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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7 (화)

[광화문에서/이은택]참사의 현장마다 어김없이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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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이은택 사회부 차장


2024년 12월 31일 김홍락 국토교통부 공항정책관은 무안 제주항공 참사 브리핑 중 ‘콘크리트 둔덕’ 논란에 “그게 공항구역 종단안전구역 밖에 있으니까 재료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콘크리트 지지대를 받쳤다”고 했다. 사고 여객기가 충돌한 둔덕이 왜 그 자리에 설치됐는지, ‘부서지기 쉬운 재질’이라는 규정에도 불구하고 왜 콘크리트인지 논란이 커진 와중이었다. 둔덕 바로 앞까지가 종단안전구역이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현장 기자들의 지적에 김 정책관은 “국제 규정을 봐야 된다는 게, 영어로 하면 인클루딩(including·포함된)이냐 업투(up to·∼까지)냐 여기서 갈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179명이 숨진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는 자리에 슬며시 ‘인클루딩’과 ‘업투’ 해석 문제를 꺼내 든 공무원의 모습을 보며 과거의 불안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다음 날 해양경찰청은 해난구조대(SSU), 특수전전단(UDT) 등을 동원해 대대적으로 실종자 수색 작업을 벌이는 중이라고 했지만, 나중에 공개된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이들은 바다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거센 조류 때문이었다. 김석균 당시 해경청장은 실종자 가족들에게 잠수사 500여 명을 투입했다고 했지만, 이주영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이 보고받은 투입 인력은 ‘8명’이었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 다음 날 이상민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은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다”라고 했지만, 사고 직전 우려할 정도의 인파에 112 신고가 빗발쳤단 사실이 공개됐다. 감사원은 이 사건 감사를 내부적으로 의결해 놓고도 대외 브리핑에선 “구체적 계획이 없다”고 거짓말했다. 정권에 미칠 부담을 염려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미국 언론인 이시도어 파인스타인 스톤은 1964년 미국이 베트남전쟁 과정에서 ‘통킹만 사건’을 날조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당시 미국 대부분 언론은 정부 발표를 그대로 받아 썼지만 스톤은 4쪽짜리 주간지 ‘스톤 위클리’에 정부 발표가 거짓이라고 보도했다. 1971년 공개된 미국 국방부 기밀문서에서 스톤의 보도는 사실이었다는 게 드러났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 기자 출신인 마이라 맥퍼슨은 스톤의 평전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All Governments Lie)’(문학동네)에서 “스톤은 정부의 설명에서 혼란과 사실관계의 불일치, 얼버무림 같은 이상한 부분들에 주목했다”고 평가했다.

제주항공 참사의 진실 규명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콘크리트 둔덕의 탄생 배경과 관련자를 둘러싼 의문도 쌓이고 있다. 과거 우리 정부는 스스로가 비극의 원인이나 결과 어딘가 닿아 있을 때마다 알아듣기 어려운 레토릭과 모호한 해명, 거짓 발표로 책임의 흔적을 문질러 버리려 했다.

국민과 유족은 국토부가 가진 권한과 전문성으로 이번 사고의 진실까지 ‘업투’해서(도달해서) 책임 있는 국토부 전현직 관련자에게도 칼날을 겨눌 수 있길 기대했다. 하지만 요즘 국토부의 발표를 볼 때마다 의문점이 늘어만 간다. 어쩌면 그들이 사고 조사 주체가 아니라 책임과 처벌 대상에 ‘인클루딩’ 되어야 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이은택 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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