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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6 (월)

尹체포 당일, 광주시가 내건 버지니아州 깃발… 링컨이 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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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청 앞 게양, 강기정 “권력 남용하면 파멸”

남북전쟁 때 노예제 존속 주장하며 채택한 문장

문구 속 ‘폭군’은 美정부·링컨 의미… 백인 우월주의 논란도

조선일보

공수처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지난 3일 오전 광주광역시청 청사 앞에 미국 버지니아주 주(州) 깃발이 게양돼 있다. /광주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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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정국 속 광주광역시가 3일 광주시청 앞에 미국 버지니아주(州)로부터 선물을 받은 주기(州旗)를 게양했다. 파란색 깃발에는 ‘식 셈퍼 티라니스(Sic Semper Tyrannis·폭군은 언제나 이렇게 되리라)’라는 라틴어 문구가 적힌 공식 문장(紋章)이 그려져 있다. 강기정 시장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게양 사실을 알리며 “폭군 윤석열을 체포하는 아침”이라며 “깃발에 쓰인 문구가 의미심장하다. 권력을 남용하는 자는 반드시 파멸에 이르게 된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라고 했다. 이 깃발은 지난해 11월 광주를 방문한 버지니아 측 대표단이 환대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최근 광주시에 전달한 것이라고 한다.

강 시장은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선물을 활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버지니아의 상징인 이 문장에 담긴 역사와 배경이 결코 간단치 않다. 이 문장은 1861년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 존속을 고수하던 버지니아가 연방을 탈퇴, 이른바 ‘남부 연합(Southern Confederates)’에 합류하며 채택한 것이다. 여기서 ‘폭군’은 지역경제를 떠받치는 노예제 존속을 지지한 남부 10여 개 주 의사에 반해 노예 해방을 밀어붙인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1861~1865년 재직)과 연방 정부를 가리킨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2023년 10월 이 깃발을 백인 우월주의와의 연관성이 있는 7개 주 상징 중 하나로 소개하며 “1861년 미국이 폭군화되었고 버지니아가 이를 물리칠 것이란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았다”고 했다. 버지니아는 남북전쟁 패배 후 ‘자유와 연합’ 문구가 들어간 문장을 사용했다가 1912년 다시 이 디자인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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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이 지난 2024년 12월 31일 무안공항 참사 희생자 빈소가 마련된 광주 서구의 한 장례식장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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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시장이 “의미심장하다”고 말한 문구 역시 버지니아 인근 메릴랜드 출신인 존 윌크스 부스가 1865년 4월 포드 극장에서 링컨을 암살한 직후 외친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달 비상계엄 사태 직후 강 시장은 “무도하고 무법하고 무지하고 무능한 대통령의 내란죄 철저한 단죄”를 말했는데, 미 정부는 공식 문서에서 남북전쟁을 ‘반역자들의 전쟁(The War of the Rebellion)’이라 표기한다. 연방 정부 입장에서 보면 노예제를 하겠다며 연방을 탈퇴한 버지니아가 ‘헌법에 반해 내란을 자행한 반역자’인 셈이기 때문이다. 다만 역대 미국인의 희생이 가장 많았던 전쟁이고, 150년이 흐른 지금 남북 간에 지역 정서를 불필요하게 조장하는 측면이 있어 ‘주들 간의 전쟁(War between the States)’ ‘내전(Civil War)’ 같은 표현을 병기하고 있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공수처 내란 혐의를 받는 윤 대통령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쓰기에는 상당히 어색해 보인다”고 했다.

주 정부 교류 차원에서 선물로 전달한 깃발에 국내 정치적 의미를 부여한 강 시장의 행보가 외교 결례가 될 수도 있다. 버지니아 주정부가 깃발을 전달하며 이런 의도를 인지했거나 여기에 동의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버지니아의 문장은 미국 50개 주 가운데 유일하게 여성의 가슴이 노출돼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901년 당시 주 연방장관이 “예술적 우아함과 아름다움이 부족하다”며 디자인을 변경했다. 이 때문에 “성적으로 노골적이다”는 비판도 있어 왔는데, 2010년 켄 쿠치넬리 주 법무장관이 가슴 부분이 갑옷으로 가려진 옷핀을 선물했다가 논란이 됐다. 인구 870만명으로 수도 워싱턴DC에 인접한 버지니아에는 여전히 남부연합 시대의 잔재가 많다. 그 중에는 ‘백인 우월주의’로 해석될 수 있는 것들도 상당수 있어 미국 내에서 흑백 갈등이 고조될 때마다 논란이 됐다. 조 바이든 정부 들어 특히 압박이 거셌는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 공화당 소속인 글렌 영킨 현 주지사를 비롯한 보수 진영은 “오늘날의 잣대로 모든 걸 판단할 수 없다”며 여기에 대한 거부감이 큰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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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지니아주의 공식 문장(紋章). 미국 50개 주 주기 중 유일하게 여성의 가슴이 노출돼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버지니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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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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