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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9 (목)

‘피자게이트’와 부정선거 음모론 [시민편집인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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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이 선포된 직후인 밤 10시33분, 정보사령부 장교 등이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잠입해 전산 서버를 촬영하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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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임 |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장



미국 대통령 선거 직후인 2016년 12월4일 워싱턴디시의 피자가게 코밋핑퐁. 한 백인 남성이 이 가게의 창고 문으로 보이는 곳에 반자동 소총을 난사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고, 그는 곧 체포됐다. 그런데 에드거 매디슨 웰치라는 28살 청년의 범행 동기가 놀라웠다. 가게 지하 창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아동 성착취와 인신매매 조직을 운영하고 있으니, 직접 조사하겠다는 것이었다. 전달 치러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클린턴을 겨냥해 나돈 음모론, 이른바 ‘피자게이트’를 철석같이 믿은 청년이었다. 피자게이트는 일찌감치 사실무근임이 밝혀졌다. 그 가게에는 지하실 자체가 없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진영은 온라인에서 이를 줄기차게 유포해 클린턴의 평판을 훼손하고, 웰치 같은 맹신자를 만들어냈다.



선거를 겨냥한 허위조작정보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만,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투표와 트럼프 대통령 당선이 이뤄진 2016년은 각별했다고 언론학자들은 말한다. 온라인 공간의 확장과 정치 주체의 의도가 맞물려, 허위조작정보의 영향력이 폭발적으로 커진 시점이라는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 퀸즐랜드공과대학의 브라이언 맥네어 교수는 저서 ‘가짜뉴스’(Fake News)에서 “이즈음부터 디지털화, 네트워크화한 공론장에서 페이크뉴스가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상수이자 핵심 요소가 됐으며, 그 영향력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커졌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헌정질서를 뒤흔든 ‘12·3 내란사태’의 배경에도 윤석열 대통령이 신봉한 ‘부정선거 음모론’이 있었다.



사실 부정선거 의혹은 선거 때마다 ‘진 쪽’에서 종종 제기됐고, 2020년 총선 관련한 사건만 해도 120건 넘게 신고됐다. 하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재검표, 수사, 판결 등을 통해 모두 기각됐다. 수많은 선관위 직원과 각 정당 관계자가 투개표 과정을 감시하는 체제에서, 사소한 행정 실수는 몰라도 선거 부정은 불가능하다는 게 이 과정을 거쳐 나온 결론이다.



그런데도 일부 극우 유튜버들은 줄기차게 의혹을 제기했다. 음모론으로 시청자의 분노를 자극할수록 ‘조회 수 상승’ ‘슈퍼챗’(실시간 송금) 등으로 돈벌이가 되기 때문이다. 2024년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하자, 이들은 또 ‘부정선거 탓’이라고 몰아갔다. 여러 증언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부정선거 음모론을 믿었고, 자신이 당선된 2022년 대선조차 ‘여론조사에 비해 작은 표차로 이겼다’며 선거 부정을 의심했다고 한다.



부정선거 음모론은 논리적으로 허술하다. 누군가 선관위 서버를 조작할 만큼 유능하다면, 왜 자기편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지 않았을까? 하지만 음모론자들은 어떤 반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음모론에 빠진 이들이 세상 물정에 어두운 극소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지낸 황교안 전 총리와 현직 대통령을 포함해, 무시할 수 없는 집단으로 커졌다.



여기서 전통언론의 책임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대다수 언론은 부정선거론을 사실상 무시했다. 유튜버들이 ‘공산전체주의’ ‘비상대권’ 등 낯선 용어와 ‘선관위 서버 조사’ 등의 책략을 대통령에게 주입하는 동안, 전통언론은 허위조작정보 검증이라는 기본 책무조차 소홀히 한 측면이 있었다. ‘구독자 100만 유튜버’가 일반인이 판단하기 어려운 현란한 통계와 전문 용어를 인용하며 부정선거 의혹을 설파할 때, 언론이 차분한 취재로 진실을 거듭 대조해주었다면 어땠을까.



맥네어는 허위조작정보에 맞서기 위해 언론이 팩트체크(사실검증)를 강화해야 하며, 유통 경로인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언론의 적극적인 팩트체크와 함께 유튜브 등의 허위정보 추천을 막고, 유해 게시물 삭제 의무를 강화하는 방안 등을 제안하고 있다. 동시에 언론은 정파적 목적과 재정적 이익을 위해 진실을 저버리는 일이 없어야, ‘사실검증자’로서 신뢰받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피자가게에 총을 들고 갔던 웰치는 4년 형을 받아, ‘맹신’의 대가를 혹독히 치렀다. 지금 우리는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진 대통령 탓에 정치·경제적 혼란으로 고통받고 있다. 다시는 누구도 허위조작정보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한겨레를 포함한 언론이 본분을 다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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