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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수거장에 불을 낸 혐의로 구속 기소된 20대 지적장애인이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지적장애인에 대한 돌봄의 의무가 국가와 사회의 공통의 과제라고 보며 “엄벌만이 답이 아니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4부(재판장 최경서)는 현주건조물방화, 재물손괴 등 혐의를 받는 김아무개(27)씨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고 4일 밝혔다. 3년간 보호관찰 명령도 함께 내려졌다.
자폐성 장애 2급 지적장애인인 김씨는 지난해 10월21일과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 지하 재활용 분리수거대 등에 불을 붙여 건물을 훼손시켰다. 12월4일에는 한 빌라 분리수거대에 불을 붙여 창문과 벽면, 주변 차량에 손해를 입혔다. 이후 김씨는 현주건조물방화 등 혐의로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아왔다. 검찰은 재판부에 김씨에게 징역 7년형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약 10개월간 김씨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는 “김씨의 특수한 사정을 고려할 때, 엄벌에 처하는 것만이 국가형벌권의 적정한 행사인지 의문”이라며 김씨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김씨와 같은 지적장애인이 성인이 되면 제대로 된 돌봄을 받을 수 없는 사회적 환경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지적장애인이 미성년자일 때는 초·중·고교의 특수반 또는 특수학교의 교육을 통해 여러 관리를 받을 수 있지만, 성년이 된 이후에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제공하는 복지제도나 혜택이 줄어들게 되고, 성인 지적 장애인의 보호·관리를 위한 책임은 대부분 가족(부모)에 귀속돼 지적장애인을 가족의 구성원으로 둔 가족 전체가 어려운 상황이 된다”고 봤다. 실제로 김씨의 경우 서울로 주거지를 옮기기 전 성남시 장애인 복지관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지만, 서울의 복지관 프로그램 이용이 여의치 않으면서 증세가 악화해 일탈적 행동이 발현된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부모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피고인과 피고인의 동생을 건사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다해왔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민사적 책임을 부담하게 될 상황에 처하게 됐다”고도 짚었다. 사건 이후 아파트 화재 보험사는 김씨 부모를 대상으로 손해 배상 책임에 따른 ‘구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보험사는 부모 명의의 집과 월급에도 가압류를 걸었는데, 법원의 이의제기를 받아들여 월급에 대한 가압류는 3개월만에 해제했지만, 집 가압류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재판부는 “피고인과 같은 성년 지적장애인이 한 명의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비단 피고인의 부모에게만 주어지는 개인적 책임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해결해야 할 공통의 과제”라며 “위와 같은 특수한 사정은 피고인에 대한 형을 정하는 데 있어 피고인에게 유리한 사정으로 충분히 고려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발달장애인 조사전담 경찰이나 검사는 법제화됐지만 전담 판사제도는 규정돼 있지 않아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 양형심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어왔다”며 “이번 판단은 범죄에 이르게 된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 것에 머무르지 않고 국가, 사회적 책임을 반영한 양형 결정으로 향후 발달장애인 형사 사건 양형 심사에 새로운 지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김씨는 구속 상태에서 풀려났지만, 김씨 가족 앞에는 아직 많은 벽이 남았다. 검찰은 1심 판결에 불복해 최근 항소장을 제출했다. 김씨 부모에 대한 구상금 청구 소송은 아직 첫 기일도 잡히지 않은 상황이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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