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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5 (일)

5시간 대치 끝 尹 체포영장 집행 무산, 참담하고 부끄럽다 [논설실의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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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 일대 교통마비·아수라장

CNN 등 외신 긴급 타진 망신살

시간 끌지 말고 자진 출석해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3일 헌정 사상 최초로 현직인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에 나섰지만, 윤 대통령 측의 강한 저항에 막히면서 5시간 30분 만에 무산됐다. 영장을 집행하는 공수처는 대통령 경호처와 협의 끝에 오전 8시쯤 관저 정문은 통과했지만, 건물 진입은 경호법·경호구역을 내세운 경호처에 의해 제지됐다. 공조수사본부는 “계속된 대치상황으로 사실상 체포영장 집행이 불가능하고 현장 인원들 안전이 우려돼 오후 1시 30분쯤 집행을 중지했다”고 밝혔다. 정당한 법 집행을 물리력으로 저지시키며 법치주의 근간을 뒤흔든 윤 대통령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세계일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3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경내에서 공수처 수사관 등이 내려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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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공수처의 3차례의 소환조사에 불응한 윤 대통령의 태도로 미뤄볼 때 순순히 영장 집행에 협조할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윤 대통령 측은 내란죄 수사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데다, 체포영장도 무효라고 주장한다. 윤 대통령 측이 헌법재판소에 낸 체포영장에 대한 권한쟁의 심판과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도 어불성설이다. 국가기관이 대통령의 권한을 침해했는지를 따지는 것과 대통령 개인에 대한 체포영장이 무슨 연관이 있다는 말인가.

큰 불상사 없이 사태가 일단락됐지만, 우려는 가시지 않는다. 영장 집행 과정에서 관저 주변은 윤 대통령 체포 찬성·반대 단체들의 집회로 아수라장이 됐고, 일대 교통은 마비됐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불법 영장 원천무효" "공수처를 체포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영장 집행을 비판했고, 민주노총 등은 ‘내란수괴 체포 투쟁’을 주장하며 관저 앞 1박 2일 철야 투쟁에 나섰다. CNN·BBC 등 외신들까지 “위험한 드라마가 펼쳐졌다” “한국의 정치적 위기가 극적인 전환을 맞았다"며 영장 집행 장면을 생중계했다. 진영 간 극한 대결로 두 쪽 난 대한민국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고, 신인도 하락과 국격 추락에 따른 창피함은 국민의 몫이다.

‘끝까지 싸우겠다’는 편지로 지지세력을 선동하는 건 더 큰 국가적 혼란만 초래할 뿐이다. ‘12·3 비상계엄’에 가담한 정부와 군경 관계자들이 잇따라 구속기소 됐다. 이런 마당에 또다시 경호처 직원까지 위법으로 내몰아선 곤란하다. 사법적 판단이 나온 만큼 내란 사태의 최종 책임자인 윤 대통령이 버티는 건 시간끌기용 꼼수일 뿐이다. 무엇보다 체포영장 자체를 부정하는 건 법조인 출신 답지 않은 법치 부정 행태다.

세계일보

공수처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경호처의 저지에 중지한 3일 공수처 수사 관계자를 태운 차량이 관저를 나서 지지자들 옆을 지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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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측은 더는 이번 사태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공수처가 체포영장 기한인 오는 6일 이전에 재집행에 나설 경우 오늘보다 더 거센 진영 대결로 인한 물리적 충돌 사태가 빚어질지도 모른다. 정치적 혼란과 국론 분열의 일차적 책임은 윤 대통령에게 있다. 현직 대통령의 강제 구인 장면이나 충돌 상황을 지켜봐야 할 국민은 참담하다. 윤 대통령 스스로가 공수처에 떳떳하게 출석 의사를 밝히는 것이 법적, 정치적 책임을 지는 정도(正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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