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시장 모사설 급속도로 확산…주장하는 닮은 부위 제각각
동상 제작자 이상태 씨 "바보 아니라면 닮지 않은 걸 알 것"
지난해 12월 23일 동대구역 광장에서 홍준표 대구시장(왼쪽에서 두번째) 등이 참석한 가운데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 대구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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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대구=박병선 기자] 대구시가 동대구역에 설치한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이 홍준표 대구시장과 닮았다는 뜬소문이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구시는 물론이고, 동상을 만든 조각가까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이 풍문은 극우 사이트로 일컬어지는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서 점화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26일 오후 2시 31분쯤 한 회원이 박 전 대통령 동상과 홍 시장 얼굴을 비교하는, SNS에 떠도는 사진을 게재하고 홍 시장에 대해 "지 면상(자기 얼굴) 쳐 깎아놓고 박정희 동상이라고 팔았었나 보네"라고 썼다.
그때부터 그와 비슷한 내용의 게시물이 우르르 올라오면서 박정희 동상과 홍 시장 얼굴을 동일시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 사이트에는 '홍준표 더 닮았네', '알고 보니 홍준표 동상으로 드러나', '사기쳤네', '박 전 대통령 동상 세우랬더니 자기 얼굴로' 등의 자극적이고 저속한 제목으로 도배됐다.
지난달 31일 '보수논객' 변희재 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홍 시장이 동상 사기극을 펼쳤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동상 모사설이 퍼져나갔다. 그는 "(동상에) 안경을 씌웠더니 홍 시장과 완전히 똑같다. 이 동상을 박정희 동상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라고 주장했다. 또한 "경북도청에 박 전 대통령 동상을 세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또 세우는 건 과하고 잦다"며 홍 시장을 두고 "박정희 팔이 정치인"이라고 직격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에 안경을 씌워 홍준표 대구시장 얼굴과 비교한, SNS에 돌아다니는 사진. / SNS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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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모사설은 1일부터 인터넷신문과 종편에도 버젓이 보도되기 시작했다. 동상 모사설을 제기하는 이들은 저마다 '눈썹과 코', '이빨', '웃는 얼굴'이 닮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동상을 발주한 대구시와 동상을 만든 조각가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반응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공모에 조각가 5명이 1m 크기 모형을 제작해 참가했는데,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가장 좋은 작품을 선정해 동상 제작을 의뢰했다"면서 '가짜뉴스'에 불과하다고 했다.
동상을 만든 조각가 이상태(55) 씨는 "입체예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말일 뿐이다. 입체 작품은 빛과 조명, 각도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 보이는데 무엇을 보고 특정인과 닮았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눈, 코, 입을 뜯어봐도 바보가 아니라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홍 시장을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초상화 작품으로 유명한 중견화가에게 물어봤다. 그는 "사진으로 동상과 홍 시장을 얼핏 비교해 봐도 얼굴 윤곽이나 눈 코 입의 배열, 웃는 모습 등에서 일치하는 부분이 거의 없다"면서 "동상이 박 전 대통령의 생김새와 다르다는 비판은 할 수 있을 지 몰라도, 홍 시장과 닮았다는 것은 비상식적인 얘기"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이를 두고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한국 정치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해프닝이라고 했다. 대선후보인 홍 시장을 공격하고픈 심리 때문에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을 걸고 넘어지며 공격 소재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동대구역 광장에 세워진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둘레석에 새겨진 사진과 글귀. 조각가 이상태 씨는 1965년 9월 30일 박 전 대통령이 추수하는 모습을 담은 이 사진을 참조해 동상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 박병선 기자 |
◇ 동상 제작자 이상태(조각가)가 하고 싶은 말
기존에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의 이미지는 '양복'을 입고 '가르마'를 한 강인하고 권위적인 지도자상이다. 전국에 세워진 10여 개의 박 전 대통령 동상은 대부분 비슷한 분위기를 갖고 있다. 이런 이미지가 선점하고 있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 동상은 대개 동일한 느낌을 준다. 그 중에 웃고 있는 박정희 동상은 어디에도 없다. 나는 지금까지와는 대조적으로 서민적이고 소박한, 농사꾼 냄새가 나는 이미지를 담아 '새로운 표준'을 만들고 싶었다. 1965년 9월 30일 밀짚모자와 장화를 신고 볏단을 안은 채 활짝 웃고 있는 대통령의 사진을 참조해 동대구역 광장에 세워진 동상을 제작했다. 역을 오가는 시민들이 날카로운 카리스마를 풍기던 통상의 이미지와 달리, 친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받으며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모습을 나타내고자 노력했다. '또 다른 박정희'로 재해석한 동상인 것이다.
tk@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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