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부산항 신선대부두에 수출입 화물이 쌓여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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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무역주의를 앞세운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국내 수출 기업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한국 수출은 중국 제조업 굴기와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이미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검토 중인 보편관세, 각종 보조금 폐지·축소, 수출통제 강화 등이 현실화할 경우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이 입을 타격의 정도는 가늠하기 어렵다. 기업들은 수출선과 공급망 다변화 등의 원론적인 대책 외에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예상되는 한국 수출 축소 시나리오는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한국 수출이 연간 최대 448억달러(약 65조원)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트럼프 공언대로 보편관세 20%, 중국산 60%를 부과하고 이에 주요국들이 맞대응할 것이란 조건을 적용한 결과다. 이로 인해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도 0.67%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무역협회는 트럼프가 10% 보편관세와 60% 대중 관세를 부과하면 한국의 올해 대미 수출과 대중 수출이 각각 8.7%, 2.5%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반도체·자동차·배터리…무풍지대는 없다
한국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 앞에는 지뢰밭이 깔려 있다. 조 바이든 정부는 최근 반도체과학법(칩스법)에 근거해 미국에 공장을 건설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각각 47억4500만달러(약 6조8600억원), 4억5800만달러(약 6600억원) 규모의 보조금 지급을 결정했다. 그러나 반도체 보조금에 부정적 의견을 피력해온 트럼프가 그대로 집행할지 미지수다. 나아가 칩스법 폐지·축소에 나선다면 미 공장을 건설 중인 한국 기업들은 오도 가도 못하는 꼴이 될 수 있다.
트럼프가 한국에도 보편관세를 부과하면 대미 반도체 수출에 직접 영향을 준다. 국가안보나 불공정 무역을 이유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 무역확장법 232조·301조를 적용할 가능성도 있다. 최근 인공지능(AI) 붐 덕분에 한국산 고성능 메모리의 대미 수출이 크게 증가했는데 무역적자를 줄이려는 트럼프의 ‘무역전쟁’ 대상이 될 수 있다.
올해 한국 반도체 수출을 이끌 것으로 전망되는 SK하이닉스 고대역폭메모리(HBM) 3E 12단 제품. SK하이닉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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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갈등 심화에 따른 대중국 고율 관세 및 수출통제 강화도 걱정거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에서 생산하는 제품이 중국산으로 분류돼 미국 수출 시 관세 폭탄을 맞을 수 있다. 수출통제 강화로 중국 내 반도체 장비 반입이 불가능해지면 중국 내 공장은 무용지물이 된다. 앞서 미 상무부는 한국이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중국 수출을 제한하는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들이 미국과 중국 양쪽에 고객사들이 있기 때문에 미·중 갈등이 장기화하면 사업 부담이 늘어나고, 중국 현지 생산시설 업그레이드 불확실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시나리오별 대응 방향을 논의하는 것 외에 뾰족한 대책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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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 수출 품목인 자동차업계의 우려도 크다. 한국무역협회는 올해 자동차 수출이 지난해보다 1.9%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는 자동차 수출이 3.1%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보편관세가 도입되면 한국산 자동차는 미국 시장에서 직격탄을 맞는다. 현재 한국산 자동차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무관세가 적용된다. 이미 트럼프 1기 행정부가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 부과를 검토한 바 있다. 2021년부터 2022년까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여한구 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트럼프 1기 때 자동차 관련 무역확장법을 담당했던 (미국 측) 인사들을 나중에 만나보니 ‘그때 (관세 부과를) 했어야 하는데 못한 것을 정말 후회한다’는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기아는 내연기관차부터 하이브리드차, 전기차, 수소차에 이르는 다양한 제품군을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이동석 현대차 대표이사는 최근 임직원에 보낸 글에서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 예정된 신차를 완벽한 품질로 적기에 양산해 고객과의 약속을 지켜나가자”라고 말했다.
2차전지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전기차 굴기 속에 내연기관 시대로 돌아가자는 트럼프의 귀환은 한국 2차전지 수출의 구조적 장벽이다. 트럼프 정권인수팀이 검토한 대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을 없애고 미국에 들어가는 모든 배터리 소재에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에 투자한 국내 완성차업체와 배터리 기업들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특히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미국에서 생산·판매하는 배터리에 보조금을 주는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가 폐지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미국에 맞서 중국이 배터리 핵심 광물 수출을 무기로 삼고 나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상정해놓고 공급망 다변화 등 대책 마련에 착수한 상태”라고 말했다. 박정규 카이스트(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겸직교수는 “자동차·배터리업계에 드리운 가장 큰 악재는 중국의 팽창”이라며 “트럼프의 대중 견제 정책은 중국의 추격으로부터 시간을 벌어준다는 점에서 이득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애리조나주에 건설 예정인 배터리 공장 조감도. LG에너지솔루션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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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국 관세 폭탄, 국내 업계도 타격
최근 중국의 저가 공세로 위기에 처한 철강 및 석유화학업계의 긴장감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2018년 무역확장법을 통해 한국산 철강재에 대해 25% 관세 부과를 시도한 적이 있다. 한국은 관세 대신 2015∼2017년 대미 수출량의 70%로 수출량을 제한하는 쿼터제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타협했지만 타격을 받았다. 대미 철강재 수출은 2016년 350만t, 2017년 340만t에서 2018년 250만t으로 떨어졌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한국산 철강재에 대해 관세 부과뿐만 아니라 쿼터 물량을 축소할 가능성이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한국보다 중국에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해도 우리는 쿼터제로 정해진 양만 수출할 수 있어 변화가 없다”며 “현재 쿼터를 더 축소할까 우려된다”고 했다. 석유화학업계는 석유와 가스 생산을 늘리려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정책 방향을 좀 더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중국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으로 수출하지 못한 중국산 제품들이 저가로 주변국으로 흘러나와 국내 업계가 되레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한국과의 협력 의사를 밝힌 조선업도 마냥 장밋빛은 아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트럼프 2기 정부의 화석연료 지원 정책에 따라 에너지 운반선 발주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이에 따라 올해 선박류 수출액은 9.1%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온실가스 배출 저감 대응 약화로 인한 친환경 선박 교체 수요 감소, 미국 관세 정책에 따른 국제교역 감소와 선박 발주 축소 가능성을 우려했다.
한류 열풍을 타고 수출에 호조를 보였던 식품업계와 화장품업계도 무풍지대는 아니다. 화장품업계 관계자는 “무관세인 화장품에 10∼20% 관세가 부과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며 “환율 상승에 따른 원가 부담에 더해 관세 리스크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걱정만 하는 거지 뾰족한 대안이나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11월 8일 농심이 미국 맨해튼 뉴욕한국문화원 청사에서 연 ‘신라면과 함께하는 뉴욕에서의 한강’ 행사 모습. 농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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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한 기자 silverman@kyunghyang.com,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권재현 기자 jaynews@kyunghyang.com, 이진주 기자 jinj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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