로 돌아가게 할 것 같았다.

뒷좌석에 앉아 연신 뭔가 중얼거리던 어린아이가 "할머니 정동진, 정동진"하고 외친다.

동해시가 종착역인 누리로 열차는 정동진에 도착해 10여 분 정차했다.

"정동진 역은 바다에서 가장 가까운 역입니다. 승객 여러분은 플랫폼으로 내리셔서 바다 구경하시고 사진도 찍으신 뒤, 열차 출발 전에 다시 승차하십시요"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아담한 간이역인 정동진 역은 세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연합뉴스

정동진해수욕장[사진/조보희 기자]



열차 시간을 기다리며 승강장 벤치에 앉아 수평선을 하염없이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정동진역이다.

경복궁 동쪽의 나루터 마을이라는 뜻의 정동진은 신라 시대부터 임금이 사해용왕에게 제사를 지냈던 곳이다. 그만큼 풍광과 일출이 아름답다.

1960년대에는 '석탄 더미 위에서 해가 떠오른다'고 할 정도로 강릉광업소 등 주변에 탄광이 밀집해 번화했으나 석탄 산업 쇠퇴와 함께 작은 어촌으로 변모했다.

지금은 유명 관광지가 됐으며 2020년 KTX가 운행되기 시작한 후로는 서울에서 제일 빨리 도착할 수 있는 동해 바닷가가 됐다.

◇ 윤슬 박물관과 카페

'윤슬'은 일상에서 자주 쓰이지는 않지만, 사진작가라면 모를 수 없는 낱말이다.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비슷한 단어로 '물비늘'이 있다. 부채길에서는 유난히 아름다운 윤슬을 만날 수 있다.

동해에서 떠오른 해가 수면에 반사되는 광경이 잘 관찰되기 때문이다. 부채길 별칭이 '윤슬 박물관'이다. 부채길 앞 바다에 갖가지 모양의 다채로운 윤슬이 만들어지는 데서 유래했다.

부채길 중간에 카페 '윤슬'이 자리 잡고 있었다. 탐방객 쉼터이다.

연합뉴스

카페 윤슬[사진/조보희 기자]



부채길에서는 수면 위로 설치된 나무 혹은 철제 탐방로를 걸어야 한다. 발밑에 출렁이는 물결을 내려다보며 걷는 게 이색 체험이긴 하지만 꽤 체력을 요구한다.

카페 옆 벤치에는 겨울인데도 탐방객들이 여유롭게 앉아 따사로운 햇살과 향긋한 커피를 즐기고 있었다. 방문객들이 윤슬을 더 잘 감상할 수 있도록 여름철에는 부채길이 조기 개장돼 오전 8시부터 탐방이 가능하다.

부채길은 안전을 위해 출입이 엄격하게 관리된다.

연합뉴스

바다부채길 탐방로[사진/조보희 기자]



부채길과 카페의 관리, 운영은 강릉관광개발공사가 맡고 있다.

입장료와 수익금은 부채길 유지 관리비로 쓰인다.

파도나 바람이 셀 때는 부채길을 개장하지 않기 때문에 방문하기 전에 관광안내소 등을 통해 개방 여부를 미리 확인해야 헛걸음하지 않는다.

부채길은 2017년에 조성돼 일반에 개방됐다. 그전까지는 군사 지역이라는 이유로 대중이 접근할 수 없었다.

올해 부채길 방문객은 26만여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 해넘이와 해돋이의 감격

정동진은 포항 호미곶과 함께 동해안의 대표 일출 명소이다. 2000년에는 국가지정행사로 밀레니엄 해돋이 축전이 열렸다.

새해 해돋이 축제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축제는 정동진역과 부채길 사이에 있는 모래시계 공원에서 열린다.

연합뉴스

정동진 모래시계[사진/조보희 기자]



모래시계는 중력에 의해 떨어지는 모래의 양으로 시간의 흐름을 잰다. 모래 무게가 8t에 이르는 정동진 모래시계는 세계 최대 규모이다.

시계 속에 있는 모래가 모두 아래로 떨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 1년이다.

모래가 다 떨어지는 12월 31일 자정에 시계를 반바퀴 돌려 위아래를 바꿔주면 시계는 새로운 1년의 시간을 다시 재기 시작한다.

모래시계를 돌릴 때 해넘이, 새해 첫해가 떠오를 때 해돋이 축제가 열린다.

보통 모래시계는 허리가 잘록한 호리병박 모양이나 정동진 모래시계는 둥글다.

동해의 떠오르는 태양을 상징한다.

2025년 을사년에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어떤 시간일까.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5년 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네이버 연합뉴스 채널 구독하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